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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May 11. 2022

대만 타이난, 드라마 상견니, 그리고 딸아이 첫 생리

열세 살 딸과의 대만 한 달 여행

드라마 '상견니'

지난주 '상견니(想見你, 네가 그리워)'라는 대만 드라마 두 번째 시청을 마쳤다. 심심한 주말 오후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생각하며 넷플릭스를 뒤지던 중 작년에 재미있게 봤던 ‘상견니’를 발견하고는 홀린 듯이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된 것이다.


‘상견니’는 대만에서 2020년 2월까지 방영된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시간여행 드라마이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여자 주인공의 연기가 훌륭해서 대만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의 배경 도시가 바로 타이난(台南)이다.


대만 건너편에 복건성(푸젠성)이 보인다.

늘 타이난에 가보고 싶었다. 짧은 여행 일정에 항상 다음을 기약하다 이번 딸아이와의 대만  한 달 여행 기간에 1박 2일 일정으로 타이난을 여행했다.


 타이중 차오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만에 타이난역에 도착했다. 타이중에서는 대만에 온 이후 최저기온인 11도여서 오랜만에 두툼한 바지를 입고 출발했는데, 타이난에 도착하니 18도, 호텔까지 이동하는데 바지 속에서 땀이 났다. 아이도 엄마 덕분에(?) 오랜만에 땀 뺀다며 은근히 투덜거린다.


대만이 이렇다. 국토는 작은데, 북쪽에 있는 수도 타이베이(台北), 중간에 있는 타이중(台中),남쪽에 있는 타이난(台南), 조금 더 아래에 있는 컨딩(墾丁) 기후가 다 다르다. 신기하다. 겨울에 타이베이는 비 오고 우중충한 날이 많은 반면 컨딩은 늘 화창하다. 누군가가 북회귀선이 대만을 지나가서 그렇다는데, 과학에는 일자무식, 낫 놓고 기역자로 모르는 수준인지라 이 부분은 잘 이해가 안 간다. 아무튼 대만 북부는 아열대 기후, 남부는 열대기후 지역이라고 한다. 컨딩 택시 투어 가이드가 하는 “타이베이에 사는 사촌 여동생은 겨울만 되면 컨딩으로 피신 와요.”라는 말을 듣고 대만은 날씨마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타이난은 현대의 대만이 시작된 곳이다. 원주민만 거주하던 이 땅에, 16세기 무렵 대만 건너편에 있는 복건성 사람들이 타이난의 안핑(安平) 지역으로 넘어와 살기 시작했다. 양쪽을 오가며 고기도 잡고 장사도하고 그러나 이곳에 정착도 했으리라. 이무렵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타이완’이라고 불렀다. 대만에 가면 먹어봐야 할 음식 중 하나로 ‘단자이미엔’이라는 국수가 있다. 단자이미엔 전문점으로 명성이 높은 ‘두샤오위에(度小月 도소월)’ 식당은 현재 5대손이 운영하고 있는데, 제1대 사장이 바로 이때 중국 복건성에서 건너온 사람이다.


타이난은 대만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문화적으로 번창한 도시였던 것이다. 그래서 대만 최초로 학교가 설립될 수 있었고, 그것이 현재 타이난에 있는 ‘공자묘’이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타이난에서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1624년에는 네덜란드인들이 타이난을 침략하여 지배하였고, 1661년에는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정성공은 명말청초에 군대를 조직해 반청운동을 벌였으나 결국 청군에 몰려 타이난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당시 타이난을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여, 이후 정성공은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타이난 지역의 유명 대학인 ‘국립 성공대학’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후 청나라 지배기를 거쳐, 1895부터는 일본 침략 시기를 겪는다. 자그마한 타이난에서 한족들의 대만 이주 초기 문화, 네덜란드 침략 시기 유적, 일본 침략 시기의 시대의 유적과 흔적을 모두 볼 수 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경주와 군산을 합쳐 놓은 묘한 분위기가 난다.


첫날,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바로 안핑으로 향했다. 안핑은 바닷가에 면해 있는 곳으로, 타이난에 건너온 복건성 사람들과 네덜란드인들이 자리를 잡았던 바로 그곳이다. 드라마 상견니에서 남자 주인공 ‘리즈웨이’가, 할머니 집에 왔다가 길을 잃게 된 어린 ‘황위쉬엔’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집을 찾아 주는 장면이 있다.


