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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06. 2022

대만에서는 마라훠궈를 먹지 마라.

열세 살 딸과의 대만 한 달 여행

대만에 여행 가는 많은 사람들이 '마라훠궈(麻辣火锅)'를 먹는다.

마麻’는 ‘마비’할 때의 ‘마’이고, ‘라辣’는 맵다, ‘궈锅’는 냄비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라훠궈’는 중국 사천(四川)이 고향인 얼얼하면서도 매운 샤부샤부라는 뜻이다. 얼얼한 맛은 훠궈 재료 중 하나인 ‘화지아오(花椒)’라는 작고 동글동글한 알갱이와 이 화지아오로 만든 기름이 담당한다. 실수로 이 화지아오 알갱이를 씹어본 사람이라면 입안을 마비시키는 그 얼얼하고 떨떠름한 맛을 알 것이다. 뜨끈뜨끈한 마라훠궈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면, “캬!” 그 맛이 일품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마라’ 열풍이 불고 있다. 청소년들도 친구들과 만나면 마라탕 먹으러 간다고 할 정도이니, 한국의 대중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마라탕은 사천의 마라탕과 조금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매운맛은 좋아하는데, 얼얼한 맛을 싫어해서 이 맛이 거나 빠져있다. ‘마라’에서 ‘마’가 빠진 셈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음식이 현지화 과정을 거치므로 이건 당연한 현상이다.


대만을 포함한 중국 남방지역 사람들은 매운 것을 거의 먹지 않는다. 20년 전 대만 어학연수 시절 대만 친구에게 한국 라면(무슨 라면을 줬는지는 잊었다.)을 먹어보라고 준 적이 있다. 다음날 “그게 무슨 맛이냐? 아무 맛도 나지 않았어.”라고 해서 어떻게 끓였는지 물었더니, 빨간색 스프가 매워보여 차마 넣지 못하고 건더기 스프만 넣어 끓였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 더 주면서 “스프를 반만 넣어봐.” 했더니, 다음날 너무 매워서 먹지 못했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몇년 전 한국으로 파견 온 한 중국 광동성 사람이 중국음식을 그리워 하길래 대학가에 있는 양꼬치집에 데려가 이것저것 사 준 적이 있다. 나 역시 매운 것을 잘 못먹는 편인데, 내가 느끼지 못하는 매운맛에 힘들어하던 그 친구의 모습도 떠오른다. 당연히 개인차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중국 남방지역 사람들은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다.


대만에서 파는 ‘마라훠궈’ 우리나라에서 현지화 과정을 거친 것처럼 대만 현지화 과정을 거친 맛이다. 물론 “절대로 먹지 말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마라훠궈 맛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먹자는 것이다.


그럼 대만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대만에는 대만식 훠궈가 있다. 솬솬궈(涮涮鍋)와 초우초우궈(臭臭鍋)가 그것이다. 솬솬궈는 일본어 ‘샤부샤부’의 발음과 흡사하게 만든 단어이다. 물에 헹구어 씻는다는 뜻의 솬(涮) 냄비라는 뜻의 궈()가 합쳐졌다. 일본 식민시기에 대만에 들어온 일본 샤부샤부가 장개석 정부와 함께 유입된 대륙의 ‘훠궈’와 결합한 것으로 일본의 그것보다 탕이 진하고 단백하다. 대체로 한 사람이 한 냄비씩 먹는다.


초우초우궈는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쯤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인 1냄비씩 식탁 위에서 끓여 먹는 것으로 원래는 취두부, 곱창이 들어갔다 한다. ‘초우(臭)’는 ‘나쁜 냄새가 난다.’라는 뜻으로 ‘취두부’ ‘취(臭)’가 이 글자이다. 이름만 들으면 꼬리꼬리한 냄새가 날 것 같아 조금은 두렵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단, 이름만큼 냄새가 심하지 앓다. 지금은 종류도 다양하고(취두부가 없는 것도 많다.), 김치 초우초우궈도 있으니 두려움 없이 시도해 보아도 좋겠다.

1인 1냄비, 솬솬궈.
타이중 동하대학교 대학촌에 위치한 초우초우궈 식당. 2개+음료=455위엔(한화 약 18,000원)

딸아이와 대만 한 달 여행 중에도 솬솬궈와 초우초우궈를 여러 번 먹었다. 김치 초우초우궈는 20년 전 어학연수 시절,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면 늘 먹었던 음식이다. 타이중 동해대학교 대학가에서 예전에 자주 갔던 식당을 찾아 보았다. 허름한 초우초우궈 가게는 이미 없어지고, 깨끗하고 넓직한 가게가 들어섰다. 예전과 맛이 같은지는 모르겠다. 예전의 맛은 기억이 나지 않고, 등받이 없는 의자, 낮은 테이블, 야시장 같이 시끌벅적한 분위기, 호호 불어 후루룩 들이키던 모습, 식후의 포만감만 생생하다.


마라훠궈는 나중에 중국 사천 충칭쯤 가서 먹기로 하고, 대만에 갔으니 대만 훠궈를 먹어보자. 대만에서 마라훠궈를 먹는 것은 한국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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