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 Apr 09. 2022

[리뷰] 뒤라스의 말

'중단된 열정,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누군지 잘 몰랐지만, 마음산책에서 나온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들과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보면서, 글쓰기에 대해서 또는 그녀의 사상이나 생각에 대해서 메모를 해두었다.

--------------------------------------------------------------------------------------------------------------------------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77297&cid=44546&categoryId=44546




#유년시절


난 나를 짓누르는 '침묵'을 말하게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열두 살 때인가. 오직 글쓰기만이 방법인 것 같았죠.


-한 인간의 존재 속에서 엄마란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에 결단코, 가장 이상하고 예측이 불가하며 파악되지 않는 사람일 거예요.우리 엄마는 건장하고, 강한 여자였어요. 어쨌든 우리가 놓였던 그 움울한 삶의 국면으로부터 언제든 우리를 보호할 준비가 돼 있었죠.


-엄마의 광기는 내 속에 영원히 각인됐죠. 염세주의도 그렇고요. 엄마는 우리 모두를 멸절시킬 전쟁이나 자연재해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살았어요. 결국 내게도 농부에게 강한 정서인, 가정의 아늑함이라는 정서를 물려주고야 말았죠. 가정을 마지막 보루나 피신처처럼 느끼는거죠.


-가족이 내가 무얼 하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문 뒤에서, 그 모든 세월을 보내는 건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죠. 새 삶을 시작하고 싶었고, 엄마한테 내가 혼자서 삶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는 엄마가 미리 정해놓은 것이 우리에게 가능한 유일한 모험이기 때문에, 집에서 도망치는 게 아닐까요?


-첫 시험을 치렀을 때,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그 고질적인 결핍감이 극복되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식민지의 공무원이나 세관원 같은, 당신이 높은 자리라고 여기는 이들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었거든요.


-아니요, 바흐를 듣는 건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젊고 순진할 때 얘기죠. 어떤 것도 나를 뒤흔들지 못할 때 말이에요. 오늘날, 바흐를 듣는 건 고문이에요. 고통의 효과가 엄청나죠. 사람들이 내게 와서 하루 온종일 모차르트를 들었노라는 말을 할 때면 웃고 싶어져요.


글쓰기는 매번 앞서의 문체를 깨뜨리고 새로운 문체를 창조하면서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에요


-자동화, 원거리통신, 정보화 등이 인간의 수고를 덜어준 끝에 결국 창의력을 둔화시킬 거예요. 기억을 잃은 납작하고 밋밋한 인류가 될 위험이 있죠. 하지만 인류의 문제점에 대해선 아무리 떠들어대봤자 소용 없어요. 우리는 하루하루,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이어 가고 있으니까요.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서, 아니면 늘 그렇듯 신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난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을 즐겨요. 상황을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기분을, 사람들의 '불안감'은 스스로 자기 인생의 심판이 아니며 원하던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는 비극의 자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글쓰기의 여정


열정으로 기진하여 말로 털어놓을 기력이 없어서, 글로 쓰기로 결심했죠. 거의 냉정하게


-(선생님께서 글을 쓰게 한 동력을 무엇이었나요?"

내가 느낀 무언가를 지체 없이, 설사 완벽한 형태가 아닐지라도, 백지에 복원해놓을 필요성이요. 당시엔 책들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어요. 아마 쓰기에 급급해서 불가피하게, 내게 영향을 끼친 그 모든 것들을 인식하지 못했을 거예요. 대개 두 번째 책부야 비로소 자신이 어떤 방향의 글쓰기를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이죠. 우리를 사로잡는 문학이라는 개념의 매혹과 서서히 거리를 두면서요.


-기뻐요. 내게서 나온 뭔가가 누군가의 것이 되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텍스트 분석에 대하여


오직 결여와, 연속되는 의미들 속에 숭숭 뚫린 구멍들과, 빈 공간에서만,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어요.


