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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181일, 불화(不和)의 시기

내 안의 불같은 화를 잠재워야 한다.

by 제니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_by 안나 카레니나
▷사진설명: 스페인 그라나다. 아름다웠던 그 곳.



백수 된 지 181일 되는 날이다. 지난 한 주도 다이나믹 했다. 그 한주를 정리해본다.




한남동, 구슬모아 당구장 3시간의 자유


미니 버킷리스트로 넣어도 될, 3시간의 edm노래를 듣고 왔다. 지난 8월 30일 버스로 4~5 정거장밖에 안 되는 한남동 '구슬모아 당구장'에 이상순이 온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광고성 메일을 열어보고, 3시간에 15,000원이라는 나름 적당한 가격이라 생각해 남편에게 칼퇴 가능 여부를 묻고 표를 예매했다. '나'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라 칼퇴 후 아이를 본다고 했다. 저녁 7시~10시까지 DJ 이상순과 또 한 명의 콜라보고 퇴근 후 즐기는 음악 어쩌고 해서 일단 질렀다.


대학생 때 댄스동아리를 했고, 교양수업으로 들은 자이브, 차차차가 너무 잘 맞아 행복했던 나.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의 유쾌한 술자리를 좋아하는 걸 깨달은 건 이미 뒤늦은 30대, 아이가 누워있는 방구석에서였다.


나는 나를 왜 몰랐던가에 안타까웠고, 나는 나의 취향을 왜 주장하지 못했을지 두 번째 안타까웠다. ANYWAY, 같이 갈 친구를 물색했으나 애 딸린 엄마들이 스케줄 빼기 쉽지 않고 사는 장소도 다 다르기에 과감히 홀로 가기로 결정.


2시 50분 하원->아들 친구 집에서 놀기 ->태권도 학원->저녁 테이크아웃->저녁식사->출발.

이러한 일정으로 집을 나섰다. 대충고 있던 옷을 입고 나오려니 남편이 바지도 좀 갈아입고 화장도 진하게 하고 가라고 한다. 어두운 곳 가는 거 아니냐며....


그래서 펑퍼짐한 통바지에서 살쪄서 너무 타이트해져 버린 미니 바지 블랙과 메이크업을 좀 더 진하게 하고 나갔다. 7시가 좀 넘어 도착하니 이미 애기처럼 보이는(내 기준의 애기는 대학생들이다) 커플들이 보였고 앳된 여학생들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 구역 젤 '노땅'을 나 같아서 좀 거시기했지만, 어둡고 잘 안 보이는 것에 위안을 얻고 금방 그곳과 일치됐다.


1부 DJ는 이상순이었고, 2부는 magico였다. '효리네 민박'에 나오는 이상순을 본다는 게 신기했고 반가웠다. 그런데 솔직히 디제잉은 2부가 좀 더 내 스타일에 맞았다. 사실, 20대에 클럽을 별로 가보지 못했기에 이 날 흥겹게 몸을 움직이다 갈 목적으로 온 건데, 몸을 움직이기엔 '덜'흥겨운 비슷한 풍의 노래가 이어졌다. 엉거주춤하게 흔들까 말까 하는 몸짓으로 있다 2부 이후 맥주 몇 병을 들이켠 뒤 앞줄에 나가 좌우 옆으로 움직였다. 대다수 앉아있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서있는 사람들 중 맨 앞줄 격렬히 몸을 흔드는 무리가 몇 있었는데 어느덧 나도 그들과 '한 무리'가 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꾸 사진을 찍어서 고개를 돌렸다.(나 애엄마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하는 마음으로...ㅎㅎ


이날 상당히 행복했다. 정확히 표현하지만, 2012년 2월, 웨딩촬영 이후 가장 행복했던 날이다.


행복했다는 의미는 내게 '자유롭고 신나는'으로 해석된다. 외부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역할이나 상황에 적절히 반응하는 게 아닌,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그 느낌. 아마도,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은 대부분 그런 순간들일 게다.


10시가 좀 넘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노는 것도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이미 6시 이전에 아들에게 많은 에너지를 썼기에... 중간중간 졸음과 씨름해야 했다.


