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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May 02. 2022

지옥펀? 아니 지우펀!

열세 살 딸과의 대만 여행

2020년 1월 31일 아침, ‘예류’로 향하는 택시투어 9인승 승합차에 우리 모녀 둘만 타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섯 명이 왁자지껄 이동하고 있어야 했다.


타이베이를 함께 여행하기로 한 두 팀이 더 있었다. 하지만 출국 이틀 전에 급히 여행을 취소하고야 말았다. 한국에서 최초 감염자가 2020년 1월 20일에 발생했으니 한창 공포에 떨며 전 국민이 문밖출입도 삼갈 때라 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열세 살인 딸아이가 태어나면서 계획한 대만 한 달 여행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코로나 공포를 이겨내고 한 달 일정으로 대만 여행을 감행했고, 이날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예류, 진과스, 지우펀 일일투어를 하는 날이었다. 


자동차 안에서 조금 적적함을 느꼈다. 여행이란 것이 때로는 시끌시끌한 축제 같은 분위기면 더 좋을 때가 있지 않은가. 소풍이나 수학여행처럼 도시 외관으로 이동할 때 그러하듯 말이다.  밀크티로 사기를 한껏 올리고 출발했다. 


예류와 진과스를 거쳐 드디어 지우펀에 도착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에 자리한 지우펀은 해질 무렵 은은한 오렌지빛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질 때쯤 시작하면 딱 좋다. 걷다 보면 화려한 홍등까지 붉을 밝혀 낭만을 더한다. 예류와 진과스를 거쳐 오느라 피곤하다고 칭얼거리던 아이의 눈이 번쩍 뜨인다.


좌: 예류 지질공원에서 / 우: 사금 채취 체험

과거 금광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우펀. 우리에게는 일본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유명해졌지만, 대만 사람들에게는 1989년에 나온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 슬픔의 도시)’의 배경이 되면서 다시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비정성시’는 우리나라의 광주사태를 연상시키는 대만의 ‘228 사건’을 언급한 영화다. 


청나라 때부터 지롱강(基隆河)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더니, 1892년 급기야 지우펀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 일본 통치 시기 이후 일본인 및 지롱의 안 씨(颜氏) 가문이 일대의 채굴권을 갖게 되었고, 탄광 개발까지 이어져 일명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1950년대부터 황금생산량이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여 1971년에 정식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그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던 지우펀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유명 관광지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지우펀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당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눈이 보이는 것만 같다. 일본 광산 채굴 회사에서 일하는 일본인 직원과 식솔들, 대만인 관리자와 광부의 가족들이 이 산기슭에서 복닥복닥 살았을 것이다. 저녁이 되면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친구들과 놀기로 한 아이들은 허겁지겁 밥을 먹고 골목으로 뛰어나간다. 고단한 어른들도 잠자리에 들기 전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떨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지우펀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지산지에(基山街)는 그 당시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였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暗街(암가)’라고 불렸다 한다. 지금의 지산지에에서는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전통 일본식 건축인 ‘지우 쭝 띵(九重町) 객잔'(이름에서 이미 일본의 향기가 넘친다)이 유명하다.


300여 개의 돌계단으로 되어 있는 슈치루(豎崎路), 이 거리에는 대만 최초 영화관 ‘셩핑시위엔(昇平戱劇, 승평 희극원)’이 있다. 택시투어 운전사이자 가이드 아저씨가 “지우펀에는 일본인 관리자들, 즉 부유층이 많이 살았어. 그래서 당시에는 극장이 꽤 있었지.”라고 설명했다. 말을 듣고 보니 이 산골 지우펀에 대만 최초의 영화관이 생긴 이유가 납득이 된다.


함께 오기로 했던 친구들은 여행을 취소했건만, 지우펀에는 인파로 가득했다. 1월 25일부터 시작된 설날 연휴, 그 연휴의 끝자락에 지우펀으로 놀러 온 대만 사람들로 인해서였다. 그러나 이 정도는 괜찮다. 딱 흥겨울 정도의 붐빔이다. 2014년도에 두 번째로 지우펀에 왔을 때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였으니까. 


지우펀은 한때 한국인들에게 ‘지옥펀’이라고 불렸었다. 지우펀이 지옥인지 아닌지는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인 관계와 관련이 있다. 친중 성향의 국민당 정부가 집권하느냐,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민진당 정부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지우펀 또는 지옥펀이 된다. 2008년에서 2016년까지는 국민당 집권 시기였다. ‘독립하지도 않고, 통일하지도 않겠다.’는 정책에 힘입어 중국과의 관계가 좋아졌다. 덕분에(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불행하게도) 중국 대륙 관광객들이 대만에 몰려들었다.


양안 관계가 좋던 2014년 지우펀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 앞사람 뒤통수만 보며 일본 신발 게다를 신은 듯이 총총 걸을 수밖에 없었다. 지우펀뿐만 아니라 예리우 지질공원, 태로각 협곡 등 어느 곳을 가도 중국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그들보다 한 걸음 빨리 움직이는데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금은 다시 민진당 정권이 집권했고, 중국의 관광객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만 관광객들이 메웠다. 제주도의 상황과 비슷하다.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 제주의 중국 관광객 급감, 한국 관광객 증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말이다. 


나의 첫 번째는 지우펀 방문은 2003년도였다. 그때는 대만 관광객도 많지 않았다. 친구와 한적한 골목을 천천히 산책하며 한눈에 담기는 산과 바다의 풍경, 옛 정취 물씬 풍기는 거리를 즐겼다. 바다가 저어어기까지 보이는 산기슭에 자리 잡은 찻집에 앉아 호젓하게 차도 마셨다. 지우펀과의 첫 만남, 그때 느꼈던 고즈넉함이 그리워 계속 찾고 있지만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더 이상 예전의 지우펀의 정취를 느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새 지우펀에는 또 다른 새로운 매력이 있으니 다음에도 다시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다음번엔 지우펀에 있는 객잔에서 하루 묶어보리라. 이렇게 택시로 후다닥 둘러보는 지우펀이 아니라, 화려한 홍등이 꺼지고 북적거리던 관광객이 모두 돌아간 지우펀, 연극이 끝나고 조명이 꺼진 극장과도 같은 지우펀, 다음날 아침 또 다른 북적거림을 준비하는 지우펀을 보고 싶다. 


딸아이에게 또우화(두부 푸딩)와 탕후루, 치즈빵, 금귤 에이드를 먹이고 나니 머리 아프다고 칭얼거리던 소리가 쏙 들어가고 다시 쌩쌩해졌다. 정해진 시간에 돌아가야 해서 찻집에 앉아 차 한 잔 마시지 못하여 참으로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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