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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달걀 Dec 12. 2017

또 잠시, 극성 엄마

겨울방학이 너무 길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겨울 방학이 무지 길어진다.

방학식을 늦게 하는 대신,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에 잠시 등교하던 공백을 없앤다는 게 취지였다.

사전에 설문조사라는 것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후 통보된 사실이라는 것을 옆 단지 학교 엄마의 말을 듣고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들의 반응은 반반이라고 했다. (여기에 나는 포함되지 않지만)

1. 중간에 며칠이라도 학교에 가서 숨통이 트였었는데 이제 어쩌냐 하는 부류

2. 완전 좋은 찬스다! 나가서 영어 배우고 와야지~하는 부류

단무지 엄마인 나는 둘 다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럼 우리 아들은 어떡하지?"


이미 연초에 계획되었던 일이었다.

알고 있은지 1년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동동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동동거리기 시작한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다.



유치원 때는 저녁 7시 하원이 가능한 유치원을 선택했고.

초등학교에 가서는 6시 퇴근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하는 스케줄이 가능한 학원을 등록했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는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에서 시간을 때우는 스케줄에 영어학원 하나를 더 넣어야 시간이 꽉 찼다. 지금 보내는 영어학원은, 혼자 보내면 외로울 것 같아서 친구랑 함께 보내기 시작 한 곳인데 중간에 친구 녀석이 그만두고 다른 학원으로 옮겼음에도 계속 보냈던 이유는 학년이 올라가면서도 시간 변동이 없는 곳이어서였다. 물론, 선생님에 대한 믿음도 한몫했지만 나에게는 시간표가 우선이었다.  


아이가 학원에 적응을 한 이후로,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도 드물었다. 작은 학원이다 보니 어떠한 피드백도 없었고, 퇴근 후 아이를 만나서 "오늘 잘 하고 왔어?"라고 물어보는 일이 그저 전부였던 무식한 엄마였지만 이 역시 아이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고 치자. (다행히 입력에 대한 출력이 정확한 녀석이라는 믿음.)

그런데 오랜만에 종이뭉치를 제본한 책을 들고 왔는데 평소와 달리 매우 두꺼웠다. 생각해보니 한 달에 한번씩 프린트물을 제본해서 들고 왔던 것 같은데. 두어 달치를 한꺼번에 묶어온 건가? 아주 오래전에 읽은 책에 대한 문제 풀이가 첫 장부터 들어 있었는데 온통 빨간 글씨 투성이었다. 예쁜 글씨로 첨삭이 되어 있길래 아이에게 물었다.

"잘 모르면 선생님한테 물어보라고 쓰여있네? 그래서 여쭤보고 왜 틀렸나 알았어? "

아이의 반응이 의외였다.

"에? 나 왜 이리 많이 틀렸어?"


아이 말로는, 숙제를 해서 낸 건데 선생님이 채점을 하면 자기 이름이 적힌 상자 안에 집어넣었고 제출한 지 몇 달만에 처음 보는 문제지라고 했다. 뭐, 이 녀석 말을 100퍼센트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 아이가 틀린 문제를 그냥 넘긴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컴플레인을 한 번 했던 적이 있던지라 마음이 단호해졌다. 그동안 신경을 잘 쓰지 않았던 나도 문제였고, 2년 반 동안 익숙해졌던 저 녀석도, 그런 아이를 허술하게 대하는 학원도 모두 문제였다. 화가 좀 나긴 했지만 30퍼센트는 보육 개념으로 맡긴 거니까 하며 위로를 했고, 한 달 동안 극성 엄마 모드로 돌입했다. (누군가는 이게 뭔 극성인가 하겠지만..)



점심시간에 계단 오르내리기를 시작한 지 열흘밖에 안됐는데 작심 열흘로 접어버리고 학원 겨울방학 스케줄을 알아봐야 했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진다. 나는 대체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입소문 난 학원들도 많다더니만, 나는 그런 정보도 쥐뿔 없는 단무지 엄마라는 게 슬펐다.)

당장 토요일에 레벨 테스트가 가능한 학원들을 모조리 뒤졌다. (레벨테스트라는 게 기분 상한지는 오래됐다. 학원이 학년별로 묶어 가르치면 됐지 웬 레벨 하며 무식한 소리를 지껄이기에는 이제 연차 있는 초등 맘인지라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레벨 시험 결과에 따라 감출 수 없는 나의 표정은 이미 나도 대한민국 엄마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안다.


이 무식한 엄마가 넣어주는 스케줄을 다행히 소화해 내고 지내던 고마운 아들 녀석은, 토요일임에도 한 시간씩 앉아서 총 세 군데의 학원에서 레벨 시험을 치렀다. 그렇게 3주가 흘러 아이의 겨울방학 스케줄의 절반을 완성했다. 나의 선택 기준은 또다시 "시간"이었다. (언제쯤 양질의 교육만을 찾을 수 있을까.)



오전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아주머니를 구하려니 "시급"을 요구하신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는 예산안 계류 중으로 12월 20일 이후 신청을 요구했고, 소득이 기준 이상인 경우 국비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시급 6500원으로 마음 놓고 서비스를 신청 , 연결이라도 되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안되면 동네 시세에 따라 아주머니를 찾아야 한다. 보통 훨씬 높은 금액에 시세가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하루 다섯 시간만 맡겨도 한 달에 백만 원이 훌쩍 넘는데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초등학생이 되어버리니 조금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아이돌보미는 아이만 돌봐주실 뿐, 집안일을 거들어주시지 못하도록 되어있기도 하다. 모든 걸 다 만족할 수는 없다.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



공무원인 언니, 선생님인 친구. 육아휴직이 3년이라고 떵떵거리며 자랑을 한다. 2년은 아기 어렸을 때, 1년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하다. (아닌 분들도 계시겠지만..)

부러우면 지는 건데 애 엄마로 살자니 제일 부러운 게 그들이더라.  사기업에 다니는 우리는 1년의 육아휴직을 눈치 보며 겨우 쓴다. (이 역시 아닌 분들도 계시겠지만..) 억울하면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을 봤어야 맞는 거지만, 어린 시절에 거기까지 생각하고 직업을 선택할 수 있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그리고 직업 선택의 기준이 육아를 위해서라는 사실도 슬프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올해 초등 엄마 1만 5천 명이 초등학생 아이로 하여금 일을 접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가 그 숫자에 포함되지 않고도 잘 버티고 있음에 마음속으로 내 머리를 쓰담쓰담하면서도 아픔만큼은 함께 공감했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한 가지를 포기했을까. 마음만 소심하게 울분을 토한다. 10년간, 수천 번 넘게 고민하고 접고 울면서  또 한 번의 고비와 부딪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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