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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첫 해외여행, 베트남 호치민에 오다.

둘이 비행기 탄 거 실화냐!!!

by 제니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 위급상황에서 당신이 가지고 나올 단 한가지는 무엇인가요?



모든 시작은 우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모든 일은 예상치 않은 우연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베트남 호치민에 와 있는 이유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러하다.


인연은 신비한 게 알고 지낸 지 오래되지 않고, 만남의 횟수가 많지 않아도

이상하게 꾸준히 연락이 와 닿고, 가끔씩 보게 되는 그런 관계가 있다.


6년여 전, 교육과정을 함께 수강했던 이름도 아름다운 언니와 꾸준히 연락을 이어오고 종종 만남을 가져왔다. 1년 6개월 전쯤에 베트남 호치민으로 주재원으로 오게 돼 와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한번 놀러 오라고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나의 빛의 추진력으로 성사되고 만 것이다.


아들의 유치원 봄방학 3주를 맞이하고, 나 또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고 다짐한 3월 전 2월 중, 후반의 지금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남편 또한 흔쾌히 다녀오라 이야기를 해 왕복 비행기 표를 끊은 것부터 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6세, 청말띠 남자 사람 아이와 여행길에 오르다


아들과 해외를 한 건 처음은 아니다.

작년 여름, 괌에 5박 6일 정도 다녀왔고 그 전에도 제주도 등 국내 여행을 틈틈이 다녔다.

그러나 3인 가족, 아이 하나와 어른 둘의 인원이 함께 하는 여행에서 아들 케어는 대부분 '남편'이 담당했다.


사실 아들 케어뿐만 아니라 숙소 예약, 비행기 예약, 체크인, 체크아웃, 길 찾기, 운전 등 잡다구리 한 일들 모두 남편이 도맡았다. 나의 역할은 짐 싸고, 계획 짜고, 책 몇 권 싸가서 우아하게 책 읽는 것이었다. 아 맞다, 쇼핑도 필수고. (나 쇼핑할 때 남편은 아이 데리고 따로 어딘가에서 놀기... 등)


그러나, 이번 여행은 다르다.

나와 아들 둘이 간다는 의미는, 숙소 예약~비행기 수속(짐 붙이고 찾기, 자잘한 수속 및 확인하기 등) 그런 것들을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20살 이후부터 독립적으로 해외(핀란드)에서 교환학생도 1년 해보고, 교환학생 끝나고도 근처 유럽을 왔다 갔다 많이 했다고 한다. 스스로 해외 저가비행기를 예약하고 타고 이동하는 등 독립적으로 그런 것들을 한 경험이 많았다.


나는, 중고등학교 통금 7시~대학생 때 10시 등... 엄격한 가풍으로 인해 외박도 잘하지 못했고 생각해보면 혼자서 간 여행은 국내 제주도 2번뿐이었다. 24살에 뉴질랜드 6개월 어학연수를 갔지만 그것도 어떤 단체에서 그룹으로 간 것이라 내가 행정처리나 구체적 계획, 발권, 티켓팅 등 그런 것들을 해보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어딘가 간 경험은 많지만 파트너가 있는 경우 귀찮은 일들은 파트너가 많이 수행한 것 같다. 결론은, 이 나이 먹고도 스스로 비행기 티켓 예약, 환전, 유심 갈아 끼우기, 체크인 등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약간의 서툼과 시작 전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올라오긴 한다.


물론 안다.
이것은 단지 경험이 없어서지 여러 번 하고 나면 쉽고 익숙해진다는 것을.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이번 여행은 남편 없는 나의 홀로서기와 아들 전담 케어 여행이 될 것이다.

(다행히, 현지에 아는 언니가 가이드도 해주고 많은 환대를 해주어 단 둘이 간 것보단 편하게 여행하겠지만.)


기대하고 찾은 썬글라스 케이스가 없어 분노하고 있는 그 1분사이 공항 내 유아휴게소에서 놀던 아들은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가보니 혀를 깨물었는지 피가나고 있었다...


