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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달걀 Sep 04. 2016

또 그렇게 익숙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처럼

시간은 언제나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힘을 가진 녀석이다. 적어도 내 인생에 있어서는_


2003년,

면접을 보던 그 날에는 비가 엄청 쏟아져 내렸었다.

기술면접을 보면서, 삐죽거리며 콧방귀를 끼시는 상무님 발언에도 썩소를 날렸었지만- 결국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입사 후 공격면접 사유를 여쭈었을 때 상무님께서는 기억 안남으로 함구하셨다. 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팀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았던 그 순간을. 그 멘트를. 지리산 입문교육 때 정상까지 기어 오르며 온 몸이 멍 투성이가 되어도 가슴 벅찼던 그 날을, 처음으로 사원증을 받아 목에 걸고, 철통같은 보안의 게이트를 통과 하며 기술원 안을 통과했던 그 벅찬 순간들을 기억한다. 아마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파란색 목줄은 내 자부심이었다. 어떤 퇴근 길에는, 통근버스에서 내려도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자뻑에 빠지기도 했었다. 뭘 해도 의욕이 넘쳤던 그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 주는 곳.

울며불며 버틴 세월이 어느덧 13년이다.




입사 13주년이 다가오니 문득 마음이 허한 이유..


어느 날, 아주 이른 새벽.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그런 문자.

빅딜의 주체가 우리 회사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했다. 네임밸류, 배신감, 무너지는 자존감 등을 사유로.

그리고 나서, 서서히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입에 붙지 않아 어색했던 이름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익숙해졌다.




얼마 전, 새로운 사명을 공모했다.

이제는. 내가 처음 가슴에 품고 들어온 회사 이름이 영영 사라진다고. 앞뒤가 모두 바뀌는 이름이 참 많이 낯설고 마음이 허하다.

오래 된 친구를 잃어버리는 그런 기분 -


그렇지만 우리는 또 그렇게 익숙해질거다.

이미 새로운 조직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색깔과 이미지에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 이 야릇한 기분도 영영 사라질 날이 오긴 하겠지만,  사원증 하나만큼은 영영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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