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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17. 2022

대만에서 변기 막히다.

열세 살 딸과의 대만 한 달 여행

2020년 2월 2일 밤 11시 무렵, 나는 타이중 동해대학교 서쪽 대학촌에 있는 골목에서 변기 '뚫어뻥'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딸아이는 낯선 장소에 가면 긴장 때문에 변비가 생기곤 한다. 대만에 온 이후 여러 날 대변을 보지 못하더니 이 야심한 밤에 기어이 사달이 난 것이다.


2022년 1월 29일 딸아이와 대만 한 달 여행을 떠났다.


우리 모녀 둘만의 여행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홍콩, 베이징, 마카오, 1년 전 타이베이 일주일 여행을 아빠 없이 했었다. 사실 이 모든 여행이 이번 대만 한 달 여행을 위한 준비였다. 성공적인 장기 여행을 위해서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훈제 오리에 연기 스미듯이 서서히 아이를 준비시켰다. 아이는 여덟 살에 베이징에서 두리안과 망고를 함께 갈아 만든 주스를 접한 이후로 두리안을 사랑하게 되었고, 마카오에서는 샤오롱빠오와 완탕에 반했다. 이렇게 중국 음식에 거부감을 갖지 않게 하는 등 잘 준비를 했기에, 지금까지 여행에 문제가 없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아이가 잘 적응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대만에 도착한 둘째 날부터 저녁만 되면 집에 가고 싶다고, 아빠 보고 싶다고 울기 시작했다. 낯에는 잘 놀다가 밤만 되면 이런다. 아직 28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이러면 어쩌나 싶어 순두부찌개도 사 주고, 양념갈비도 사주며 달랬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28일이나 남아서였다. 그전에는 짧으면 4일, 길어봐야 일주일의 여행이었기에 항상 끝이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28일이나 남았기에, 여행의 끝이 손에 잡히지 않기에 더 불안하고, 막막했던 것이다.


타이베이에서 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고속 열차를 타고 타이중이라는 도시에 왔다. 타이중은 대만의 중부에 있는 도시이다. 20년 전 이곳에서 어학연수를 했기에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엄마에게 익숙한 도시이니 아이도 마음 편하게 생각할 거라는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아이는 타이베이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막막해했다.


나 혼자 여행했다면 저렴한 숙소를 잡았을 터인데, 아이와 함께 하기에 새로 리모델링하여 깨끗하고 싱크대까지 있는 비싼 방으로 예약했다. “싱크대 있는 게 당연한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만의 경우 요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없는 원룸이 아주 많다. 외식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다들 밖에서 사 먹으니 식당도, 음식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싸다. 다들 밖에서 후다닥 먹고 들어가거나, 포장을 해서 집에 와 먹는다. 주부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러운 문화다.


이렇게 방도 좋은 것으로 예약했건만 아이는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고 매일 운다. 변비가 심해지더니, 숙소에 입성한 바로 첫날 변기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그 뚫어뻥!

엄마, 막혔어”라고 하는데, 순간 아찔했다. 늦은 시간이라 건물 관리하는 직원도 퇴근을 한데다, 설사 퇴근 전이라도 이런 일을 부탁하기엔 민망하다. 늦은 저녁에 부랴부랴 ‘변기 뚫어뻥’을 찾아야 했다. 아이는 방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그렇다고 이 시간에 아이까지 데리고 나갈 수는 없어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나라의 ‘천 원 숍’ 같은 가게가 있었다. 팔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다행히 비치해 놓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숙소로 와서 해결을 시도했다. 그런데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고무가 너무 얇아 문제 해결이 잘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해결하고는 손을 씻으며 조금은 원망 어린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보니 20년 전의 내 모습이 아이 얼굴 위에 겹친다.


나는 소화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긴장하는 상황이 오면 위장이 먼저 반응하는데 그때도 그랬다. 대만에 도착한 처음 일주일은 먹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도 없기에, 그래서 아프다고 챙겨줄 사람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스스로 손가락을 따고 피를 냈다.  


엄마와 같이 왔는데 뭐가 이리도 긴장될까 싶으면서도 를 닮은 딸이 안쓰럽다.  욕심에 괜히 데려왔나 슬며시 미안해지기도 하고, 남은 시간 잘 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내가 20년 전에 긴장감과 외로움을 이겨냈듯이 딸아이도 이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으리라.


딸아이의 울음은 여행 중반쯤 되니 잦아들었다. 중반을 지나면서 여행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비싼 양념갈비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래스’ 덕도 크다. 지금도 ‘사랑의 불시착’만 보면 타이중 그 방 침대에 앉아 드라마를 보며 행복해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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