▷사진설명: 15,000원에 입장료와 음료값이 표함된 이날, 중간에 이상순 님께 셀카 찍어도 되냐고 줌마투혼 발휘해 물었는데 셀카는 안 찍는다고 젠틀하게 까였다. ㅋㅋㅋ




표 갤러리, 하정우 전시를 보다


지난 8/31일 금요일, 전날 <구슬모아 당구장>에서의 숙취가 깨지 않은 안 좋은 컨디션으로 아들을 겨우 등원시켰다.


그런데 웬걸, 날씨가 너무 좋은 거다. 속도 부글부글, 몸은 쑤시고 잠이 덜 깼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느꼈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그때 하정우 무료 전시가 마지막이라는 링크가 생각났다. 특별히 하정우 광팬도 아니고 미술 애호가도 아니지만, 무료 전시에 날씨가 좋아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금호동으로 이사 온 뒤 버스를 자주 타는데, 전철 탈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주변 경치도 보게 되고 이 동네 집들은 어떻게 생겼나, 나중에 살만한 동네인가 네이버 부동산을 켜서 집값도 보고 그런다. 새로운 곳은 언제나 흥미롭다.


중간에 순천향대학교에서 한 번 갈아타고 서대문 역사박물관인가 하는 곳에서 하차했다. 아날로그 모드인 나지만, 네이버 지도 길 찾기를 보며 목적지까지 향했다. 아주 오랜만이다 이 뒷길. 여전히 고즈넉하고 여유롭다. 시간은 이른 11시 전 후로 사람이 많지도 않고 바람도 제법 불었다.


표갤러리에 도착해 2층 무료 전시를 보고 나왔다. 하정우는 참 매력적으로 다재다능하다. 그런데 든 생각은, 요즘같이 고학력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유명인의 그림 전시 등은 나름 메리트가 있는 거라는 사실이다. 작품이 먼저고 그 뒤 작가가 붙는 건지, 작가 메리트가 붙고, 그 뒤 작품이 해석되는지는 모르겠다. 수많은 무명 아티스트들이 전시회 한 번 열려고 동분서주할 텐데, 뛰어난 유명인 아티스트의 전시는 그들에겐 박탈감을 주진 않을까 주제넘은 생각을 해봤다. 암튼 부러웠다 결론은.(하정우 님 멋지십니다!!)



▷사진설명: 표갤러리에서 전시된 하정우 개인전. 인물과 색감 표현이 뛰어나다.




옥수역, 한강을 걸으며 하염없이 울다


9/1일 토요일,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바람과 함께 달력을 찢고 새로운 다짐을 시작한 날.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가 눈물바다로 마감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어제는 여섯 번째 부부상담을 받는 날이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진행 중인데, 그러기 위해선 수원에서 엄마가 우리 집 까지 와서 아들을 봐줘야 가능하다. 딸이 좀 더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한걸음에 달려오는 엄마. 그 고마움을 잘 아는데 결론이 어그러졌다.


상담을 하고 돌아오면 분위기가 심각하게 냉담해진다. 상담사 선생님은 <상담 후 2차전 금지>라는 규칙을 주셨지만 1시간 30분~2시간 동안 날 선 공격적인 말들이 이어진 상황은 쉽게 종결되지 않는다. 가슴에 앙금을 남기며 사그라지지 않은 분노를 동반한다.


나에 대해선, 실상은 여린데 다소 센 말이 마이너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피드백이 여실히 드러난 저녁. 상담 마치고 집으로 오니 찜닭을 해 놓고 기다린 엄마. 잠이 든 아들을 뒤로하고 셋이 어색한 저녁식사를 하고 엄마를 옥수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멀리 까지 온 엄마를 그냥 보내기 그래서 커피숍에 들어가 팥빙수를 시켰다. 상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화근은 옛이야기였다.


특별히 그 주제를 꺼내려고 한 건 아니고,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다 '민감한 옛 주제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이미 그 '단어'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무의식적인 엄마의 방어기제 앞에서 나의 방어기제도 튀어나왔다. 기분 좋게 들어간 커피숍에서 얼굴을 붉히며 따로따로 나온 뒤 옥수역 앞에서도 독설로 헤어졌다.


나를 가장 자극했던 말은 "엄마 친구 딸 000들도 당연히 그랬는데 너는 왜 그래"였다.