-언어는 무의식적 자동기술과 결별하고, 시간에 마모된 것 들을 정화하는 거예요.


-글쓰기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이야기를 둘러싼 것들을 환기시켜, 이야기를 중심에서 순간을 창조하고, 이어서 또 다른 순간을 게속해서 창조하는 작업이에요. 거기엔 모든 것이 있고,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으며, 두 경우가 교환 가능할 수도 있죠.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처럼 말이에요.



#문학


-모든 작가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자기 자신에 관해 써요.


-사람들이 왜 글을 쓰는지는 나도 잘 몰라요. 어쩌면 유년시절의 고독 때문이 아닐까요.


-작가에게는 두 개의 삶이 있어요. 하나는 하루하루 그를 말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표면적인 자아의 삶, 다른 하나는 늘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휴식을 주지 않는 진정한 자아.


-나는 생각의 편린들이 그때그때, 굳이 바로 서로 연관 지으려 애쓰지 않고서 적어둬요. 어느개 알게 모르게, 관계가 작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거예요.


작가의 고통은 '내부적'인 것이 자연히 '외부적'인 것으로 변화하면서 본래의 힘이 책장 전체로 퍼질 때까지, 우리 내면의 '어둠'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에 있어요. 내가 오직 미치광이들만이 완전하게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그거예요. 그들의 기억은 '구멍 뚫린' 기억이고, 모조리 외부를 향하고 있거든요.

-어릴 때, 나병에 감경될까봐 늘 두려웠어요. 어딘가에 나병에 대해 글을 썼고 그 이후로 나병이 더는 두렵지 않았죠. 이걸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될까요. 난 나를 평범하게 만들고 무참히 망가뜨리고 이어서 중요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짐을 내려놓기 위해 글을 써요. 텍스트가 내 자리를 차지해서, 내가 덜 존재하도록. 나는 오직 경우에만 자유로워질 있어요. 자살하거나, 글을 쓰거나.


-(문학의 임무는) 금지된 것을 똑똑히 드러내는 것, 보통 말하지 않는 것들을 말하는 것. 문학은 논란거리가 되어아만 해요.


-남성의 글쓰기는 권력, 권위와 가깝고, 그것들은 그 자체로 진정한 글쓰기와 거의 관련이 없죠. 여성은 오래전부터 침묵, 즉 자신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과 자연스럽고 내밀하게 연관돼 있었어요. 이것이 구조적으로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남성의 글쓰기에 결여된, 진정성으로 여성을 이끌었죠.


-내 모든 신작은 이전 작품을 대체하고, 확장하며 변경하죠.


-지식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먼저 파괴하고 해방시키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찢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난 다음엔 바로 그것들을 쌓아두고요.



#인물묘사

인간 존재는 그저 '단절된 충동'들의 한 묶음일 뿐이에요. 문학은 그 상태 그대로를 복원헤야 하죠

#영화


-영화가 작가를 작품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침묵과 부재로 이루어진 글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작가를 내면속으로 내동댕이친다고 할까요. 작가만큼 혼자인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간혹 이 끔찍하고, 한량없고, 불행한 작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화를 만들기도 하죠. 하지만 내게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늘 세상 무엇보다 강해요.


-의미의 과잉은 역설적으로 맥락을 빈약하게 만들어요.


-잔은 나와 많이 닮았어요. 우리 둘 다 평생 동안 강렬한 사랑에 타격을 입었죠. 꼭 이미 존재했던 사랑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으나 곧 다가오거나 끝나버릴 사랑에.



#열정과 알코올


-사랑은 언제든 진정으로 중요한, 유일한 거예요 그걸 남녀 간의 이야기로 국한하여 생각하는 건 어리석어요.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오직 사랑만이 죽음, 불행, 삶의 권태와 싸울 수 있죠.


