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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May 21. 2023

[북리뷰]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by 로버트 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

-[그림자]는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수용하는 일은 심오한 단계의 영적 수행이다. 이 수행은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이므로, 그 자체만으로 성스럽다. 이것은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체험이라 말할 수 있다.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전혀 새로운 통찰>이 떠오를 것이다.


-한 가치와 그것에 반하는 다른 가치가 신경증적 싸움을 하는 대신, 두 가치를 다 허용해서 <역설>이라는 숭고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기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지는 것도 괜찮다. 가진 것도 좋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좋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괜찮다.

우리 삶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이 역설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일련의 온전하고 새로운 가능성들이 펼쳐진다.


-<대극적인 것을 서로 반대라고 말하지 말자.> 이 대극적인 것들이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신이라는 실체와 만날 수 있도록 보완해준다.


두 상반된 목록에서 한쪽은 세속적이고 다른 쪽은 종교적이라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두 신의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란 생각을 하도록 우리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


-<통합된 단일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가장 신비롭고 고귀한 신학적 체험으로서, 이는 역설을 받아들임으로 얻을 수 있다. 


-[사랑의 힘과 딜레마가장 화해하기 어려운 대극적인 한 쌍이 바로 <사랑과 힘>일 것이다. 사랑없는 힘은 잔인함을 드러낸다. 힘 없는 사랑은 취약하고 무미건조하다. 연인이나 부부의 싸움은 대개 힘과 사랑이라는 대극적인 요소의 충돌과 관련되어 있다.


-[그림자 감싸안기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다음 단계의 성장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다.

 [나-실패 하는 거/혼자되는 거/가난해 지는 거]


-역설은 모든 면에서 <그림자와 연관>되어 있다. 


단테가 <지옥>을 거친 다음에야 <낙원>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역설에 동의한다는 것은 곧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해결책이라곤 전혀 없어보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정확하게 일어난다. 

이 순간은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큰 곳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순간이다.


-죄책감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다. 또 죄책감은 역설의 값싼 대용품이다. 우리는 죄책감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보다, 우리 안에서 충돌하고 있는 서로 다른 진실을 들여다보는 용기 있는 행위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편이 훨씬 낫다. <죄책감>은 <교만>에서 온다. 어떤 이슈 중 한쪽을 택해서 그쪽이 항상 옳다는 <확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편향성은 문화화되는 과정이지만, 종교적 삶에서는 심각한 장애가 된다.

 <직면>할 힘을 잃으면 <통합>의 기회를 놓치며 만돌라의 치유력도 상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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