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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26. 2022

타이베이는 왜 그리 초라해 보여?

열세 살 딸과의 대만 한 달 여행

딸아이가 나에게 “대만이 잘 산다더니 타이베이는 수도인데도 왜 리 꼬질꼬질해?”라고 묻는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가득 안고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들어서는데, 뭔가 소박 또는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심으로 이동하면서 보게 되는 건물들은 뭔가 어색하다. 타일로 외벽을 마감한 것도 낯설고, 방범창에서 흘러내린 녹물이 벽에 줄줄이 남긴 자국들도 눈에 거슬린다. 이쯤에서 ‘이상하다? 대만도 잘 사는 나라라고 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2020년 1인당 국민총소득 순위를 보면 한국이 10위, 대만이 13위이다. 그렇다, 잘 산다.


그런데 왜 타이베이는 초라한 느낌을 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록 첫날에는 이 여행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지만 타이베이를 떠날 때 이미 다시 올 계획을 세우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1949년 국공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장개석 정부가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도망을 와 타이베이를 수도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모두가 알 것이다. 그러나 장개석은 언젠가는 중국 본토를 수복하여 돌아가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수도는 바로 난징이었고, 타이베이는 그저 ‘임시 수도’였을 뿐이었다. 때문에 타이베이에 대도시에 필요한 교통 등 기반 시설을 갖추는 노력에 소홀했다. 이후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타이베이 시장이 된 1994년이 되어서야 타이베이는 타이완 수도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타이베이에 여행을 가면 가장 많이 이용하게 되는 교통수단인 지에윈(捷運, MRT)도 1996년에서야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의 1호선이 1974년에 개통되었고, 2호선이 1980년에 개통되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타이베이가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는데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행객으로서 늦은 지에윈 개발이 고마울 때도 있다. 매우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환승에 매우 편리하다. 내린 자리에서 뒤만 돌면 환승이 가능한 역도 있다.


두 번째는 문화적 이유 때문이다. 대만 사람들은 겉치레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문화이다.  그러다 보니 외부의 시선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보다는 신경을 덜 쓴다. 이는 대만만의 문화라기보다는 중국 전역을 관통하는 문화라고 봐도 좋다. 대만 대학생들의 옷차림은 검소하다.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다. 여학생들은 머리를 질끈 동여맬 뿐이다. 옷차림은 고등학생처럼 검소한데 공부는 참으로 열심히 한다. 대학교에 유급 제도도 있다. 리니지라는 온라인 게임에 빠진 기숙사 룸메이트가 있었다. 밤에 모니터 빛에 잠을 이룰 수 없다는 다른 룸메이트의 클레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게임을 하는 지경에 이르더니 결국 학과에서 유급되고야 마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다. 학업과 연구라는 대학의 목적에 충실한 것이다.


타이베이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살펴본 적이 있는가? 화려하고 정갈하며 아름다운 우리의 지상직 승무원과는 달리 그들은 화장기 없는 모습에 유니폼 또한 단순하다. 우리나라에서 직장에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출근한다면 어떤 말들을 듣게 될까?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우리도 화장을 해도 좋고,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면 좋겠다. 이는 나도 타인의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고, 타인도 나의 외양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야 가능하다. 대만을 떠나는 날 공항에서 “승현아, 봐봐. 저기 승무원 언니들도 다 화장 안 했네. 겉모습보다는 내면이 중요한 거야.”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중2인 딸아이가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아이는 엄마와는 달리 꾸미기를 좋아하는구나 싶다.


하루는 중국 친구와 직장 내의 슬리퍼 착용을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출근길에 구두를 신고, 회사 내에서 슬리퍼를 신는데, 중국인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뿐인 거리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직장 내에서는 구두를 신는 것이 오히려 맞지 않는가 하고 나에게 반문하는데, 내가 무릎을 탁! 쳤다. 이것이 바로 문화 차이이다. 나와 관계없는 외부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내실을 기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덜 쓰는 문화는 아파트 외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복도 등 공동구역은 예쁘지 않다. 그러나 문을 열고 개인의 공간인 집안으로 들어가면 외관과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학교에서 만나는 교수님들도 한결같이 수수한 옷차림이다. 여전히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젊은 강사들도 많다.

타이중 동해대학 교내 우체국.  낡아보이지만, 1955년에 설립된 학교의 역사를 품고 지금도 기능하고 있다.


대만에 여행 갔으니 이런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외적인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공항에서 또는 도심으로 이동하는 중에 느꼈던 실망감을 떨치면 본격적으로 대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비록 국토는 작지만, 그 안에 장개석 정부가 가져온 중국 문화, 그전부터 이 땅에 있던 대만인 문화, 중국의 유태인이라 불리는 객가 문화, 이 땅의 터줏대감인 원주민 문화가 역동하고 있다. 이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대만을 먹고 입고 즐겨보자. 소박한 하드웨어 안에 있는 매력적이고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여행은 끝나 있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당신은 다음 대만 여행을 벌써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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