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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Han Sep 01. 2021

탈레반;  어쩌다 공포의 대상이 되었나

1662 시사저널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912

9월11일 완전 철수를 예정하고 있던 미군의 철군이 완수되기도 전에 아프가니스탄은 완전히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빨리 아프간 정부가 붕괴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지난 8월15일 탈레반은 수도 카불에 있는 대통령궁을 ‘접수’하고, 아프간 전쟁의 종전을 선언했다. 미국에서는 무책임한 철수를 감행한 바이든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실수로 시작된 전쟁을 지속하지 않겠다”며 미군 철수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카불 공항은 비행기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아프간을 탈출하려다 떨어져 죽는 끔찍한 사고까지 발생하는 등 아프간인들의 엑소더스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정도다.



소련도, 미국도 두 손 들고 물러난 아프간


탈레반의 등장을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탈레반의 형성과 성장 배후에 미국이 자리한다. 더불어 약소국 아프가니스탄과 강대국의 대결 역사가 등장한다. 고대부터 교통과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았던 아프간은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알렉산더 대왕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족과 문명이 아프간 땅에서 문명의 꽃을 피웠다. 동시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아프간은 결국 19세기 제국주의 팽창과 더불어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에 휩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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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8/31일 발표한 미국방성의 철군은 사실상 8/30일 자정에 종료 되었다 그간 20여년간 아프칸에서는 어떤일들이 벌어 졌던 것이고 , 나라간 국익 관계는 어떤 것이 었을까 ,,, 한번 아프카니스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프가니스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아프가니스탄(다리어·파슈토어: افغانستان)은 아시아에 있는 내륙국이다. 북쪽은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북동쪽은 중화인민공화국, 동쪽과 남쪽은 파키스탄, 서쪽은 이란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카불이다. 다민족 국가로서 주류 민족인 파슈툰족을 비롯해 타지크족하자라족우즈베크인아이마크인 등이 거주한다. 역사적으로 중동과 아시아의 여러 지역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었으며, 여러 세기를 거쳐 다양한 민족들의 고향이 되었다. 


전략적인 위치로 인해 수많은 군사 활동이 이루어진 곳이 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정복 세력으로는 알렉산더 대왕이슬람 제국몽골 제국대영제국소련, 그리고 현대의 서방 세력에 이른다. 또한 쿠샨 제국에프탈 제국사만 토후국사파르 토후국가즈나 제국고르 술탄국할지 술탄국무굴 제국호타크 제국두라니 제국, 기타 등등의 제국들을 일으킨 민족들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였다.[1] 1747년, 아흐마드 샤 두라니는 두라니 제국을 세웠는데, 이 때가 근대 아프가니스탄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2] 나중에 두라니 제국의 도읍은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옮겨졌으며, 제국 영토 대부분은 이웃 강국들에게 빼앗겼다. 19세기 말, 영국령 인도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을 벌이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은 두 제국의 완충국으로 전락하였다.[3] 제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 이후 1919년 8월 19일에 이 나라는 대영제국에게서 독립을 쟁취하였다. 자히르 샤의 40년 통치 동안 아프가니스탄은 평화를 유지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상태에 빠진 상황이였으며, 1979년에 소비에트 연방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1년 미국 주도로 탈레반을 축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외국의 점령을 겪게 되었다.  2001년 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대서양 조약기구 군대로 구성된 국제 안보 지원군(ISAF) 창설을 승인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후발 개발도상국의 하나로, 농업과 목축업의 의존도가 높다. 현재 해외 원조로 재건되고 있으나 심각한 내부 분쟁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1000억 달러 규모의 전국적인 재건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4] 미군 철수 직후 이어진 탈레반의 공격(2021년 탈레반 공세)으로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탈레반에 항복하고 대통령 등이 외국으로 도주함에 따라(카불 함락),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은 탈레반에게 권력이 넘어가게 되었다.


근대적인 아프가니스탄 국가는 아흐마드 샤 두라니가 1747년에 세웠으나,[2] 이 땅은 유구한 역사를 지녔으며 다양한 문명들이 들어선 바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루이스 뒤프레, 스미소니언 학회 등에서 발굴한 원시 시대 유적을 보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땅에 사람이 산 것은 적어도 50,000년 전의 일이며, 이 지역의 농경 집단은 세계적으로 초기에 속함을 알 수 있다.[9][10] 


아프가니스탄은 수많은 인도-유럽 문명들이 상호작용하고 투쟁하던 독특한 연결점이며,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땅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은 온갖 민족의 터전이었는데, 그 가운데는 박트리아아리아아라코시아 등 인도이란인들도 있었다. 또 이 땅을 정복한 집단으로는 메디아 제국페르시아 제국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 셀레우코스 제국인도-그리스 왕국튀르크인몽골인 등이 있었다. 현대에는 영국과 소비에트가,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과 동맹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원주민 집단은 주변의 이란 고원중앙 아시아인도 아대륙을 침략하여 자신들의 제국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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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로 길어 졌다면 , 이 중동과 아시아 사이 자리잡은 나라 아프카니스탄은 ,  수많은 이민족의 발흥과 쇄퇴를거듭한 장소이기도 하다라는 것이고 , 근대와 현대 들어 오면서 소련과 서방 그리고 중국과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의 국제적인 정치적인 이해 관계에 따라서도 많은 변수가 움직엿다.  아래는 탈레반의 탄생 과정이다. 

