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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Mar 19. 2023

우당탕탕 대만여행8-돌발상황과 "그럴 수도 있지" 마법

열여섯 살 사춘기 딸과 다시 대만 여행

2월 22일 타이베이 여행 둘째 날 아침,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아침 여섯 시 기상이 오랜 습관이다. 전날 아무리 피곤해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정주행 하느라 새벽 세 시에 잠을 자도 여섯 시면 어김없이 잠을 깨우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아직 해뜨기 전 호텔 커튼을 젖히고 길 건너 이미 불 밝힌 조식식당 간판과 한두 대씩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자 대만인 것이 실감 났다. 대만의 교보문고인 '청핀서점'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도 하고, 어느 대만식 샤부샤부 식당의 평이 좋은 지도 검색하면서 여행 준비를 했다. "오전 일정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침대에 누워 어제 듣지 못한 매불쇼나 볼까?" 하며 침대로 향했다. 눕기 직전에 충전 중인 와이파이 공유기를 확인했는데, 헉! 충전기가 꺼져 있었다. 방전이 된 것이다. 


"이게 머선 일이고!"를 외치며 다른 콘센트에 꽂아도 보고 다른 충전기로도 해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고객센터와의 상담 끝에 "송산 공항에서 교환해 주겠다.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라는 대답을 듣고 청핀서점을 가기 전에 예정에 없던 송산공항 먼저 가게 되었다. 


얼핏 생각하면 예정에 없던 일정 하나 추가된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맞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발표나 행사 혹은 여행 전날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이러한 괴로움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글로 적기 시작하면서 해결되었다. 예상 시나리오나 여행 준비물 등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기록해 놓았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글로 쓰면 떠다니는 생각들이 정리도 더 잘 될 뿐만 아니라 생각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렇게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돌발적인 상황은 언제나 발생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예상했던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그 탓을 '준비가 부족했음' '돌발적인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음'이라고나 자신에게 돌렸다는 데 있었다. 이렇게 원인을 나에게로 돌리자 점차 새로운 일은 피하게 되고 타인과 협력하는 일이 아닌 혼자 하는 일을 찾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지" "어차피 그렇게 된 거 그냥 넘어가" 등의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예전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를 키우면서 터득한 '도'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가. 특히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더 이상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는 마법 같은 주문이다. 

전철 안에서 보이는 공항 활주로. 

예정에 없던 송산공항 방문이 결정되었을 때 상담직원에게 "여행객에게 있어서 이런 돌발 상황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라고 소심하게 항의했지만, 이는 혹시 뭐라도 하나 챙겨주나 싶어서 툭 던져본 말이었지 진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게 들리게 된 송산공항. 덕분에 타이베이 도시 안에 있는 송산공항과 전철에서 가까이 보이는 공항 활주로를 눈으로 보게 되었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조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대만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 그 일까지가 여행이다. "그럴 수도 있지!"가 나의 즐거운 여행을 만드는 주문이다. 그리고 중년이 된 나의 삶을 좀 더 즐겁게 만드는 주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침에 옷부터 입은 후 늦었다며 후다닥 책가방을 싸는, 친구들과 만나는 장소를 집에서 나가면서 카톡으로 정하는, 옷장에 입은 옷이 그득그득 쌓이는 딸의 모습은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 주문이 아직 통하지 않는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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