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모인 나는 왜 아이들에게 자꾸 혼나는 것일까?

- 자녀들에게 혼나지 않으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

by 꿈꾸는 사십대

며칠전 대장에 자라난 용종을 떼어냈다. 크기가 크고 모양이 납작해 건강검진센터에서 대학병원행을 권했다. 며칠동안 음식을 조절하고 금식을 하고 약물을 드립다 마셔대는 고행을 몇주 간격으로 다시 해야하는게 고역이었다. 그러나 의사가 이런 모양은 예후가 좋지 않으니 반드시 떼어내는게 좋다고 했고 병가를 쓰고 시술을 마쳤다.

40대가 되니 몸에 이런 반갑지 않은 녀석들이 종종 찾아온다. 보이지 않는 몸 내장에 생기는 혹들이 그렇고 피부에 깊이 자리잡은 기미와 주근깨가 또 그렇다. 예전보다 침침해지고 흐릿해진 시력이 그러했고 밤을 새는 것은 고사하고 새벽 2시만 넘어가도 피곤해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것도 어려워진 내 체력이 그러하다. 머리핀이 터질정도로 풍성하던 머리숱은 자녀 셋을 낳아 기르면서 반줌으로 줄어버렸다.

몸의 변화 뿐이랴. 내 가정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귀엽던 아이들은 나랑 어깨동무를 할 정도로 자라났다. 그들은 정상적인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애들과 똑같은 수순으로 사춘기를 밟고 있다. 희한하게 이들은 아침이면 기분이 엉망진창이다. 아주 죽상을 하고 일어나서 학교를 간다. 건드리면 치겠다는 그런 표정이랄까? 그러다 저녁에 집에 오면 또 기분이 급 좋아져있다. 나도 다혈질이라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변죽이 심한 아이들을 보고있노라면 눈치가 보인다. 왜 내가 내 집에서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어야하는지 참 알 수가 없다. 첫째가 새벽 1시에 자던 날 깨운다. 이유는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슬프단다. 그러면서 펑펑 울어제낀다. 아... 난 곤히 자다가 이게 왠 봉창 두드리는 상황인가 싶었다. 그래도 정신줄을 붙잡고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몇마디 건넸다. 그랬더니 펑펑 울던 딸이 울음을 뚝 그치고 이런다.

"엄마는 아무래도 E가 아닌것 같아. 공감을 너무 못해. 엄마, 이제 자. 나 생각 좀 하게"

이러고는 지 방으로 휙 가버린다. 하아. 새벽 1시에 일어난 나는 다시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첫째는 원래 다혈질이라 그런 경우가 자주 있다. 밤 12시에 나랑 얘기 좀 하잖다. 그래서 앉았더니 학교에서 친구랑 사이가 좋지않아 죽고싶을 정도로 힘들다면 또 운다. 부모 앞에서 우는 자녀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은 심정을. 두 시간 넘게 울길래 난 내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은서야, 세상 사람들이 다 너를 좋아할 수는 없어. 그리고 그 친구가 너를 힘들게하면 다른 친구들도 있으니까 그 친구들하고 놀면 되잖아."

딸은 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당연히 난 혼났다. 자기가 해결책을 모르는게 아니라 힘들어서 얘기하는건데 엄마는 자꾸 해결책을 얘기해준다나. 나는 밤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졸린 눈을 부여잡고 딸의 상담을 해주다 또 다시 혼이났다. 둘째도 자꾸 나를 혼낸다. 둘째는 기질이 INFJ라 삶이 잔잔한 편이다. 친구들이 많지 않은대신 깊게 사귀는 편이다. 그리고 감정 기복도 첫째보다는 덜하다. 그러나 내가 혼나는 지점은 거의 똑같다. 자기 말에 엄마 반응이 시원찮다는 것이다. 이래도 혼나고 저래도 혼나고.

난 아이들에게 이렇게 40이 넘어 지적질을 당하면서 내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봤다. 그런데 이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내게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이 꽤 많다. 20년이 넘게 오랜 시간을 곁에 있는 이들인데 그들과 나는 마음을 꽤 잘 나눈다. 내 아픔과 어려움을 표현하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고 친구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도 그렇다. 다 내일 같다. 만약 자식들의 말처럼 내가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면 내 곁에 친구들이 이렇게 오래 있어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왜 자녀들에게 혼나는가?

영혼없어 보이는 내 무미건조한 말들에 대한 나의 변은 간단하다.


첫째, 난 아이들의 삶이 진실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 당연히 공감도 하기 어렵다. 요새 아이들을 대표하는 그 MZ라는 말. 그들의 소비욕구, 그들의 화장에 대한 열심, 이성교제에 대한 생각, 마라탕에 대한 진심, 스티커 사진관을 문턱 닳토록 자주 드나드는 습관, 코인 노래방 단골, 새벽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핸드폰, 인스타로 만드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인맥.... 아무리 마음을 모아 공감하려고 해도 사실 내가 그들은 아니니 어렵다.


둘째, 자녀들의 아픔에 너무 공감해버리면 내 삶이 흔들린다. 그래서 난 거리두기를 시전한다. 아무리 자녀가 성장해도 내 몸에서 열달을 품고 힘들게 낳은 자녀들이다. 그들은 나와 다른 인격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나의 삶의 일부이다. 그래서 그들이 아파하면 내 삶이 뿌리채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아파서 흔들리고 그렇게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근본적으로 부모같아서 또 흔들린다. 그래서 완벽하게 공감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아파도 난 돈을 벌기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을 하러 일터로 나가야하고 일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두기가 나를 지킨다.


셋째, 그들을 향한 내 최소한의 애정이고 예의이다. 참으로 공감하지 어렵지만 대꾸는 해야하지 않는가? 고개만 주억거리며

"그래, 그래."

이런 소리만 하고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명색이 부모인데. 그러니까 최소한의 애정을 담아 뭐라도 씨부리는 것이다. 멋지게! 부모답게! 선배답게! 먼저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서의 조언을 듬뿍 담아서. 조금의 시행착오라도 줄었으면 해서. 그런데 결과는? 혼꾸녕이다.

애증이 난무하는 내 가정 이야기를 해봤다. 우리 자녀들에게 혼나도 기죽지말자. 지금까지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하지 않았나? 우리는 최고의 부모는 될 수 없다. 백만장자 부자가 아니라 금수저를 물려줄 수가 없다. 위인들의 어머니처럼 위대한 가르침 같은거 주기도 어렵다. 비싼 유학도 보내주기 어렵고 고액 관외는 꿈도 못꾼다. 하루 하루 일터에서 돌아와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지친 몸으로 집안 살림하다가 그렇게 쫓기듯 하루 사는것도 버겁다. 그러나 우리가 자녀를 버린것도 아니요, 학대하며 때린 것도 아니요, 욕을 하며 내쫒은 것도 아니요. 부모로서 고군부투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아이들에게 가끔 혼나면 또 어떠하리요. 그래도 이 세상에서 이 아이들을 가장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은 나 뿐인것을. 우리 말이 그들에게 AI처럼 들린다고 해도 개의치말고 계속 뭐라도 하자. 그냥 막 하자. 브라보! 부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