더 늙기 전에 자신에게 친절해지기

by 꿈꾸는 사십대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 두 가지가 있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애써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끼고 좌절한다. 통제 가능한 일을 할 때 우리는 자기 충만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 그럼 우리는 당장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돈이 있고 없고 와 상관없이 시간이 많고 적고 와 상관없이 학력이 고학력인지 저학력인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우리가 시작하고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애매모호하다면? 그럼 그저 친절한 행동을 선택하면 된다.

나보다 가진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을 진정으로 존귀히 여기며 바라봐 주는 것, 나보다 사회적 약자의 신분과 직업을 가진 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귀하게 대해주는 것, 나이가 한참 어린 이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귀함을 잃지 않는 것. 친절은 크고 거창한 게 아니다. 날 서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가 친절이고 나와 다르지 않은 귀한 존재로 바라봐주는 따스한 눈빛이 친절이다. 가진 것과 상관없이 생명과 존재의 귀함이 동일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게 친절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친절을 선택함으로 세상을 1도는 따스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친절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다. 때로 나는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기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과 판단이 더 중요하다. 아프고 힘들어도 스스로를 거칠게 몰아붙일 때가 더 많다. 잘한 것에 대한 칭찬에는 인색하고 실수한 일은 쉽게 잊지도 않고 계속 되뇌고 곱씹는다. 타인이 나에게 친절하기를 바라는 건 그저 바람이다. 친절하면 땡큐이고 아니어도 별도리가 없다.

그러나 늘, 언제나, 항상 난 나에게 친절할 수 있다. 내가 선택만 한다면. 열심히 일하느라 지친 나의 하루 끝에 좋아하는 음악과 따스한 차 한 잔을 대접할 수도 있고, 은은한 향이 나는 향수를 하루종일 애쓸 내가 맡도록 나에게 뿌려줄 수도 있다. 적성에 맞는 일인지 모를 정도로 실수가 많았던 날에는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어도 좋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일을 떠올려줘도 좋다. 부모로서 내가 자격이 있나 자괴감이 들 때면 아동학대 하지 않고 자식을 내다 버리지 않은 평균이상의 부모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도 있다. 부모님께 애증이 가득해 내가 불효를 하며 사는 게 가슴 아프고 짜증 날 때면 아직 부모님께서 살아계시니 기회가 있다고 말해줄 수도 있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나다. 그래서 밉기도 하고 싫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나에게 친절하자. 전쟁 같은 하루를 버티며 살아주는 고마운 나에게 나만큼은 친절해보자. 나를 다독이고 안아주자. 그저 충분하다고 말해주자. 정말 이미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속고 있는 중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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