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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365일, 사업자를 내다.

이제 1년의 백수생활에 마침표를 찍다.

by 제니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 현실적 제약이 없다면 어떤 일(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오늘, 아들 유치원 6세 첫 등원일


그리고, 나의 백수 1주년이다.

길었던 여름방학, 겨울방학, 봄방학을 뒤로하고 이제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6세 형님이 되었다.

작년에 같은 반 친구 중 좋아하는 친구들이 같은 반으로 많이 올라가서, 오늘 첫 등원 길이 눈물바다가 아닌 콧노래가 나오는 신나는 길이 되었다.

(작년 5세 첫 등원 길에서는 유치원 도착하자마자 울고.. 한 3주간 울었던 것 같다... 대견한 아들... 많이 컸다.)


작년 3월 퇴직 후, 집으로 들어온 뒤 3월이 내 생애 가장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차려주는 밥도 자느라 못 먹고 나갔던 나에게 삼시세끼 차리며 아들과 온종일 한 공간에 있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보험영업이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웃바운드 영업을 하는 게 더 쉬울 정도로....


나에게 가장 아킬레스 건이자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육아>를 정면으로 직면해 부딪힌 1년의 시간들.

이제는, 아들과 한 공간에 하루 종일 있는 게 참 좋다. 물론 중간중간 서로 짜증도 내고 말 안들을 때는 억 소리도 나지만 심리적인 두려움은 사라졌다.


내 안에 가득했던 두려움의 요소 하나를 정복했다고나 할까.



'좋은 엄마'프레임 내려놓기

지난 1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나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참 많이 노력했다.


퇴직까지 하고 집에 들어왔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완벽주의,

내 속에 가득 차 있던 <엄마는 00 해야해>라는 좋은 엄마 프레임까지.


그런 마음으로 부단히 노력했고, 잘 안 되는 내 모습에 수없이 실망하고 좌절했다.

95% 책 육아처럼 아이를 존중하고, 물어봐주고, 기다리고 참다가

막판 5%에 대한항공 조현아 씨 영상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아이에게 분노의 저주를 퍼부었다.

(모든 사건, 관계는 쌍방이기에 영상 속 괴물과 같은 모습이 나오게 된 원인은 아마 있을 거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어 잠 못 자고 자아비판한 무수한 세월들....

중요한 내용은 집 벽에 있는 칠판에 메모까지 했는데, 일상에서는 왜 잘 안 되는 건지 자책했다.


우리 엄마 또한 카리스마 넘치고, 서른여섯부터는 지금까지 30년 넘게 오너 일을 하셔서 나는 아빠와 함께한 시간이 더 많았고, 엄마에게 편하게 내 이야기를 한 경험이 많이 없다. 나 또한 유전적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엄마 포스다. 그래서 더욱, 우리 아들은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나에게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노력 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남편과 아들과 함께 침대에 누워 수수께끼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 아마도 시간은 저녁 10시 정도였겠다.

즐겁게 깔깔거리다 거실에 나갔는데, 갑자기 장난감을 놀고 하나도 정리하지 않아 난장판이 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부엌에 가니 설거지 거리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 남편은 이렇게 자겠고, 월요일에 봄방학이라 유치원을 안 가는 아들 아침밥을 차려주고 해야 하는데 언제 거실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또 하냐는 짜증이 속에서 훅 올라왔다.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지며 나는 비난의 화살을 폭격처럼 아들에게 가했다.

왜 장난감을 놀고 정리를 하지 않냐고, 정리하지 않으면 싹 다 버려버리겠다고 했고 돌변한 내 모습에 남편은 당황한 눈치였다.


설거지를 한다고 부엌으로 나갔고 갑자기 아들이 안방에서 나오더니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미안해요...."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나는, 그 말을 듣자 화가 더 나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에게 편하고 무슨 얘기라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되고 싶은데 아들은 나의 눈치를 살피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그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었다.


"너, 네가 생각해서 말한 거야 누가 알려준 거야?"


라고 말하니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빠한테 물어봤더니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


순간 화가 더 몰려왔다.


아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서 아빠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꿈꾸는 이상적 어머니의 모습에서 멀어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정말 너무 잘못한 것 아니면 엄마한테는 사과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 엄마한테 궁금한 거 있으면 엄마한테 직접 물어봐. 아빠랑 엄마는 다른 사람이야. 엄마가 생각하는 것과 아빠가 생각하는 게 다를 수 있어. "


나는, 아들에게 '고맙고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지 '미안해'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아들에게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그늘이 되고 싶지, 나의 힘듦을 아들이 눈치 보며 살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행동도 달라져야겠지만....

(남편은 아직도 내가 왜 저녁 10시를 기점으로 달라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그걸 위해 1년간 내 시간을 희생하고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함께하고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은 그저 밝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게 아니었을까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백수 365일을 종료하는 오늘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앞으로는 좋은 엄마가 되지 않겠다. 그저 평범한 보통 엄마가 되겠다.
엄마는 항상 웃어야 하고 행복해야 하고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는 명제를 벗어나 엄마도 가끔 화도 나고, 짜증도 내고, 아이와 분리되고 싶어 한다는 평범함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함 안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비난할 자격도 없고 비난받을 자격도 없다.


아들이 내 앞에서 본인의 모습을 잘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ㅎㅎㅎ




새로운 도전, 리워크 스튜디오!

약간의 똘기와 책임감으로 사표내고 집에서 아이와 함께한 지난 1년.

갭이어를 통해 번아웃된 나도 좀 다스려보고 좀 더 아이에게 집중하고자 했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작년 가을 이후로 회사에 입사 원서를 10군데 넘게 썼고, 면접을 4군에 정도는 본 것 같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 신년사 쓰기 과제 후 먹튀 한 회사도 생각나고...(h금융그룹 그러지 마라 진짜 떨어지면 떨어졌다고 알려라도 줘야지.....)


취업이 되면 다시 회사를 다닐 생각이었으나 취업이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내 맘속에만 간직했던 것들을 펼쳐보기 위해 사업자를 냈다.


회사 이름도 참 많이 고민했는데, 다수가 마음에 든다는 이름으로 우선 선택했다.

리워크 스튜디오.... rewalk, rework....넘어졌지만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주고,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회사. 나 또한 이름처럼 다시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코칭, 교육, 컨설팅 종목으로 일단 등록을 했지만.... 갈길이 멀다.


이제, 한걸음 내디뎠다.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행복하고, 힘들고, 장애물이 많을지 잘 모르지만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별것 아닌 나의 경험을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비전을 심어주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와중에 좋은 만남과 성장이 있으면 더 좋지.


아들, 이제 엄마가 작년만큼은 많이 함께하지 못하지만 너와 나는 작년보다 더 강해졌기에 서로 잘 해내리라 믿는다. 너의 눈물 많고 내향적인 성향을 나 또한 비난하지 않고 토닥여주며 위로해주는 엄마가 되도록 할게. 너 또한, 엄마의 힘찬 새 출발을 마음속 깊이 응원해주길 바란다!!!


우리에게 기억에 남을 2019년 3월 5일. 엄마의 사업자 개시일.

<엄유정> 작가의 일러스트. 디뮤지엄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전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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