“할머니 집이 어딘지 잘 생각해봐.”

“새하얗고, 높다랗고, 빨갛고 뾰족한 지붕이 있어요. 그리고 바다도 있어요.”

“안핑? 할머니 집이 안핑이지?


리즈웨이가 아이를 데리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며 이 아이를 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만나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할아버지나, 달고나 파는 상인 등이다. 그러니까 안핑은 삶의 역사가 녹아 있는 옛 시가지인 것이다.

좌: 안핑의 골목, 한담을 즐기는 어르신 / 우: 새하얗고 높다랗고 빨갛고 뾰족한 지붕, 안핑구바오

안핑에서 네덜란드가 대만을 점령했을 당시 사용했던 요새인 ‘안핑구바오(安平古堡)’를 먼저 방문했다. 앞서 드라마 ‘상견니’에서 아이가 묘사한 빨갛고 뾰족한 지붕이 바로 이곳이다.


다음으로 '안핑슈우(安平树屋)'를 돌아보았다. 안핑슈우는 말 그대로 ‘나무집’이다. 1867년 영국 상인이 설립했던 무역회사의 창고였던 곳인데, 대만 광복 이후 폐허로 방치되었고, 이때 뱅골 보리수가 자생하여 가득 차는 지경에 이르러 오늘날 관광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좌: 암핑구바오 / 중: 그 당시 원형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성벽 / 우: 안핑슈우

안핑슈우를 돌아볼 때 딸아이 인생 첫 생리가 터졌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고, 여기 아프다, 저기 쑤신다고 말했었다. 여행의 피로 때문이려니 하고 "비타민 챙겨 먹어라", '밥 많이 먹어라", "사랑의 불시착 그만 보고 일찍 자라" 잔소리했는데, 생리 때문이었다. 생리통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금까지 아프다고 한 것이 생리통 때문이었구나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더불어 이제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의 모습에 한편 섭섭하기도 했다.


편의점을 찾아 생리대를 사고, 진통제는 어디서 구입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만큼 나도 당황했다. 나만큼 당황했을 아이의 마음과 안쓰러워하는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첫 생리를 축하하기 위해 저녁으로 치킨을 사주었다. 아까 호텔 옆에서 봤던 한글로 간판을 단 치킨집이 생각나 그곳에 데리고 갔다. ‘한글로 간판을 걸었으니 한국 맛 치킨이겠지’라는 기대와는 달리 대만 입맛에 맞춘 조금은 실망스러운 치킨이었지만, 어쨌든 조촐한 축하파티를 했다. 그날 밤은 각종 교육으로 늦게 잠들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아빠가 준비해 준 꽃과 케이크로 다시 축하해 주었다. 대만에서 맞이한 첫 생리, 이로서 대만은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곳이 되었다.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대만을 제대로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욕심이 채워진 느낌!


둘째 날은 타이완 최초로 설립된 공자묘와 하야시 백화점을 방문했다. 하야시 백화점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일제 침략기와 관련된 곳이다. 당시 일본 사람이 운영했었다는데, 지금은 기념품 같은 물건들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재탄생했다. 계속 위로 올라가 옥상에 도달하니 일본식 신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친일적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야시 백화점 옆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니 대만의 위안부상이 있다. 위안부 상을 둘러싼 벽에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위안부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다. 아이와 설명을  차분히 읽다보니 분노가 다시 한 번 치솟아 오른다. 분노조절 장애 상태를 묵념으로 잠재웠다. 

