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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달걀 May 11. 2020

몹쓸 기억

말을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말을 되뇌고 곱씹으며 의미를 두는 나쁜 버릇도 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배려에 쉽게 감동을 받기도 하고

짧게 가시 돋친 말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잘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다.

혼자 잘하고 상처 받는 일도 잦다.

아주 작은 말에 긁힌 상처도 꽤 오래 아파하는 편이다.


결혼을 하고, 그 상처에 참 많이도 앓았었다.

잘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가슴을 후비는 말들을 한 마디씩 들으며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나를 지키려고 많이 외면하며 지내왔고,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음에 남편과의 다툼도 많았다. 아니, 부부싸움의 99퍼센트가 그로 인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내 마음에 생채기 내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고 지내왔다. 그런데 그렇게도 나에게 상처를 주고 매서운 눈빛으로 아프게 했던 시모가 나이 들고 병이 들어, 이제 나에게 아픈 말을 내뱉지 못하신다. 뭐라 하고 싶은데 차마 입 밖으로 말을 못 내뱉는다. 하필 고장이 나도 그 몸에 그리 몹쓸 고장이 났다.

항상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셨었다. 그저 뭘 해도 그러지 말라는 트집에, 이번엔 또 무슨 말로 나에게 상처를 줄까 심장을 움켜쥐고 마주했던 지난 몇 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안타까운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잊을법한 상처라 손가락질당해도, 나에겐 나의 10년을 앗아간 아픈 화살이다. 어떤 이유로든 씻어내지 못한 상처다.

그래서 여태 나는, 무슨 말이라도 들리면 여전히 움찔한다. 대체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걸까. 안타깝고 어쩔 줄 모르겠는 아린 마음 뒤에, 어떤 원망하는 말들이 오갈까 움찔하는 내 마음이 오늘따라 떳떳하질 못하다.

사람 노릇이란 참 어렵다. 그렇게 미웠던 그 말들이 참 많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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