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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09. 2023

우당탕탕 대만여행 9 -오늘은 딱 훠궈 먹는 날!

열여섯 살 사춘기 딸과 다시 대만 여행

나는 대만에서는 마라훠궈를 먹지 않는다. 마라훠궈는 중국 쓰촨(四川) 지역이 본고장인 얼얼하고(마 麻) 매운(라 辣) 샤부샤부다. 대만을 포함한 중국 남부지역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얼얼한 맛이 사라진 것처럼 대만의 마라훠궈도 현지화가 되었다. 사천의 맛이 아니다. 사천의 맛으로 먹지 못할 바에야 마라훠궈는 우리나라에서 먹고 대만에서는 대만의 훠궈를 즐기기로 했다. 


여행 둘째 날 아침, 점심으로 훠궈를 먹고 싶었다. 송산공항에서 와이파이 도시락 기기를 교환한 후 청핀서점 신이점에 갈 예정이었으므로 건물에 어떤 식당이 입점해 있는지 검색했다. 지탕따슈(鷄湯大叔)라는 샤부샤부 식당이 검색되었는데, 별점도 좋고 대만 사람들의 평도 좋았다. 


"좋아, 빠르게 가! 오늘은 너로 정했어!"


지탕(鷄湯)은 닭 육수, 따슈(大叔)는 아저씨 혹은 큰아빠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탕따슈는 '닭육수 아저씨'라는 우리나라로 치면...음...'이모 설렁탕' 같은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자리에 앉았더니 소주잔 크기의 잔 여섯 개를 가져와 식탁 위에 쭉 늘어놓는다. 이게 뭔가 했더니 육수 세 종류를 각자 시음해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는 것이었다. 

각자 세 종류의 육수를 맛보고 원하는 맛으로 선택!


"오호, 이런 시스템 몹시 마음에 드는데?"


미각을 총동원하여 신중하게 음미했다. 역시 나는 한국인! 약간 매콤한 맛이 나는 육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매콤한 육수로 할게요. 아이는 야채 육수로 주세요."라고 하니 메뉴 구석에 있는 QR코드로 접속하여 주문하라고 안내를 한다.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완벽한 선택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주문을 마쳤다. "나는 중국어를 할 줄 아니까 괜찮지만 중국어 못하면 꽤 당황하겠는데?" 싶었다. 


이후 이와 같이 QR코드로 접속을 하여 주문을 하는 식당을 두 번 더 만났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생긴 시스템인 것 같았다. 7일 여행 중에 두 번 만났으니 많은 횟수는 아니지만, 혹 만나더라도 당황할 필요 없다. 주문이 어렵다면 바로 종업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친절하게 도와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실제로 종업원에게 직접 주문을 하는 대만 사람도 여럿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식탁에 설치된 태블릿을 이용해 주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대만에서는 손님이 QR코드로 주문을 하는 방식이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왜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을까?

'태블릿 설치에 비용이 드니 대만의 방식이 실용적이라고 봐야 하나?' 

'우리나라는 대만에 비해 외관을 좀 더 중시하는 문화여서인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나라가 좀 더 고객을 고려했다.'이다. 가게 입장에서는 태블릿을 설치하면 비용이 더 든다. 하지만 손님이 핸드폰을 꺼내 QR코드를 찍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은 수고를 하지 않도록 진화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불편을 참지 않는다. 별명이 투덜이인 내가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며  "아, 귀찮아."라고 투덜거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딱 여기에서 대만의 쓰레기 수거 방법이 떠올랐다. 대만은 일정 시간에 쓰레기차가 음악을 울리며 지나가면 개인이 쓰레기를 가져 나와 쓰레기차에 싣는다. 길가에 나와 쓰레기차를 기다리거나 음악 소리가 들리면 달려 나온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다. "대만 사람들은 이 불편을 감수한다는 말이야?"라고  반문했지만 그들은 나의 놀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만에 'WTO 자매회'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만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출연하여 대만과 자국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한 패널이 "대만에 여행 온 친구들이 쓰레기 수거 장면을 보고 신기해했어요. 일부러 기다렸다니까요. 사진도 많이 찍었어요."라고 말하자 사회자가 "이게 그렇게 신기하다고요?"라며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대만 사람들은 소비자로서 작은 불편을 감수하는데 익숙해 있다. 



다시 훠궈 이야기로 돌아오자. 주문을 마치면 종업원이 1인용 냄비에 육수를 붓고 주문한 재료를 식탁 위에 세팅을 한다. 슬슬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느낌이다. 찍어 먹을 소스는 셀프 제조다. 한쪽에 마련된 소스 코너에 가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소스를 제조하면 된다. 나는 사차장(沙茶醬)과 쯔마장(참깨소스 芝麻酱)를 가장 좋아한다. 어떤 소스를 선택하든지 마늘과 파를 팍팍 넣는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각각 따로 떠서 자리에서 이것저것 섞어가며 시도해 봐도 좋다. 고기를 새로운 소스에 찍어 입으로 넣기 직전이 가장 설렌다. 영화관에서 상영 직전 암전되었을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역시 배 속은 뜨뜻하고 볼 일이다. 여행지에서의 긴장감으로 뻣뻣했던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다. 타이베이는 겨울철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 잦다. 우중충하고 냉랭한 날에는 훠궈가 딱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혼자 훠궈를 즐기는 사람들도 꽤 눈에 띈다. 더운 날에는 이열치열! 에어컨 바람에 시달린 몸에는 훠궈가 명약이다. 다시 말하면 일 년 내내 훠궈는 사랑이다


배가 부르니 이제 당을 보충할 차례. 지하 1층에 있는 밀크티 가게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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