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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Mar 07. 2023

우당탕탕 대만 여행 4-와이파이 없으면 원시인

열여섯 살 사춘기 딸과 다시 대만 여행

여행 첫날부터 낭패 여행기 세 편이 나올 만큼 우당탕탕 하루를 보내고 안락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해외여행만 오면 이상하게 부지런병이 도진다. 다음날 새벽부터 일어나 전날 무엇을 했는지, 얼마를 썼는지 빠짐없이 기록한 후 와이파이 도시락을 점검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전원이 꺼져 있었다. '어제 분명히 충전기를 꽂아 놓고 잤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충전기를 점검했다. 다른 콘센트에 꽂아봐도, 충전기 선을 바꿔봐도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KKDAY 사이트를 통해 예약했기에 고객센터에 문자를 넣었더니 챗봇이 대만 업체에 먼저 문의하라고 하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런데 챗봇이 알려준 번호가 와이파이 도시락 수령 시 데스크에서 알려준 번호와 달랐다. 


어찌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타오위엔 공항 데스크에서 알려준 '라인' 아이디로 문의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30분 넘게 충전했는데, 여전히 low battery라고 뜹니다."

"아침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합니다."


헉! 조급한 마음에 8시에 문자를 보냈더니 기다리라고 챗봇이 답을 했다. 어차피 9시가 되기 전에는 어떤 방법도 없으니 마음 편하게 기다리면 되는데 이놈의 조급증을 이기지 못하고, 와이파이 도시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어찌할 것인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로밍을 이용할까? 유심을 살까?' 고민을 하다가 로밍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자니 "띵똥" 라인 문자 알림이 울렸다. 이번엔 챗봇이 아닌 사람이었다.


"저희가 제공한 것 외에 다른 충전 부품이 있습니까?"

"있어서 그곳에 꽂아봤는데 소용이 없습니다.

"와이파이 기계 화면에 어떤 부호가 있습니까?"

"3시간 동안 충전했는데 여전히 low battery라고 쓰여 있습니다."

"방 안에 다른 콘센트가 있습니까?"

"내가 다 시도해 봤어요. 충전이 되지 않아요."


호텔부터 송산공항까지. 거리는 짧지만 억울하다. 귀한 내 시간!

꼬치꼬치 물어보더니 타이베이 시내에 있으면 '송산공항'으로 와서 교환하라고 안내했다. 송산공항은 우리나라의 김포공항쯤 된다. 주로 국내선을 운항하며 적은 편수이지만 국제선도 운항한다. 김포공항보다는 훨씬 도심에 가까이 있어서 지하철로 네 정거장, 호텔부터 18분이면 도착한다. 하지만 순순히 "네!" 하기엔 뭔가 억울해서 한마디 했다.


"여행 기간이 짧은 여행객에게 있어서는 이런 문제는 재난과도 같아요. 내가 송산공항에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까?" 호텔로 퀵으로 보내주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이렇게 물었다.


"호텔로 보내줄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 보내면 내일 호텔에 도착합니다."


와이파이가 없으면 일단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구글맵은 목적지까지의 교통수단을 알려준다. 전철 정보는 물론이고 버스를 탄다면 몇 번을 타야 하는지, 목적지까지의 모든 역 정보와 지금 어느 역을 지나는지 상세히 알려준다. 구글맵이 없으면 원시인이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송산공항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냉큼 대답했다. 


지인들이 중국어는 못하고 영어도 조금만 하는데 대만 자유여행이 가능한지 묻는다. 그러면 요즘에는 구글맵으로 길 찾아다니고 대만사람들도 친절해서 당연히 문제없다고 대답한다. 사실이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성공적인 대만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참으로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행히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서 비교적 쉽게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답답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답답하더라도 어찌어찌 문제를 해결할 터이고, 그 경험은 강렬한 추억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송산공항에 가서 와이파이 빵빵하게 잘 터지고 충전 잘되는 기계로 바꾸고 나니 원시인에서 현대인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자! 현대 문물 장착하고 24시간 운영하는 대만의 교보문고 '청핀서점'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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