그놈의 엄마 친구 딸들은 왜 다 모범적인지..... 전체 100을 놓고 엄마 친구들이 속한 '그룹'은 지극히 0.1%에 들 정도의 특별한 그룹인데, 엄마는 그 그룹이 전체의 100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비정상이 되어 버린다. 내 친구들이 볼 때는 나 같은 딸이 없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동안 참고 있던 속 안의 화가 한꺼번에 몰려나와서 나도 뱉어버렸다.


"아 됐다고, 그럼 그 친구 딸을 딸 삼어 난 안 할 테니까."


엄마의 얼굴도 보지 않고,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거칠게 말하고 돌아섰다. 마트에 가서 KGB 한 캔을 사서 한강으로 향했다. 보통은 자전거를 타는데 이날은 걷고 싶었다. 아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산책도로를 따라 걷는데 닭똥 같은 눈물이 나왔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고 걷고, 사람들이 혹시나 볼까 고개를 돌리고.... 누가 보면 실연당한 줄 알았을 거다. 정말, 거의 처음으로 '꺼이꺼이' 울었다.


눈물,,,,남편의 말에 의하면 내가 우는 건 <분노>의 눈물이라고 한다. 그가 본 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닌, 억울함과 분노가 많은 공격적인 눈물이었다. 하나, 어제의 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었다. 그 어떤 방어나 조작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슬픔의 눈물...... 마치, 아이가 흘리는 대성통곡의 슬픔의 눈물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걷고 있는데 생각이 스쳤다. 서른여섯을 살아오며 나는 왜 씩씩하게만 살아왔을까. 홀로 있을 때의 나는 어린아이 같이 작고 연약하며, 상대가 나를 '유리알 같이 조심스럽고 소중히'다뤄주길 소망하는데 말이다.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어떤 것이 나를 All in 하는 것을 막았을까. 10대 시절 H.O.T 팬일 때도 내가 허용한 범위는 음악 테이프 사기, 잡지 스크랩 정도였다. 콘서트를 간다거나 팬클럽 활동을 한다거나 하는 <약간 적극적> 행위를 스스로 자제했다. '즐기되 빠지지 말자'는 명언을 곱씹으며 스스로 경계해왔다.


20대, 연애를 할 때도 눈물을 쏙 빼거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적은 없다.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고, 날 좋아하지 않으면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적당한 연애를 해왔다. 사랑을 받으며, 받는 게 남는 거라고 생각하고 '주는 사랑'은 절제해왔다. 왠지, 손해 보는 느낌과 그러면 안 될 거라는, "즐기되 빠지지 말자"는 다짐이 여젼히 작동했다.


20~30대, 일을 할 때는 몰입했지만, 어떤 조직에 빠지는 건 경계해왔다. 왠지, 노예로 전락하는 느낌이기에 나를 '지키고'싶었다. 출산 후에도 아이가 예쁘지만, 이대로 있는 건 '나'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좀 더 자기계발에 열심이었다.


10대, 20대, 30대 내게 직면한 사건과 주제는 달라졌지만 나의 <대응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적당히 상처받을 것 같으면 발을 빼겠다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내가 선택한 그것은 '나 외에는 깊이 빠지지 말자'였는지 모르겠다.


그런 나는 후회와 미련이 많다. 엄마가 잘 들어갔는지 궁금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와 딸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늘 그렇듯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면서.....

▷사진설명: 홀로 한강변을 걸었다. 아름다운 이 길만이 나를 위로해줬다.




다음 주, 오랜만에 면접을 본다


나의 '갭이어'가 9월 한 달밖에 안 남았기에 후의 일정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그러던 중 지난주 무렵 헤드헌터에게 추천이 왔고 직무가 마음에 들어 이력서를 넣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1차 면접 제의가 왔고 그 날짜는 다음 주 화요일이다.


1차 면접 제의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다니... 사실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면접에 오라는 그 말 한마디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아직, 사회에서 쓸모가 있는 존재구나. 나 스스로 밥벌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구나. 이 느낌이 나를 움직였다. 아.... 나란 사람은 역시 뭔가 일을 해야 하구나. 그게 나구나.....


사실, 간절히 소망하지는 않을 거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집착하면 될 일도 안 되기에... 나와 맞는 곳이라면 다시 멋지게 일을 시작하고,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기회가 올 것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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