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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30. 2022

대만 야시장 매력 속으로 퐁~당~

열 세살 딸과의 대만 여행

타이중 펑지아(逢甲 봉갑)대학 옆에 있는 ‘펑지아 야시장’에 딸아이와 함께 갔다. 버스에서 내리니 벌써 북적북적하다. 음식 천국이 멀지 않았구나 싶다.  펑지학 대학을 향해 조금만 걸으면 노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펑지아 야시장’이 나타난다. 대학에 담장이 없어 대학 캠퍼스의 연장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일단 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후 지아오 빙(胡椒饼)’ 가게부터 찾았다. ‘후 지아오’는 후추라는 뜻이다. 호떡처럼 반죽에 돼지고기, 파, 후추 등을 넣은 소로 속을 채운다. 그리고는 벽돌로 만든 화덕 벽에 붙여 구워내어 이상적인 ‘겉바속촉’ 상태를 구현한다. 약간 크루와상과 흡사한 바삭한 껍데기를 지나면 육즙 촉촉하며 파 향 가득한 고기소를 만나게 된다. 역시 후지아오빙은 펑지아 야시장의 것이 최고다. 처음 먹는 딸아이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운다.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 했었는데 기우였다.

화덕 벽에 붙여 구워 내는 겉바속촉 '후 지아오 빙 '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니 이미 10년쯤 되었나 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이 후지아오삥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남편에게 "어머! 이게 여기 다 있네? 이건 꼭 맛봐야 해!" 하며 먹었다가 맛이 없어 당황했던 적이 있다. 맛없다는 남편에게 대만에서는 이 맛이 아니었다고, 다음에 대만에 가면 맛있는 후지아오빙을 사주겠다고 달랜 기억이 난다. 이날 펑지아 야시장에서 먹은 후지아오삥은 내 기억 속에 있던, 그동안 그리워했던 바로 그 맛이었다. 역시 본토의 맛은 다르다.


후지아오삥을 하나씩 먹고, 몇 걸음을 옮기다 발견한 '한국 오빠들 떡볶이' 가게. 냉장고에 태극기도 붙어 있길래 한국말로 말을 거니 한국말로 답을 한다. 진짜 한국 오빠들이 차린 가게인가 보다. 가게 이름을 정말 잘 었다. '오빠'라는 단어는 한국 드라마를 타고 중국, 대만에 수출된 지 오래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었다. 대만에도 이와 비슷한 ‘WTO 자매회’라는 프로그램이 있어 즐겨 보는데, 한국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오빠(欧巴 ou ba)’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가게 앞에 여러 손님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보니 펑지아 야시장에서 꽤나 인기가 있는 듯하다. 가격은 ‘대’가 80위엔(약 3,200원), ‘소’가 60위엔(약 2,400원)이고, 치즈가 들어가면 약 10위엔(약 400원) 씩 올라간다. 며칠 전부터 떡볶이 타령을 한 아이에게 망설임 없이 치즈 떡볶이 ‘소’ 하나 사줬더니 이번에도 눈 깜짝할 새 먹어 버렸다.


간판을 보니 한국 ‘오빠’ 두 명이 각각 태극기와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있다. 배경에 내가 어학연수를 했던 동해대학교의 상징인 교회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물어봤더니, 동해대학교 다니다가 체대로 전향했었다 한다. 그러다 이 사업을 시작했다는데, 대단히 진취적인 청년들이다. 나도 동해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했으며, 이번에 딸아이와 다시 여행을 왔다는 이야기를 짧게 했다. 주문하고 음식을 받는 짧은 시간에 후다닥 대화를 하고 뒤 사람에게 얼른 자리를 내주었다.


그다음으로 먹은 것은 '탕후루(糖葫芦)'이다. 탕후루는 과일을 꼬치처럼 끼워서 설탕물을 입혀 굳힌 것이다. 북경에서는 새콤한 작은 사과로 만든 탕후루만 먹었었는데, 과일이 시고 맛있지 않아서였는지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대만의 탕후루는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과일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좋다. 특히 크고 신선한 딸기로 만든 탕후루는 새콤달콤하여 식후 디저트로 딱이다. 큼지막하고 영롱한 붉은 딸기가 설탕물 옷을 입고 반짝이는 자태로 진열대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딸기 탕후루를 99위엔(약 4,000원)에 사서 또 맛나게 먹었다.



