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을 시작한 지 3주가 되었다. 나는 두 개 반의 학생에게 '학습도구' 한국어를 지도한다. '학습도구'란 일상회화가 아닌 교과 학습 수행을 위한 한국어다. A반은 5,6학년이고, B반은 3,4학년이며 각각 10명과 11명의 학생들이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에서 왔으며 모두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그중 3,4 학년인 B반의 아이들 때문에 지난 2주간 무척 괴로웠다.
A반에는 여학생이 9명, 남학생이 2명 있다. 반면 B반은 여학생은 단 4명뿐이고 나머지 7명이 남학생이다. 남자아이들이 많으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지는 자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설령 수업에 관심이 없어도 혼자 조용히 딴짓을 한다. 몰래 핸드폰을 보거나 무선 이어폰을 귀에 끼고 음악을 듣는 정도다. 혼낼 때 말로 차분히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핸드폰을 몰래 보고 있는 아이와 음악을 듣는 아이를 앞으로 불렀다.
"여기 앞에 한 번 서 보세요. 교실이 다 보이죠? 여러분이 몰래 핸드폰 보고 있는 거 다 보이지요?"
앞에 서서 확인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몇 명이 더 나와 진짜로 한눈에 다 들어오는지 차례로 확인했다.
"다 보이니까 몰래 핸드폰 보지 마세요. 음악도 듣지 마세요. 나는 여러분 혼내는 거 싫어요."
이 순간 아이들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 날은 수업에 꽤 집중했다. 물론 그 다음 날에는 다시 몰래 보긴 하지만. 어쨌든 여자 아이들은 이렇게 말로 훈육이 가능하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일단 입을 쫙 벌린 가방을 메고 들어온다. 어떤 아이는 칠판으로 직행해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어떤 아이는 한쪽 벽에 설치된 교구를 놓는 책장에 들어가 누워 있다. 공교롭게도 들어가 눕기에 딱 좋은 높이다. 어떤 수업 준비를 해도 소용없었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이 나를 보고 있게 만들기가 참 힘들었다. 5,6학년에 비해 한국말도 아직 서툴러서 말의 내용으로 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나운 억양과 큰 목소리로 "말하지 마!" "조용히 해"라고 외쳐야 했다. 수업이 끝나면 영혼이 쑤욱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다.
특히 그 녀석, 첫 주에 반항의 눈빛을 쏘던 D군! 수업 시간에도 주변 친구들과 말싸움뿐만 아니라 주먹싸움까지 했다. 옆 자리 친구가 실수로 필통이라도 떨어트리면 그 친구의 필통을 집어던져 발로 꾹꾹 밟았다. 한 시간에 주먹싸움을 네 번 한 날도 있었다. B반에서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하나, D군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2주가 끝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국어 교실 담당 선생님과 상담도 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 걸까요? 조언 부탁드려요. 수업 준비를 어떻게 하면 효과가 있을까요?"
"선생님의 수업 준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아이들이 여자 선생님을 조금 만만하게 보는 것도 있지요. 진도 안 나가도 돼요. 아이들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어떻게 아이들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초등학생 공포증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닌가? 사직서를 낼까? 아니야,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지. 그래도 목덜미 잡고 쓰러지는 것보다는 낫지. 한 달만 버텨보자. 일백팔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곰곰이 생각하다 딸아이를 키울 때의 다짐이 생각났다. 아이를 키울 때 무슨 큰 철학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는 지키려고 노력했다. 어지간한 건 허용하려고 노력했다. 안 된다는 말을 많은 가능한 하지 않되 한 번 안 된다고 말한 것은 끝까지 안되는 거였다. 또 하나는 혼낼 때도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소리를 지르는 순간 그것이 기준이 된다. 엄마가 소리를 지를 때까지는 해도 된다는 기준 말이다.
작전을 바꿨다. 학습지처럼 개별 학습을 많이 할 수 있게 활동지를 만들었다. 답을 채워 넣을 때마다 빨간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줬다. 그러면서 "오, 글씨를 예쁘게 쓰는구나!" "오, 수학을 잘하는구나!" 칭찬하면서 어깨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특히 D군에게는 눈높이를 맞춰서 지도하고 잘 했을 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머리도 한 번씩 쓰다듬었다. 수업하기 전에 D군이 책장에 들어가면 모른척하다가 쓱 자리에 앉으면 눈을 맞추고 씩 웃으면 엄지 척을 했다. 아이들이 다 같이 교실을 돌아다니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한 두 명씩 일어날 때마다 팔을 잡아 앉히며 높지 않은 엄한 목소리로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개별적으로 훈육했다.
그러자 조금, 아주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작은 변화지만 이틀 만의 변화라 기대가 크다(나의 착각이 아니어야 할텐데...). 먼저 D군의 눈에서 반항의 기운이 적어졌다. 여전히 "자리에 앉으세요!" "말하지 마세요!" 빡! 짧고 크게 외쳐야 하지만 슬금슬금 자리에 앉는다. 예전에는 앉으라는 말에 무반응이었단 뜻이다.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시간도 조금 길어졌다. 3주 차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오늘은 발 좀 뻗고 자겠군." 싶었다. 그러다...
그러다 D군이 3주째 같은 옷을 입고 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안쪽에 기모가 있는 겨울용 티셔츠라 더워서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는 것이다. 살짝 냄새도 나서 한국어 담당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혹시 냄새 때문에 부당한 시선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서였다.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런 아이가 많다고 답을 하셨다. 학교 근처의 월세 20만 원 정도의 원룸에 한 가족이 사는 가정이 많다고도 했다. 그들의 사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마음이 아팠다. 또다시 잠자리에 누워 쉽게 잠들지 못하기 시작했다. D군 생각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어학연수를 하던 당시에 "나중에 나의 아이는 절대 혼자 조기 유학을 보내지 않겠다." 생각한 적이 있다. 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 생활은 외롭고 힘들었다. 나도 이럴진대 아이들의 불안감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D군을 포함한 나의 학생들도 그러할 것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손짓 발짓 다 써서 표현하려 애쓴다. 선생님들은 무슨 말을 하려나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인내심이 강하지 않다. 그래서 그 나라의 언어를 잘하지 않으면 현지인과 친구가 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늘 외로운 이유 중 하나다.
2주가 지났을 때에는 그저 나를 힘들게 하는 말썽꾸러기 녀석들로만 보였었는데 3주가 지난 지금은 귀여워 보인다. 문제가 안 풀린다며 씩씩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발로 쾅 찼던 R군. 눈높이를 맞추고 낮고 엄한 목소리로 "문제는 틀려도 괜찮아요. 그런데 발로 쾅 차는건 안돼요. 알겠어요?"라고 훈육했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업이 끝나자 그들 문화의 인사법으로 포옹을 하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반에서 가장 키가 작은 R군이 더 자그만해 보였다. 첫주에는 꼬마 몬스터같던 아이들이 더 어리고 작아 보인다. 그래도 안쓰러운 생각은 마음에만 담아둘 뿐 안쓰러움을 담은 눈으로 아이들을 보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