  

탈레반(다리어: طالبان‎ 탈레반) 또는 탈리반(파슈토어: طالبان 탈리반)은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파슈툰족에 바탕을 둔 부족단체에서 출발한 반군 테러조직이다. 마드라사의 학생을 가리키는 탈레브(다리어: طالب 탈레브) 또는 탈리브(파슈토어: طالب 탈리브)에 파슈토어 복수형 어미 ان 안을 붙여 만들었다. 탈레반은 19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속해 1997년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축출되기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다. '얼굴없는 지도자', '애꾸눈 지도자'로 알려진 무하마드 오마르는 추종자들 사이에 '물라'(mulla;mullah)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탈리브'에 상대되는 말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잡았을 당시 남녀차별 정책으로 인해 세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은 1979년 옛 소련군의 침공을 계기로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갔으며 이슬람 조직들을 중심으로 미국 등의 지원을 받은 저항세력들이 10년 이상 반 소련 항쟁을 벌였다. 1989년 소련은 아프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아프간에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전불안이 계속됐고 정부의 공백을 틈타 군벌들이 내전을 벌였다.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등 냉혹한 군벌들은 카불 시내를 폭격해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같은 혼란 속에서 등장한 탈레반은 엄격한 이슬람 규율로 무장하고 전국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갔다. 카불의 무력한 기득권층과 북부 양귀비 재배 지역에서 아편 매매 수입으로 횡포를 부리던 이른바 마약 군벌들과 경합하다가 1997년에는 정권을 장악했다. 군벌 경쟁자들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군벌들 중 일부는 북부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아프간 공격 때 미군 쪽에 협력했다.), 정국은 다소 안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라덴을 탈레반이 예전부터 숨겨주고 있었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탈레반은 미국 힘 앞에 저항하지 못하고 6일만에 주요 도시가 함락되었다. 그러나 

2011년까지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을 찾지 못했으며, 이는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만 죽인다며 비판을 받아왔다. 2011년 5월 1일버락 오바마가 서명한 작전에 의하여,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으며,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점령하면서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했다


아이러니 한것은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도, 그리고 탈레반도 미국이 구소련을 방어하기 위해 키워낸 무장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다른 조직이지만 자금 조달 등 상당한 커넥션을 가지고 있다. 오사마 빈라덴은 마침내 아프간 침공 10년이 지난 2011년에야 사살됐지만 탈레반이 파키스탄 국경 밖으로 쫓겨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미국은 개전(開戰) 한 달 만에 수도인 카불과 주요 도시 칸다하르를 점령했다. 그러나 탈레반과의 전쟁은 20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결국 탈레반의 손에 아프간을 넘겨준 채 철수하고 말았다.


반면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지원으로 연명해 오다가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아프간이 미국의 관심권에서 멀어지자 세를 불려 파키스탄 서북부를 장악하며 부활했다. 파키스탄 북부는 아프간의 주요 부족인 파슈툰 부족이 대부분이며 산악 지역이라 사실상 국경이 별로 의미가 없는 지역이다. 무기 제조 등에 필요한 모든 인력과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니, 탈레반의 요충지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프간은 전 세계 헤로인의 90%가 생산되는 마약 생산기지인데, 탈레반은 마약 제조로 자금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와 전쟁 비용을 지불하고도 아무 성과나 수확도 없이 철군한 셈이다.


이에 비해 아프간을 탈환하려는 탈레반의 의지는 매우 강했다. 무엇보다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사명감과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에 대한 의지는 그동안 전쟁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전략과 전술을 통해 더욱 진화했다. 그 결과 미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수도 카불까지 점령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아프간 정부 내부의 리더십 붕괴도 한몫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전선을 축소해 대도시 위주로 방어하려 했으나, 이는 군기 빠진 군대에서 효력이 없는 방어 전략이었다. 탈레반이 여러 개의 조직으로 구성돼 있음에도 중앙통제력을 확보해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은 놀라운 대목이다. 대외적으로는 아프간을 외부적으로 고립시켜 우방 국가의 지원을 차단하는 전략을 썼고, 내부적으로는 각 지방의 주지사와 같은 공직자들과 개별 협상을 통해 비리 혐의 등으로 협박하며 무력화시킴으로써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카불을 포위했다.


다시 국제 정세로 돌아가면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에 맞춰 중국의 행보가 매우 빠르다. 아래 기사를 보자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62420


아래는 보다 자세한 분석 기사 입니다. from JTBC 


 [중국은, 왜] 탈레반 눈치 보는 중국, 밑빠진 독 물붓는 신세 | JTBC 뉴스             


2010년 아프가니스탄 무장 정파 탈레반의 공동 설립자로서 파키스탄에 체포돼 지하 감옥에서 잊혀진 인물.  
ㆍ탈레반 지도자였던 오마르가 생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기억 속에 소환.  
ㆍ2018년 수감 8년 만에 석방.
ㆍ2020년 2월 미군ㆍ탈레반 도하 평화협정 막후 영향력 행사.    