딸아이와 내가 이날 방문한 펑지아 야시장은 대만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야시장이다. 먹거리 노점이 그렇게 많이 있는데도 거짓말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겹치는 음식이 없다. 만두, 스테이크, 국수, 오징어 등 각종 샤오츠(小吃)가 넘친다. ‘츠(吃)는 ‘먹다’라는 뜻, ‘샤오츠’는 간단하게 후다닥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우리나라의 떡볶이나 김밥, 만두쯤 되겠다. 펑지아 야시장뿐만 아니라 대만의 모든 야시장이 이렇게 먹을 것이 많으니 대만의 맛과 분위기가 흘러 넘치는 야시장은 대만 여행의 필수 코스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두 번 이상은 반드시 가야 한다. 타이베이의 ‘쓰린(士林) 야시장’은 워낙에 유명한 곳이니 안 가면 아쉽다. 하지만 이곳은 현지인들보다는 관광객들이 많은 야시장이니, 쓰린 야시장에 한 번 갔다면, 다음날에는 현지인들이 가는 야시장도 한 번 가보면 좋겠다.


대만의 야시장에는 먹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선 터트리기 등 소소한 오락거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이, 뭐 런 걸 해.” 하며 쓱 지나쳤었는데, 막상 해보니 재미있다. 특히 딸아이가 좋아한다. 카오슝 야시장에서는 거리에서 마사지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나를 보는 시선이 신경 쓰여 시도하지 않았을 텐데, 내 앞을 지나가는 저 사람들이 나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을 알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 실력도 좋아 어깨 위에 얹어진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카오슝 야시장에서 즐긴 거리 마사지와 소소한 오락

대만 야시장에 가면 꼭 먹여 봐야 할, 대만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음식이 많이 있다.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 김영하 작가는 대부분의 여행기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고,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여행기는 재미가 없어서 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처음 접하는 음식은 입에 넣어보기 전까지는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도전했는데 맛있으면 행복하고, 입에 맞지 않으면 그 또한 시간이 지난 후 깔깔대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된다.


일단 ‘어 아 지엔’이라는 굴전이 있다. 표준어 발음으로 읽으면 ‘커 자 지엔’이지만, 모두 민남어(대만 사투리) 발음인 ‘어아지엔’이라고 한다. 굴과 계란이 주재료인 어아지엔은 대만 어느 야시장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만을 떠나기 직전 이별의식, 루로우판과 곱창국수

곱창 국수도 도전해 봄직하다. 대만 사람들은 곱창이 들어간 국수를 즐겨 먹는다. 샹차이(고수)를 듬뿍 넣고 먹어야 제맛이다. 우리나라에서 깻잎이나 미나리가 하는 느끼한 맛을 없애는 역할을 대만에서는 샹차이가 하기 때문이다. 한 달 여행을 마치고 대만을 떠나는 날 공항에서 이별의식으로 '루 로우 판'이라는 대만 음식을 먹었다. 세트메뉴로 구성된 이 메뉴에도 곱창 국수가 들어 있었는데, 한 달 동안 대만 입맛에 익숙해진 나도 딸아이도 곱창 국수로 대만과의 이별의 아쉬움을 달랜 추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두리안도 좋아하고, 샹차이와 곱창 국수도 잘 먹는 우리 모녀가 못 먹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취두부'다. 그래도 대만에 갈 때마다 한 번씩 도전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익숙해져 그 맛에 중독될 날이 오겠지.


대만에서만 먹을 수 있는 샤오츠 중에 대만식 햄버거라고 할 수 있는 ‘꽈 빠오(刈包)’도 빠질 수 없다. 타이베이 쿠킹클래스에서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을 만났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대만인인데, 아버지가 미국에서 꽈빠오 가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꽈빠오는 대만 사람들에게는 김밥만큼이나 쉽게 접하는 ‘샤오츠’인 것이다.


먹을 것 많고, 놀 것 많고, 구경할 것 많은 대만의 야시장. 동네 어귀에 있는 작은 야시장은 오붓해서 좋고, 관광객이 몰리는 큰 야시장은 구경거리가 많아서 좋다. 대만 야시장은 어딜 가도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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