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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08. 2022

아침은 당연히 사 먹는 거지. 주부천국, 대만 조식문화

열세 살 딸과의 대만 한 달 여행

<나의 소녀시대>라는 대만 영화가 있다. 송운화, 왕대륙이 주연인 영화로 좌충우돌 용감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그린 불후의 명작이다. 딸아이의 친구들도 다 이 영화를 봤다고 할 정도이니 대만에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 없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초입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그때 우리에게 하루 중 가장 큰 고민은 아침으로 무엇을 먹느냐였다.”


그렇다, 아침은 학교에서 사 먹는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엄마가 차려 주는 아침을 먹는 게 아니라, 사 먹는다. 주부 천국이다. 한국에 도입이 시급한 몹시 바람직한 문화다. 벽에 붙은 메뉴를 보니 샌드위치, 만토우(만두소가 없는 찐빵), 핫도그, 무떡, 철판볶음면, 마장면(참깨 소스), 땅콩 토스트, 딸기 토스트를 팔고 있다. 화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찐 계란도 있을 것이다. 대만 사람들이 조식으로 무엇을 먹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대만에서는 샌드위치, 토스트 등은 서양식 조식이라고 하고, 무떡, 딴빙, 빠오즈(소가 들은 찐만두) 등은 중국식 조식이라고 한다. 그 외에 일본식 주먹밥인 판퇀도 있다. 아래 사진은 조식 전문 식당의 메뉴판이다.

판퇀(주먹밥)류, 만토우류, 철판면류, 딴빙류, 햄버거류 등 종류가 정말 많다.


딴빙류를 좀 더 보자면, 전통딴빙은 25위엔(한화 약 1,000원)이고, 로우쏭딴삥은 30위엔(약 1,200원), 베이컨을 넣은 딴빙은 35위엔(약 1,400원)이다. 럭셔리 딴빙이다. 이 코팅된 메뉴판에 먹고 싶은 것을 색연필로 체크하고 사장님한테 주면 뚝딱 만들어준다. 우리 모녀가 딴빙 2개와 음료 2개를 주문하면, 약 100위엔(약 4,000원)이다.


나와 딸아이는 아침 식사로 딴빙(蛋饼/蛋餠)을 가장 좋아한다. 딴(蛋)은 계란이란 뜻이고, 빙(饼)은 ‘전병’의 ‘병’ 그 글자다. 밀가루나 옥수숫가루 반죽을 부침개 부치듯이 부치고, 그 위에 계란을 탁! 깨어 고르게 편다. 거기다 옵션으로 추가한 베이컨이나 로우쏭을 얹어 둘둘 말아 접시 위에 내어 놓는다. 식탁 위에 놓인 소스 중 자기가 원하는 것을 뿌려 먹으면 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딴빙을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또우장(중국식 두유)과 함께 먹으면 든든한 아침 식사가 된다.

좌: 두 종류의 딴빙과 또우장 두 잔 / 우: 선명한 로우쏭의 자태!

딸아이는 로우쏭딴빙을 가장 좋아한다. 대만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이 로우쏭을 한 번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맛도 아주 좋기 때문이다.


로우쏭(肉松/肉鬆)은 고기를 말려서 보송보송할 정도로 잘게 찢은 것으로 짭조름하고 달콤하다. 로우(肉)는 고기라는 뜻이고, 쏭(松)은 푸석푸석하고 헐거운 느낌을 주는 글자이니 단어만 봐도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간다. 대만의 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나, 우리는 로우쏭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이것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로우쏭 한 봉지 사서 갓 지은 뜨끈한 밥 위에 뿌려 먹어도 좋고, 샌드위치에 넣어도 좋다. 볶음밥, 김밥, 샐러드 어디에 넣어도 맛있다.


이 로우쏭과 관련한 가슴 아픈 스토리가 하나 있다. 동해대학교 어학당 선생님이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로우쏭을 선물해 주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만과 한국에 당시(2020년 1월) 돼지열병과 관련해 검역이 강화되어 로우쏭이 한국 반입 금지 물품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귀국하기 직전까지 며칠 동안 열심히 먹고, 남은 것은 선생님 드시라고 눈물을 머금고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대를 이어 영업하는 '뚱뚱 엄마의 아침식사', 대를 이어 방문한 우리 모녀.

20년 전 대만 어학연수 시절에는 원룸 1층에 있는 ‘뚱뚱 엄마의 아침식사’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참치 샌드위치를 즐겨 먹었었다. 20년 만에 딸아이와 함께 그 시절 그 골목에 돌아와 이제는 뚱뚱 엄마의 딸이 운영하는, 같은 이름의 식당에서 느긋한 아침을 즐기니 감회가 새롭다. 엄마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뿌듯하다. 그냥 단촐한 아침 식사일 뿐인데, 문득문득 가슴 벅차다. 주책이다.


대만에는 ‘뚱뚱 엄마의 아침식사’처럼 오전에만 문을 여는 조식 전문 식당이 많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앞에 아침에만 나타났다 10시경이면 사라지는 노점도 있다. 편의점에서도 맥도널드에서도 조식을 먹을 수 있다. 자유여행을 갔다면 골고루 하나씩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타이베이에서의 어느 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면 조용히 옷을 입고 아침 산책을 나가보자. 빠오즈(소가 들어 있는 찐만두)를 사려고 줄을 서 있는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동네 맛집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빠오즈 하나에 14원(약 550원)이다. 10개 사면 하나 서비스!

지하철역 쪽으로 방향을 잡고 슬슬 산책하면서 빠오즈도 사고, 샌드위치나 토스트도 사고, 편의점에서 커피도 사와 일행과 느긋한 아침을 즐겨보자.


대만에 왔다면 아침에 육개장 사발면은 그만 먹기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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