-내가 관심 있는 건 섹스-대체로 일종의 탈색된 관능 속에서 이루어지는-가 아니라, 에로티시즘의 기원인 욕망이에요. 아마 그러지 말아야겠지만, 섹스로 진정시킬 수 밖에 없는 그것 말이에요. 욕망은 잠재적인 활동이고, 그래서 글쓰기와 흡사해요. 우리는 늘 글을 쓰듯 욕망하죠. 실제로 난 글을 쓰는 순간보다, 글을 쓰려고 자세를 잡는 순간에 더 글쓰기에 사로잡힌 기분을 느끼거든요. 욕망과 쾌락 사이의 차이점은, 글쓰기가 시작될 때의 카오스와 종이 위에서 가벼워지고 환해지는 카오스의 결과물 사이의 차이점과 똑같아요.

카오스는 욕망 속에 있죠. 쾌락은 우리가 이룬 것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에요. 나머지는, 우리가 욕망한 것의 대부분은 그대로 남아요. 영원히 잃어버린 채로.


-아마도요. 남성의 성은 보다 구체적인 행동모델, 즉 흥분이나 오르가슴 주위를 맴도니까요. 그러고는 다시 시작되고요. 어떤 것도 서스펜스나 암묵으로 남지 않아요. 당연히 정절을 중시하는 선조들의 원칙 아래 길러진 대로 조신한 모든 여성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는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죠.


- 아주 어렸을 때 해변의 방갈로 사이나 기차 안에서 모르는 남자들과 나눈 첫 몇 번의 경험으로 나는 단번에 욕망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됐어요. 그걸 중국인 연인과 함께 온 힘을 다해 체험했고, 그때부터 나의 성적 만남들은 늘 무수했고 폭력적이기까지 했죠.


-남자와 그만 살게 될 때마다, 난 스스로를 되찾았어요. 나의 가장 아름다운 책들은 나 혼자일 때 쓴 거예요. 아니면 스치는 연인들과 함께 있었거나, 그 책들을 고독의 책들이라고 부를게요.


- (남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들은 일종의 불투명한 삶을 살고 있어요. 자기를 둘러싼 주변 대부분의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자신 안에 갇혀 있는 거죠. 때로는 자기들이 저지른 짓 때문에 여자의 머릿속에서 소리 없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요. 아마 자신을 굉장히 진지하게 여기는 남근 중심주의자 부류가 여전히 존재할 거예요.


(남자들의 어떤 점을 나무라시겠어요?)


참견해야 하고, 말해야 하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들의 성미를 견디기 위해서는, 그들을 정말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죠.


-진짜 천둥 번개는, 우리는 압도할 수 있는 건, 남자와의 만남이에요.


-탈진되고, 불만스럽고, 공허한 감정, 더는 술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그 한가지 생각으로 인한 자기파괴.


-알코올은 고독이란 유령을 미화시켜요. 이곳에 없는 '타인'을 대신해주고 오래전, 어느날 우리 안 깊숙이 팬 구멍을 메워주요.



#여성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어요?)


-명랑하다고요. 난 웃는 걸 좋아해요. 더러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에 재밌다거나, 내가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며 웃기도 하죠. 물론 그러다가도 돌연 여덟살일 때 느꼈던 불안감에 사로잡혀요. 어릴 땐 자신에 대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이나 믿음 없이 출발하죠.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듯, 자신에 대해서도 믿는 법을 배우는 건 나중이 되어서고요.

살면서 종종 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기분을 느껴요. 늘 내가 있고 싶은 곳을 발견하지 못찬 해 그곳을 찾아 헤매고, 늘 지각하고, 늘 남들이 즐기는 걸 즐기지 못하는 기분, 그런데 이제는 이 복합성이 마음에 들어요. 우리는 늘 우리 본연의 모습인 단일성에 도달하기 위해 기를 쓰지만, 우리의 풍요로움은 바로 그 범람에 있는 거예요.


글을 쓸 때 필요한 건 요컨대 '살아있는 것들'을 느끼는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 서 있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