좌: 하야시 백화점 / 중: 하야시 백화점 옥상에 있는 신전 / 우: 위안부상

1박 2일의 여행지에서 알 수 있듯이 타이난은 대만의 시작, 네덜란드 침략기의 문화, 명말청초의 정성공과 일본 침략기, 현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이렇게 매력적인 도시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쉽다. 타이베이는 수도니까 그렇다 해도 가오슝보다는 타이난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타이난 여행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버스 타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이 여기저기 있고 뭔가 복잡해서 대중교통 체계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웠다. 주로 88번, 99번 하오싱 버스를 이용했는데, 기존의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어서 조금 헤매기도 했다. 게다가 이런 정보를 대부분 대만 사이트에서 찾았으니 중국어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대중교통 정보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잠겼던 해외여행의 문이 슬슬 열리고 있다. 대만은 아직 방역에 한창이어서 아직 개방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곧 문을 열 때를 대비해서인지 요즘 상견니와 타이난을 연계한 광고가 종종 보인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로 인해 단슈이(淡水)가 유명해져 많은 관광객이 단슈이를 찾았다. 단슈이 대왕카스테라까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으니 영화 한 편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상견니의 인기에 힘입어 타이난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번 여행에서는 비록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다음에 대만에 올 때는 꼭 느긋하게 거니는 여행을 하고 싶다. 일주일은 머물러야겠다. 안핑에서 하루 머물면서 옛 거리를 거닐어야지. 바다 옆에 있는 숙소를 찾아볼까? 일본식 가옥에서도 하루 지내보는 건 어떨까? 야시장에서 여러 굴요리도 먹어봐야지. 타이난 사람들은 어떤 성격일까? 성공대학에도 가봐야지.


<열세 살 딸아이의 일기>


2020년 2월 18일, 화요일


오늘은 대만 여행 20일째이다. 어제저녁에 사랑의 불시착 최종화를 해서 오늘 아침에 좀 보다가 나갔다.

아침은 팡마마 조식 식당에서 베이컨 딴빙, 핫도그 딴빙, 또우장을 먹었다. 그리고 버스 타고 차오마 지역에 있는 국광호 여객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2시간 이동이었는데, 나는 런닝맨을 usb로 봐서 그다지 심심하진 않았다. 타이난에 도착해서 버스 타고 일단은 우리가 묵을 숙소로 갔다. 가서 짐 놓고 다시 이동했다. 걸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버스 타고 안핑 지역까지 갔다.


거기 도착해서 맨 처음으로는 안평고보라는 곳에 갔다. 안평고보는 옛날에 네덜란드 점령군의 요새였다. 가서 전망대에도 올라가 보고 오래된 성벽 일부분도 보고 그랬다. 그리고 근처에서 ‘종합 위위엔’을 먹었다. 그다음 걸어서 안평수옥까지 갔다. 안평수옥은 용수나무로 뒤덮여있다. 진짜 징그럽게 나무로 뒤덮여있다. 여기서 나의 첫 마법이 터졌다. ㅎㅎㅎ 참 의미 있는 장소이다. ㅎㅎ


그리고 다시 버스 타고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호텔까지 걸어왔다. 호텔에 들어와서 쉬다가 저녁 먹으러 갔다. 저녁은 내가 PICK 한 치킨집에 갔다. 이름이 '#치킨가게'여서 '한국식 치킨이구나!' 하고 들어갔는데, 치킨무는 차갑지도 않고 짜기만 하고 아사삭 거리지 않는다. 그리고 간장치킨은 베이스도 별로인 데다가 너무 느끼했다.


2020년 2월 17일, 월요일


다섯개의 '복' 글자(오복). 집에 복 들어오라고 현관에 딱!

버스 타고 하야시 백화점에 갔다. 옛날엔 백화점이었는데 현재는 백화점이 아니라 그냥 기념품점이다. 근데 되게 귀여운 것들이 많았다. 거기서 '오복'이라는 '복'글자가 다섯 개 있는 장식품도 사고, 동생들 줄 것도 샀다. 음료수 캐리어를 샀다.


다 보고 나와서 음료수 먹고 쉬다가 버스 타고 두 정거장 가서 ‘적감루’라는 곳에 갔다. 거기는 네덜란드 요새였는데, 정성공이 네덜란드를 물리치고(?) 정성공의 요새가 되었다.


그리고 ‘신광산위에’에서 카레를 먹었다. 새삼 느끼는 건데, 'NO 일본' 불매운동은 건너갔다^^. 일본 백화점에서 이렇게 일본 물건을 사주니.


밥 다 먹고 여기서 호텔까지 가까운 거리라 걸어갔다. 호텔에서 짐 찾아서 타이난 올 때 왔던 여객터미널에 가서 티켓을 일찍 타는 걸로 바꾸고 버스에 탔다. 너무 급하게 가는 바람에 버스에서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는데,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거다! 구사일생! 하지만 화장실 환경은 똥!


 버스에서 내려서 요화꽁처 타고 숙소에 왔다. 쉬다가 밥 먹고 쉬다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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