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 Han Jul 15. 2021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

이상균

  책 서두에                                              

[ 독도가 한국 땅이냐, 일본 땅이냐의 문제를 한일 양국 간의 갈등 양상으로 국한시켜 볼 것이 아니라, 세계 교류사, 항해사, 지도 제작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편적인 테마로서 다뤄질 필요가 있으며, 이 섬의 영유권에 관한 의문은 Map Trade의 역사를 통해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책은 독도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지리학(지도학), 역사학(사상사, 교류사, 해양사), 정치학을 전공하신 분들한테도 영감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나라의 영토 분쟁은 비단 우리나라와 일본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중동의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 분쟁 지역 , 

남중국해의 중국과 베트남 , 그리고 일본과 중국과의 열도 분쟁 또한 그러하다. 


이책에서는 좀더 다른 시각으로 어떤 방식으로 예전 15-16세기 거슬러 올라가서 항해 지도가 제작 되었고 , 나라간 , 지도 교환이 이뤄지면서 좀더 많은 교역과 물자가 동 서향 교역로를 통하여 이동 했는지, 그리고 왜 이러한 항해가 인류에게 필요 했는지에 대한 근원 적인 물음과 일부 답을 구할 수가 있다. 


그중 첫번쩨 근거로 삼는것 하나는 16-19세기 사이에 전지구적으로 발생된 소 빙하기 이다. 


[ [ 16~19세기 소빙기가 발생한 이유 – Sciencetimes      

소빙기(little ice age)란 지구의 평균 온도가 정상보다 매우 낮았던 시기를 말한다.

특히 16세기 말부터 1560년, 1750년, 1850년께에는 기온이 급격히 저하했다는 기록이 세계 각지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시기 유럽과 북미지역의 겨울 평균 기온이 20세기 후반과 비교해 약 2℃ 낮았으며, 이로 인해 알래스카·아이슬란드·스칸디나비아반도·알프스 등에서 빙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 

-----------------------------------------------------------------------------------------------------------------------


소 빙기 시대엔 평균 지구 기온이 약 2도 정도 떨어진 상태라 당연히 그해 농작물과 곡물 수확량이 줄어 들수 밖에 없었고 이는 식량을 확보 하려는 국각와  인접  국가 와의 반목을 일으키는 유인이 되기도 하였다.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15세기 전후 부터 , 이후 수세기간  유럽의 열강들은 앞 다투어 , 아시아및 미지의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도 관심이 많았았고, 향신료를 비롯한 면화 , 기타 재료들의 아시아에서부터 이전 교역 통로로 , 바닷길을 생각해낸 것은 무리도 아니다. 대량의 수송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는 당시의 기술로는 혹은 증기기관이 발명 되기 전까지도 이는 매우 유용한 수단 중 하나이었다. 


영국의 경우, 이동의 동인도 제도와 중국의 교역에서 아편을 수단으로 하면서 두 나라사이의 분쟁의 골은 깊어 졌고, 급기야 , 1840년 6월 영국의 선전 포고로 전쟁이 시작 되었고 , 1842년 4월  영국과 청국간의 '난징 조약'이 체결된다. 이때 최초의 근대적인 조약이기도 하지만 불평등 조약이어서 이후 미국 , 프랑스, 독일등 서구 열강등이 차례로 중국에 입성 하게 된다. 

 

당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842.4 월 난징 조약 

1.홍콩을 영국에 넘길것 

2. 광동,하문,복주,영파, 상해등 5개 항구를 개항할것 

3. 개항장에 영사를 주재 시킬것 

4. 청국은 전쟁 배상금 1200만 달러, 아편 배상금 600만 달러를 3년안에 영국에 지불 할것 등이다. 


아시아에서의 두번째 개항은 일본이다. 

1853.6월 미국 페리제독에 의해 , 일본 막부는 무너져 내렸고 , 미일 화친 조약을 체결 하였다..이후 

1858년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을 시작으로 일본은 본젹적으로 외부 세계에 문호를 개방 하게 되었다. 


한국은 어떠한가 . 이후  일본과 조선과의 군사적 물리 충돌후 , 

1876.2월  조일 수호조규 라고 하는 강화도 조약이 이뤄졌고 이후는 우리의 근현대사 이다. 


1894- 1895 년 청일 전쟁 , 일본 승리 이후 북진을 원했던 일본에 의한 러일 전쟁이 발발 하는데 

러시아 의 남하를 막아 보려는 미국측 의도로  


1905.7월 미 대통령 특사인 월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 사이의 은밀한 밀약이 바로 

일본은 미국이 필리핀 점령을 용인해 주고 ,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점령 하는 것을 용인 해 준다는 내용 이다. 


20세기로 넘어가면서 , 유럽에서 시작된 1,2차 세계 대전과 1940년대의 태양양 전쟁으로 전세계는 다시 한번 지도 상의 도해와 항해를 실전과 전쟁으로 점철 되며 이어져 온것이다. 




다시 책 주제글로 돌아가면 , 한반도의 동해상의 2개 섬 , 울릉도와 독도의 발견은 서구에 의해서 먼저 인지 되었고, 처음에는 아르고노트호 하고 하는 1791년 도의 영국의 모피 무역선이 한반도 동해상으로 이동 하면서 발견 하였다라는 섬이기도 하다. 이전 프랑스의 라페루즈 의 울릉도 발견과 1717년도 중국에서 제작된 황여 전람도가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프랑스 왕실 지도학자인 왕빌의 손에 들어가 다시 한번 전세게 지도제작으로 거듭 나게 된다. 


1840년대 이후 아편 전쟁으로 극동 아시아로의 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동북아 바다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높아졌고 , 1797년 부산의 초량에 식수보급으로 입항 하게 된 영국의 보로튼 선장이후의 지도에선 영국의 콜렛 선장이 발견한 아르고노트 섬과 프랑스의 라페루즈 가 별견한 다즐레 , 그리고 일본의 오키섬 등이 명확 하게 자리 한다.. 


일본의 서양 문물을 수용 하기 시작한것은 1464년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  임진왜란때의 조총은 포루 투갈 상인들의 수단 이었다 ,당시 일본 지도의 시초였던  1779년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 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외국 ( 조선령)으로 표현 되어 왔다. 이후 1785년도 [삼국접양지도] 가 제작 되었고 , 이 지도는 독일인 동양 학자인 클라프로트에의해 프랑스 파리에서 불어판으로 발간 되었고 버전에 따라 대마도가 조선의 영토로 나와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이후 동서량의 교역과 지도제작의 기술교류에 따라 19세기 후반의 서구 세게 지도에서 보면 울릉도와 독도는 대부분 한국의 영토로 표현되었다. 


1857년도 러시아와 일본과의 Map trade 에서도 독도의 명칭이 쓰여 지며, 17세기 -19세기 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지도에서 조차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1910년 한일 합방 이후로 무력으로 한반도를 점령하면서 부터 일본의 야심에 따라 독도는 현대판 자기네 거라는 억지 주장을 거의 100여년 동안 이어져 온 샘이다.  동해상에 당시 일본 지도에 남아 있엇던 " 아르고 노트섬" 의 허상은 두고 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어 왔다. 


현제에도 이어져 오고 있는 이러한 영토 분쟁의 근원에는 애초부터 그들의 것이라는 잘못된 주장도 있었고 힘의 논리도 있다.  현대판 제국주의는 현재 진행형 인것이다.     Written by E HAN 




 





















 









매거진의 이전글 1950 미중전쟁 ; 재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