면세점에서 선글라스 한번 샀다 다음날 다시 환불하고 내 눈에 쏙 든 지미추 선글라스... 그런데 면세품 인도하고 풀어보니 케이스도 없이 온 게 아닌가...반품하려다 참았다.
남편없이 아들과 단둘이 떠나는 첫 해외여행!!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5시간 넘는 비행기에서 가장 큰 효자는 '헬로카봇 영상'


아들이 지루해할 것을 염두해 남편이 노트북에 헬로카봇 극장판부터 또봇, 공룡 메카드 등 몇 개를 넣어 주었다. 겨우겨우 베트남 항공에 탑승 후 잠시 낮잠 주무시던 아들....


잠에서 깬 뒤 점심 식사 후 영상 시청을 쭉~~~ 넘나 오래 보는 것 같아 좀 거시기했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비행기에서 헬로카봇과 공룡 메카드 영화 덕분에 아주 조용히, 우아하게 베트남에 도착할 수 있었다.


3단콤보 낮잠 주무시는 아드님~~~영상 보겠다는 목표로 본인 헤드폰도 꼭 챙김
기내식도 괜찮고, 아들 헬로카봇 영화볼때 챙겨온 책 한권을 다 읽었다. 어머나 이 작가님, 옥수동이면 우리집 근처에 살고 있었네???(아직 이사 안 갔다면~)




6살 동갑 친구와의 즐거운 수영


베트남 공항에 3시 5분쯤 도착했는데, 입국 수속하고 짐을 찾는데 오래 걸려서 4시 전후로 픽업을 나온 언니를 만났다. 낯선 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쩜 이렇게 반가울 수 있는지... 그것도 아들과 함께 오니 말이다. 언니는 4학년 아들과 6살 딸을 데리고 나와 있었고, 웰컴 티라고 커피와 콜라를 사 왔다.


공항을 나오면 느껴지는 이국적인 풍경과 냄새. 특히나 식물이 한몫하는데 괌에서 본 듯한 풍경이 보이는 듯도 하고 제주도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마 나무 때문인 것 같다. 습도도 한국보다 높은 게 공기로 느껴진다.


차로 숙소로 향하는 길에 창문으로 풍경을 보았다. 시내라 그런지 내가 들어왔던 그 어려웠던 베트남이라는 이미지보다는, 한국과 비슷해 보이는 것도 많았다. 고층 건물들도 많고 뭔가 번화한 느낌이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건물들... 영어로 쓰여있는 간판들...간판 색상을 보니 뭔가 골드와 레드 등을 좋아하는 느낌이다.


듣던 대로 오토바이가 많고 그랩 초록색 모자를 쓴 사람도 봤다. 이번 여행에 그랩을 이용할 일이 있을 것도 같아서 좀 더 관심이 갔다. 3박 4일로 예약한 에어비앤비에 체크인을 하고, 단지 내 수영장에서 아이들은 짧게나마 즐겁게 물놀이를 했다.


수영이 끝나고, 초대해준 언니네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낯선 땅에서 누군가의 호의는 경계심을 갖고있는 불안한 여행자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나 또한, 한국에 누군가가 오거나 초대할 때면 귀하게 대접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처음에 조금 어색했지만, 금세 친해진 아이들은 신나게 수영을 했다.




설렘이 공포로 바뀌는 그 시간, 1분


재즈 음악을 들으며, 오늘 여행 사진을 정리하고 즐겁게 글을 쓰고 있는데....

행복한 여행의 설렘이 갑자기 공포로 변하는 그 시간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호치민 빈홈 센트럴파크 20층에 에어비앤비로 3박 4일 머무르는 중, 노트북 자판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재 경고음이 아주 크게 울렸다. 오늘 시차와 일찍 일어나 5시간 넘게 비행기 탄 아들은 곤히 자고 있는데 나는 너무나 당황하고 놀라서 어찌할 줄 몰랐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는데, 경고음이 더 크게 울려서 뭔 일이 있는지 복도로 걸어가는 순간 빨간색 경고 불이 울리면서 복도에 엄청 큰 경고음이 울리는 거다. 순간 나는 불이 난 줄 알고 아들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며, 여권과 노트북을 백팩에 챙기고 잠옷 입고 자는 아들을 깨웠다.


