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_멋쟁이 패셔니스트 할머니와 손주/ 외할머니 찬스로 아들이 고른 책가방/ 이사갈 학교 예비소집일 참석기념~
오랜만에 쓰는 글.
다사다난하지 못했던 지난 2020년.
한 해가 훌쩍 지나가버렸다.
전반기는 책 작업과 코로나로 인한 아이 양육으로 바빴고
후반기는 심, 신의 건강 악화로 치료하느라 바빴다.
보통, 연말에는 한 해를 평가하고 새 해 계획을 세우는 루틴은 지켜지지 못했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어느 하루처럼 훌쩍 지나가버렸다.
기운을 내어 의자에 앉아보니, 오늘은 1월 7일. 2021년이다.
내 브런치 매거진들이 서른넷부터 아마 시작했을 텐데, 서른아홉이라니.... 세월이 참......
서른넷,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 그 당시에 내가 꿈꾸던 서른아홉의 모습은, 지금 하나도 없지만.
5년이 훌쩍 흘렀다. 나는 서른넷 즈음만 해도 마흔이라는 나이는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는데,,, 어느덧 코 앞에 다가왔다. 와, 세월 참....
정확히 아들 5살 때, 서울 금호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 당시 전에 살던 집의 문제로 급하게 전세를 얻은 것도 있지만, 나와 남편의 직장 중간 위치이자 핫 하다고 해서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 왔었다.
한 2년쯤 살아보고 정착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물론, 이사 올 당시 대출로 매매를 하자 말자의 의견 다툼이 있었고 집안 사정상 대출로 전세를 온 게 화근이었다. 요즘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집 문제로 부부갈등이 심하다는 그 집 중 우리도 포함이다 ㅎㅎㅎ)
아무튼, 내 간절한 소망은 아이를 잘 적응시켜서 동네 친구도 만들어 주고 그렇게 해서 초, 중, 고를 전학하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해서 보내기였으나..... 매우 창열하게 그 소망은 좌절되어 버렸다.
(나는 유치원때 한 번 이사와 전학,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와 전학, 중학교 2학년 때 이사와 전학, 고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한 경험이 있기에 아들에게는 나와는 다른 환경을 물려주고 싶은게 간절한 바람이었다.)
올 2월, 나는 다시 수원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간다. 내 나이 스물셋, 대학생 시절 부모님이 갑자기 이사가 버린 그곳으로. 애 낳고 사당에서 너무 힘들어서 도움을 받기 위해 이사 갔던 그 동네. 다신 안 올 것 같이 멀리 떠나왔으나 마치 연어처럼 나는 다시 돌아간다. ㅎㅎㅎㅎㅎㅎㅎ
그렇게 결정한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작년 예측하지 못한 코로나로 인해 내가 계획한 일들을 하나도 이루지 못함.
-코로나 사태로 인해 초등학교 육아 양육을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다시 받기로 결정함.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과 집값 문제 등으로 인한 현실적 이슈
-그러면서 나는 다시 페이를 버는 일을 시작하기로 함. (아이를 바로 앞에서 돌보면서, 경력과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이기에.)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큰 충격을 받아 급격히 떨어진 심신의 회복과 안정을 위해 부모님 곁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서수원은 수원 중에서도 아직 개발이 덜 될 곳으로 비행기 소음이 좀 심한 곳이다.
그전에 두 번 살 때는 사실 생활권이 아니라 멀다는 것 빼곤 크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대학생 시절에는 하숙생처럼 잠만, 애 낳고도 곧 재취업을 했기에 출퇴근을 했기에 낮에는 집에 없었다.)
엄마는 이제 익숙해져서 비행기가 날아가는지도 모른다고는 하지만.... 난 가끔 비행기 소리를 들으면 전쟁이 난 것처럼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소음이 좀 크니 비행기 소음 관련 피해보상도 해주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가기를 좀 망설였는데, 사람이 절박하면 고민거리는 고민거리가 아니게 되더라. 이번에 이사 가서는, 좋은 것만 바라보기로.... 불편하고 힘든 것 잘 감당해보기로....
부모님도 2년 뒤 시골로 은퇴하신다고 하시니, 좋은 추억을 쌓고 아들도 2학년까지 잘 마치고... 나도 새로운 일을 잘 시작해보자. 아들 3학년 때 다시 서울로 이사 와서 정착하는 게 목표인데.. 잘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ㅎ
인생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기에.
p.s 사랑하는 아들이, 어느덧 8세 예비 초등학생이 되었구나. 잘 자라줘고 고맙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