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출근한 것 보다 더 바쁘다냐
백수.
정겨운, 그러나 두려운 단어.
여차여차하건, 우여곡절끝에 나는 반(?)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올 해가 나의 커리어 10년,(첫 시작이 2008년 이었으니)
나름 안식년이라는 명분으로 내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를 잘 아는 분들은, 그 쉼 충분히 누리라며...언제 다시 일 할 줄 모르니라고도.
내일, 5세 남자사람아이의 입학식.
작년 11~12월 반차를 수시로 내고 추첨을 다녔지만, 애석하게도 뽑기의 운명은 나를 따라주지 못했다.
나는 매번 꽝, 또는 반일반으로만 뽑게 되었고 대기를 기다렸지만 2시50분 하원의 도보 3분 거리의 유치원으로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사실 1시50분에 끝나는데, 월~금 특강 1시간을 다 넣어서(비용별도) 채운 시간이다.
9시 등원, 2시50분 하원. 등원은 뭐 내가 할 수 있겠다만....하원이 문제였다.
커리어우먼의 필수 하원도우미 이모님을 구할까 생각하다가, 아들과 애착형성이 덜 된 걸 깨달아, 잠시 내 시간을 아들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늘 팍팍했던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내어주기로.
여자에게 '일'은 정말 중요하다.
허나, 나는 그 중요한 '일'을 100세까지 해나가기 위해 나만의 쉼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서른 여섯 해, 내가 우선순위에서 좀 미뤄둔 <일상>과 <살림>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하고 느껴보고자.
오늘 그 1일차, 우리 아이와 12시간을 함께 했다.
수많은 전쟁 속 고성이 오가겠지만, 지지고 볶으며 아들을 관찰하고, 나를 내려놓고, 가정을 단단히 만들어 보고싶다. 뭐 망가진 커리어는....천천히 다시 생각하기로.
오늘 아들을 재우며 엄마가 집에 있으니 어떠냐고 물으니 '좋단다'
짜슥, 넌 좋았냐. 난 오늘도 내 바닥을 봤는데.ㅎㅎㅎ
오늘, 백수 1일차 가장 소중하게 느낀 일상은 다름아닌 '창문 너머 바라본 풍경'이었다.
지난주 까지 아침에 일어나면 부리나게 대충 씻고 정리못한 가방을 들고 나와 사당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자리가 없는 날이면 아침부터 지친 모습으로 출근을 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12시가 되면 밥을 먹으로 갔었다.
그런데 오늘,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몸을 좌우로 굴리며 산뜻하게 일어나 가장 먼저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청소기를 돌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서둘러 아침을 준비해 늦은 아침을 아들과 함께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단톡방 '나가기'를 누르는데 왜 이렇게 자유로운지.ㅎㅎ)
오늘 1일차 일상은, 구름 가득한 그 풍경 하나로 족하다. (미세먼지 보통의 날씨라 고맙다.)
내일은 아들의 입학식. 이번주는 적응기간이라 2시간 만 유치원에 갔다 온다.
너의 또 다른 사회생활을 응원한다.
잠시 사회생활 방학인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