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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Han Jul 08. 2021

1950 미중전쟁 ; 재 리뷰

KBS 다큐인사이트

책 서두에 

[[ 알라딘: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1950 미중전쟁                  

            비주얼북으로 만나는 화제의 다큐멘터리 〈1950 미중전쟁〉. 오늘날 세계 패권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그 전초전은 바로 1950년에 시작된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관점으로 각국의 이해관계와 속셈, 판단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2020년 7월,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아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1950 미중전쟁〉은 거대한 국제적 힘의 충돌이라는 새로운 접근과 최첨단 3D 기술을 활용한 실감 나는 전투 장면 등으로 호평받았다. 
https://youtu.be/OvIMamwYRX0
책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각국 핵심 의사결정자들의 오산과 오판이다. 전쟁 개시부터 참전, 전투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 상대의 수를 읽고 판단하는 데에 수많은 오류가 있었다. 그 대가는 수많은 군인의 목숨과 한반도 주민들의 고통이었다.


한국전쟁을 미중전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그 원인과 전개를 오산과 오판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또 다른 미중전쟁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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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다고 믿는 혹은 역사와 교육을 통해 얻은 1950. 6.25 전쟁에 대해 아는 것은 어디 까지 일까, 작년에 KBS 다큐멘터리로 제작이 되엇고 이번에 책자로 소개된 바데로 , 미.중.소 전쟁의 대리전 성격이엇고 , 그결과는 70여년을 이어져온 휴전 상태의 한반도 이다. 


이제는 경제 전쟁인 미중 전쟁이 첨에화 되고 잇고 , 그 전략에 일대일로의 중국과 , 환태평양 경제 협력 기구의 미국이 있다. 하나는 지리적으로 가깍운 혹은 연결 가능한 통로를 확보에 활로와 확장의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고 하나는 물리적으로 떨러져 있어서 ( 바다 , 오대양 육대주등) , 경제 협력기구화 한 하나의 트러스트 처럼 압박과 봉쇄,  제제 해재의 순환을 거치면서 대결 구도에 이른다. 





다시 거꾸로 1940년대로 돌아 가자면 세계는 한창 2차 대전 의 상흔이 아물어 가고 있던 즈음에  태양쟝 전쟁이 시작 되엇고 이는 남 중국해및 태평양 연안 국가들의 존망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 구 소련과 동독 지역과  유럽의 나머지 서방 세계와의 냉전이 가속화 되어 가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전쟁을 수행 할 수 있는 나라가 생각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중  재래식 방법  하나와 한방이면 마무리 되는 원자탄 이다. 아래는 핵 개발 및 실험 완료 한 나라들의 순서 이다. 


그 나라는 어떻게 핵을 갖게 됐을까 - 시사IN  (출처)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에는 원자폭탄을 소유한 세계 여러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 사연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미국(1945)은 나치 독일과 일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구소련(1949)은 미국과 무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중국(1964)은 미국과 소련에 대비하기 위해, 인도(1974)는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아랍 국가에 둘러싸인 이스라엘 (1979-실제 1979년에 핵무기를 만들었는지, 이스라엘과 미국만 알고 있다)은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 파키스탄(1998)은 인도와의 국경분쟁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2006)은 체제 유지를 위해 원자탄을 만들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핵보유국이 된 영국(1952)과 프랑스(1960)가 당면한 체제 위협이나 분쟁이 없었는데도 강대국이라는 위신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 경우라면, 나머지는 하나같이 적대국과의 극한 대치나 국가 보위라는 궁박한 이유로 핵무장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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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1949

1964 


윗 세가지 년도는 우리나라 한반도에 영향을 준 세 나라 미국 , 소련, 중국의 핵 완성 순서도 이다. 

한반도 전쟁은 1950. 6월에 개전이 되엇고, 그 이전에 1945년에 일본이 패망 하였다.  몇 년사이 북한의 김일성은 숱하게 스탈린을 만나러 모스크바 행을 자처 하였고 , 결국 묵시적 중국의 동의 하에 개전을 하게 된다. 

중국또한 , 나라 안팍으로 국공 내전과 장제스와의 대치전으로 소모전을 이끌던 터라 공산당 창당이후 마오쩌둥은 약간 불안한 상태에서라도 한반도에서 김일성이 통일을 이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미국과의 거리는 늘어날 것이라고 계산 하였고 , 이는 소련의 스탈린또한 유럽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미국입장이 있고 또한 태평양 애치슨 라인에서 최 우선 보호국이 되어야 하는 나라는 일본 이었고 , 타이완과 한국은 이 선상에 존재 하지 않았다. 


과감하게 밀어 부친 , 북한의 3일 만의 서울 점령이나 ,이후 수도 서울 수복을 위한 맥아더의 인천 상률 작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후 , 북진을 거듭 하여 압록강 까지 이르렸을때야 , 연합군은 험준한 산악에 갖혀 , 중국군의 포위망 속에서 고전 하다 엄동 설한을 맞이한 이후 1.4 후퇴를 함흥을 거쳐 흥남에서 마지막 퇴로로 하게된다.  


아래는 당시 다급했던 북한 김일성이 중국 마오에게 보낸 전쟁 지원 협조 서한 이다. 



1951년도 부터 정정 협상을 하기 위해 다자간 협상을 하였지만 왠지 스탈린만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정작 다급한 쪽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지속되는 소모전으로 국내 국제적으로 애기가 많아 지는 미국이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지리한 소모전이 계속 될 수록 유럽에서의 소련의 입지가 강화 될 것이라고 생각 했고 그의 뜻 대로 , 회담의 연속 이었지막 결국 스탈인 사망후 호루 시초푸로 정권이 바뀌면서 마루리 되었다. 


이제 70여년이 흐른 지금조차도 정전은 되지 않은채 휴전이다. 얼마나의 나라간 이해 타산과 논리가 맞아 떨어져야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  어쩌면 아직도 진행 중인 강대강 의 충돌과 위협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들의 생활과 국가 , 그리고 안위를 점차 좁혀 들어 오고 있는 건 아닐지 늘 촉을 켜두고 , 방비를 해야햘 때 이다.  


마지막으로 , 세계 3대 동계 전투에 ,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 그리고 한국전 당시 장진호 전투가 있었는데 , 아직 그위치가 가늠 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측면 고도를 표시한 사진 한장을 게시 한다.


https://youtu.be/7oaNwK7Wuqw


 해발 1000미터 정도이고 겨울이면 영하 40도 까지 떨어 지는 거의 몽골 수준의 기후에서 1951년 겨울을 나며 전투를 벌인 수많은 군인들의 전사자들 그들은 전투로 약 30% 사망 하였고 그 지역의 혹독한 추위로 얼어 죽은 경우가 그보다 더 많앗을 거라는 기록관의 이야기가 들린다. 지금 현대화된 시절에도 영하 20도면 맹추위 이다. 인간이 극복 하기 어려운 자연환경 에서 이역 만리 다른 나라에서 자유수호를 위해 이땅에 찾아 와준 그 당시 이름모를 영령들에게 한편 마음의 재를 올립니다...  Written by E HAN  


Note ; 당시 조선 일보 , 원자탄 사용을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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