     

누구일까요. 우리에겐 낯설지만, 아프간 이슬람 군벌 가운데 핵심 요인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입니다. 2018년 석방된 뒤 신병 치료 등 이유로 잠수를 탔던 그가 외교 현장에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메마른 아프간의 산악지대가 아니었습니다. 중국 베이징의 외항인 톈진에 나타났습니다.    
28일 중국 외교부 발표입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톈진(天津)에서 탈레반 2인자 물라(*이슬람 존칭)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끄는 탈레반 대표단을 만났습니다. 아프간의 평화와 재건 방향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관심사는 일목요연합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잘 관리해서 테러 세력이 중국으로 못 넘어오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왕 부장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을 거명하며 “중국의 국가안보와 영토보존에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말했습니다. ETIM은 위구르족으로 구성된 분리독립 세력입니다. 아프간을 거점으로 중동 일대에서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어 왕 부장은 “탈레반이 ETIM 등 모든 테러단체와 철저히 선을 긋고 지역의 안전과 발전 협력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 탈레반 실권자 "아프간 영토 이용해 중국에 해 끼치지 않겠다"   
바라다르는 “중국이 아프간 재건에 더 많이 참여해 경제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며 “적당한 투자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탈레반 하고 싶은 말만 한 것이니 중국이 원하는 말도 해줘야 합니다. 다시 바라다르의 립서비스를 보겠습니다.    

바라다르는 “평화 쟁취를 위해 각 측을 광범위하게 포용하고 아프간 국민이 수용하는 정치구조를 구축할 것”이라며 “탈레반은 어떤 세력도 아프간의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프간의 영토를 이용해…'라고 밑자락을 깔고 있습니다. 아프간을 기반으로 외부 이슬람 세력이 테러를 수출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 자료입니다. 오른쪽 FATA로 명명된 지역은 파키스탄 영토 안에 있습니다. 험준한 산악 지대입니다. 산이 깔고 앉아 있는 면적이 크다 보니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국경이 이 산악 지대를 지나갑니다.    

     FATA 일대는 미군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 탈레반 세력이 전력을 보존한 피난처였습니다. FATA 지역은 19세기 영국이 아프간에서 철군하면서 당시 영국령 인도(*나중에 파키스탄으로 나눠짐)와 아프간의 경계선이 됐습니다. 문제는 아프간 접경과 FATA 지역에 거주하던 파슈툰족이 탈레반의 모태라는 점입니다. 탈레반의 거점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내 FATA 양쪽에 있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도 강하게 통제할 수 없는 FATA는 탈레반의 '해방구'적 성격이 있습니다. 

미국 평화연구소(usip)는 '2001년 9ㆍ11사태 이후 이 FATA 지역이 탈레반,알카에다, 아랍ㆍ체첸ㆍ우즈벡ㆍ위구르 전사들과 연계된 그룹의 피난처가 됐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제 테러리즘의 배양소이자 수출기지였던 겁니다.    

이슬람 수니파인 탈레반이 '형제의 의리'를 거스르면서 중국에 밀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구조적으로 그렇습니다.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서 일어나는 테러는 막겠다”는 바라다르의 언급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FATA를 기반으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는 복선이 깔려 있는 거죠.     


엊그제 BBC 그래픽 뉴스에 아프간 정부군과 탈레반이 장악한 지역이 공개됐습니다. 중국과 맞붙어 있는 전략 지역인 와칸회랑은 탈레반이 통제하고 있군요. 중국이 당근을 내세워 아프간의 탈레반은 관리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군도 해법을 못 찾고 물러선 FATA 지역입니다. 중국 왕이 부장이 '탈레반의 해방구'인 FATA를 모를 리 없습니다.   

FATA에서 발진한 세력이 아프간을 교량 삼아 북쪽의 스탄 국가들을 우회한 뒤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유입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악몽입니다. 중국이 핵심이익이라고 선포한 신장위구르 지역이 '화약고'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익이 될지 여부는 비용 변수까지 고려해야 알 수 있습니다. 핵심이익 수호를 위해 중국이 어떤 대가까지 감수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결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신장자치구 위그루 지역으로의  대중국 테러 세력 들이 들어 가는 것을 가장 경계 하며, 한편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인도와의 절충점 이어었던 파키스탄에 이어서 아프카니스탄까지 중립적으로 중국을 지지 할 수 있다면 남아시아 정책상으로는 매우 좋은 호재를 만난 셈일수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들어가야할 천문학적인 지원금과 투자 개발금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 할 지가 세계인들의 관심사가 될 모양 입니다.  양귀비, 마약의 90% 의 생산 재배량을 가지고도 있지만 산악 지형에 내륙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4차 산업이나 반도체 에 필요한 원자재 즉 희토류 등이 많이 매장 되어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의 개발 또한 중요한 산업의 방향이 될 듯 합니다. 아프카니스탄의 운명은 이제 부터 새로운 시작이 될 모양 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지요 ,,  Written by E HAN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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