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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Mar 09. 2023

우당탕탕 대만 여행 5-딸아이 엉덩이에 종기 뿅!

열여섯 살 사춘기 딸과 다시 대만 여행

새벽 다섯 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대만 타이베이 타오위엔 공항에 도착한 후 세 시간 만에 공항 탈출, 호텔 도착 후 숨은 고수의 우육면이라는 식당을 찾았으나 재료 소진으로 영업을 마감하여 실패, 딸아이가 한국에서 가져오지 않은 핸드폰 충전기 판매처를 찾아 헤매고, 충전이 되지 않는 와이파이 도시락 문제 해결. 이제 하루 하고도 세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다니...


9시가 훌쩍 지났는데도 아이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 커튼을 젖히고 잠을 깨웠다. 호텔 조식 식당에 10시까지는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호텔 조식을 포기할 수 없지!


일어나서 여기저기 움직이더니 "엄마 엉덩이 좀 봐줘, 많이 아파."라고 했다. 사실 여행 오기 전부터도 아프다고 하긴 했으나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지고 말았기에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전날 비행기 안에서도, 타이베이 도심 간 전철 안에서도 의자에 앉으면 아프다고는 했었다.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엉덩이를 보니 빨간 종기가 뽈록 솟아 있었다. 지름이 약 1센티미터는 될까? 작지 않은 종기가 딱딱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직 끝이 노랗게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긴장이 확 되면서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배가 고픈 상태라 일단 밥부터 먹기고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견과류와 훈제 연어를 얹은 신선한 샐러드, 빵과 치즈, 달콤한 과일, 커피 한 잔으로 힐링하는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종기 해결 방법 찾기에 돌입했다. 병원을 가더라도 여행자 보험을 들어놨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심해지지 않을 종기인데 병원까지 가는 건 오버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 보니 어릴 적에는 눈다래끼도 가끔 나고 콧등에 뾰루지, 등에 종기도 생기곤 했다. 고약도 붙이고, 엄마가 고름을 짜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는 눈다래끼로 눈이 부은 사진이 떡 박혀 있다. 요즘엔 손 씻기 같은 개인위생을 강조해서인지 이런 부스럼을 못 본 지 오래다. 딸아이도 눈다래끼 한 번 올라오지 않더니 하필 대만에서, 것도 7일 여행 중 이제 겨우 둘째 날인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병원부터 가지 말고, 일단 무슨 약을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드럭스토어부터 가보기로 했다. 오전에 대만의 교보문고라 할 수 있는 대만 대표 서점인 '청핀서점'에 가기로 했기에 그 근처에 드럭스토어가 있는지 확인했다. 걱정병, 조바심병이 또 도진 나를 보고는 아이가 "엄마, 여기 앉아봐"라고 하더니 "엄마, 별 일 아닐 거야. 일단 오늘 약 발라 보고 내일 심해지면 그때 병원 가도 늦지 않잖아. 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다. 엄마의 조바심을 눈치채고 진정시켜 주는 말을 하다니! 진정하고 생각해 보니 대만에 오기 전에도 아프다고 말을 했는데, 해외에 나오니 책임감과 걱정이 더 커져서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구나 싶었다. 아이의 말들 듣고 또 조바심 병이 난 나를 살짝 반성하고 "와, 네가 벌써 이렇게 커서 엄마를 위로하는 거야?"라고 했더니 아이가 "다 나 살자고 하는 거지. 생존을 위해서. 크크크"라고 농담인 것처럼 말한다. 농담을 가장한 진심이었을 것이다.

마법의 항생 연고

첫 번째 방문한 드럭스토어에서는 약 구입에 실패했다. 무슨 법 위반으로 약 판매 중단 조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드럭스토어에서 약사에게 미리 찍은 엉덩이 종기 사진을 보여 주며 어떤 약을 살 수 있냐고 물어보니 항생 연고를 주었다. 가격은 180위엔(약 7,800원).


구입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연고를 발랐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종기가 호!전! 되었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종기가 극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데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마법의 항생 연고야 뭐야?" 외치며 마오콩 케이블카 타고 트래킹 하러 출발했다.


이 연고는 두 번 정도 바르고 더 바르지 않았다. 약을 발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종기가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항생제 복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서 항생제가 잘 듣나?'라고 근거 없는 공을  나에게로 돌려본다. 안 되면 남 탓 하는 것은 잘 모르겠으나 잘 되면 내 탓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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