"00야 00야 우리 나가야 해 어서 일어나......"


다급한 나의 목소리와는 달리,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아들은 반쯤 잠긴 눈으로 누워있었다.

미친 듯이 짐을 챙기고 문을 열고 나왔는데 옆집에서 외국인 아저씨가 오더니, 화재 경보음인데 가끔 요리할 때 연기 나면 이런 소리가 나기도 해서 경비(관리) 아저씨한테 가보라고 연락했으니 들어가도 된다는 거다.


나는, 잘 되지도 않은 영어를 표정과 함께 하면서, 오늘 처음으로 여행 와서 나는 너무나도 놀랐다. 불이 난 거 아니냐 괜찮냐를 수없이 물었고, 그 이웃은 무슨 일이 있으면 영어로 안내방송이 나올 거라고 말했다. 불안함에 혹시라도 불나거나 뭔 일 있으면 노크해서 나한테도 알려달라고 말하고 방문을 닫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동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 힘들었다. 아주 짧은 그 1분 안에 나는 빛의 속도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만 챙기고 탈출하려는 액션을 했다.

2개의 여행가방, 면세점에서 쇼핑한 물품들, 옷가지와 그 외의 짐들....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여권, 노트북을 넣은 백팩만 챙겨서 아들만 데리고 탈출을 감행하려고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천만다행이지만, 현대적이고 세련된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남은 2박을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내일 오전부터 시작되는 일정을 위해서도 잠을 좀 자야 하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얼마나 다급히 움직였으면 온 몸의 근육이 놀랐는지 전신이 쑤시고 근육이 경직되었다.


나를 신뢰하는지, 우리 아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마는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너무나도 잘 자고 있다.

보호자란, 이런 거구나.... 아들과 첫 여행 첫날밤에서 그 의미와 무게를 리얼하게 경험하는구나.


아주 짧은 순간의 경험이지만 순식간에 많은 깨달음이 스쳤다.


-진짜 위급한 순간에는 정말 중요한 것만 챙기는구나. 삶을 단순화해야겠다.


-그간 <통제>의 부정적 측면만 보며 불만을 가졌었는데 그 안에는 <보호>라는 긍정측면이 숨어 있었다는 것. <낯섦과 설렘>의 긍정측면에는 <위험>이라는 요소가 숨어있다는 것.


-남편이 우리 가정에서 그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아서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


-모든 것은 한순간이다.



여행은, 애고 어른이고 성장하게 만든다. 익숙함을 벗어나 다른 환경을 접하면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버린달까.



내일 일정을 위해서도 이제는 잠을 자야 한다........

(말도 통하지 않고 로밍 차단해서 전화도 되지 않는 이 상황 속 그간 보호자 역할을 한 남편의 부재가 아주 크게 느껴졌다. 늘 불만을 토로하며 구박하고 했는데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나고 고마운 존재구나 내 남편. 한국에 돌아가면 감사하며 더 잘해줘야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감탄했는데....화재경고음이 울린 뒤로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기나...무서워서 잠이 안온다 ㅠㅠ(물론, 실거주인들은 익숙하겠지만....)



여담)

너무 놀라서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이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근처에서 누가 음식 하다가 연기가 많이 나왔나 보다고 한다. 고층 아파트는 연기 감지 시스템을 정밀하게 세팅해놔서 그럴 거라고....


본인도 예전에 아파트 살 때 처음에는 나처럼 반응하다 두세 번 그러니까 소방차가 출동해도 탈출 안 하게 됐다고 한다. 안전불감증이라고.. 이런 것도 익숙해지는 건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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