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건어물녀가 되지 마라

by 제니
자신을 통제하는 일 그것은 가장 위대한 예술이다.
– by 괴테



* 건어물녀

– 2007년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호타루의 빛>에서 처음 나타난 말. 연애를 포기한 20 ~ 30대의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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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2시경 침대에서 일어난 투루는 양치도 하지 않고 밥을 먹은 뒤 다시 침대에 누워요. 한참을 누워서 뒹굴거리다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봐요. 전날 마트에서 사다 놓은 캔맥주와 오징어 등의 안주를 꺼내 놓으니 영화관 못지 않아요. 저녁 7시, 11시, 새벽 1시까지 부동자세로 눈동자만 움직이다가 텔레비전을 꺼요. 아침에 일어난 흔적이 고대로 남아있는 이불로 들어가 잠을 청해요. 주말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에요. 그래요 투루는 건어물녀에요.


처음부터 건어물녀는 아니었어요. 입사초기 풀 메이크업 검은 정장 차림의 씩씩한 투루는 곱게 드라이한 머리를 찰랑거렸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아침마다 알람과 전쟁을 치르다보니 풀 메이크업은 어느새 노 메이크업으로 변했고 검은 정장은 급격한 체중증가로 인해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게 되었어요.


사회생활이 고단하면 할수록 주말에 집에 있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어요. 친했던 친구들과의 연락도 피하게 되고 곰이 100일 기도하러 들어간 것처럼 집에서 마늘을 씹어먹을 기세로 죽치고 있었어요.


외로움이 사무치던 그 어느 날, 맥주를 들이키고 정신이 혼미해진 투루는 옛 연인 J를 떠올렸어요. 지금은 다른 여자의 연인이 되었지만 오랜 시간 정들었던 옛 추억이 생각난 게 화근이었어요. 기억을 짜내고 짜내 휴대폰 번호를 생각해냈어요. 그리고 문자를 보냈어요.


“안녕, 나야 투루. 잘 지내?”

‘문자메시지가 발송되었습니다’

5분, 10분, 15분……

그 시키는 반응하지 않아요. 이런, 우라질레이션. 삽질한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아져요. 취기에 부린 객기를 자책하며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순간 휴대폰 진동이 짧게 울려요. 문자인가 봐요. 몇 초간의 정지상태로 심호흡을 크게 한 투루는 잔뜩 부푼 마음으로 메시지를 확인해봐요.

“미안한데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줘, 부탁할게.”

삽질했어요. 순간의 로맨스를 기대했던 투루는 바닥에 놓여있던 오징어를 씹으며 잠자리에 들어요.


투루는 다시 건어물녀 생활을 반복하기 시작해요. 그러기를 몇 개월째… 연애세포가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할 무렵, 친구의 회사동료로부터 소개팅이 들어왔어요.


“나이는 서른 다섯이고 몸이 좀 통통하지만 피부과 의사래.”

“아, 그래? 소개팅은 너무 오랜만이긴 한데 알겠어.”

연애 따윈 하고 싶지 않았지만, 척박한 직장생활 때려치우고 ‘사모님’ 소리나 한 번 들어볼까 하는 마음에 흔쾌히 허락을 했어요.


약속장소로 나갔어요. 겨울이라 날씨는 또 왜 그리 추운지 멋 낸다고 오랜만에 스커트를 입고 나온 투루는 다리가 얼어버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 약속시간인 7시가 지났는데도 소개팅남은 보이지가 않아요. 슬슬 인상이 굳어지고 욕설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와요. 쿵,쿵,쿵 땅에서는 할리우드 무비 ‘킹콩’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진동이 느껴져요. 오! 마이 갓! 오늘의 소개팅남인가 봐요.


170cm도 안 돼 보이는 단신에 100kg은 더 나가 보이는 거구. 거기다 배는 임신 8개월 못지않게 불룩해있는 내 앞에 있는 이 사람. 대장의 융털이 식도를 타고 오는 기분이에요. 이건 분명 꿈일 거예요.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주선자를 생각하며 입술을 꼭 깨물어봐요.


“안녕하세요? 투루라고 해요. 차가 밀렸나 봐요?”


“이 동네가 늘 그렇죠.”


“네네, 오늘 병원은 문 안 여는 날인가 봐요?”


“네.”

은근슬쩍 ‘너 늦어서 나 뿔났다’는 투루의 메시지에 소개팅남 아저씨가 짤막하게 대답을 해요. 그리곤 스테이크를 주문한 뒤 어색한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해요.


“저희 부모님은 미국에 계시고 형은 변호사에요.”

“아, 네네 좋으시겠어요.”


“어릴 적에 외국에서 자라서 그런지 한국 문화 이해 안가는 게 너무 많아요.”

“아, 예예.”


“투루 씨는 웹진 만드신다고 하셨죠? 우리 병원에도 웹진 필요한데 돈 줄 테니 한 번 만들어볼래요?”

“하하, 지금도 일이 많아서 사양하겠습니다.”


돼지 비계같이 생긴 아저씨가 허세를 부리며 투루의 자존심을 건드려요. 참았던 분노가 목까지 차올라 한 번 더 찌르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어요.


“저, 오늘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볼게요.”

“그래요? 나도 바쁜 일 있었는데 잘 됐네요.”


앞에 있는 저팔계 같은 사람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투루는 자리에서 일어나요. 가방을 챙기고 당당하게 일어나 걸어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투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요.


“저기요, 그쪽이 먹은 스테이크는 그쪽이 계산하세요.”

슈퍼울트라 저팔계가 마지막 공격을 해와요. 투루는 민망함에 동공이 풀리고 정신이 안드로메다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해요. 쪽팔림과 어이없음에 스테이크 값을 내고 나오는데 ‘뜨르르르르’ 휴대폰 문자 진동이 울려요.


“사진이랑 많이 다르시네요. 전 뚱뚱한 여자는 질색입니다. 그리고 그쪽 제 스타일 아니니까 앞으로 연락하지 마세요.”


이건 또 무스 시츄에이션인가요? 저팔계 아저씨한테도 차인 거예요. 전 남친에 이어 2연패, KO를 당했어요.

그 길로 투루는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클럽 3개월 권을 끊고 마트에서 닭 가슴살을 샀어요.

건어물녀, 이젠 안녕이에요.


[TRUE Message]

1. 건어물녀가 되는 건 쉽지만 빠져 나오기는 어렵다는 사실!

2. 주말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학원등록, 동호회 활동, Never ending 소개팅도 추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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