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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Mar 16. 2023

한국어 교사로서 첫 수업을 마치고...와!헉!어쩌나!

오전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밥을 그득 먹고 그대로 누웠다. 밥 먹고 누우면 소 된다고 했는데...

이틀 뒤에 있는 수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벌써부터 머리가 복잡하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인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한국어'는 크게 '의사소통'과 '학습도구'로 나뉜다. 의사소통은 일상 회화를, '학습도구'는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와 문장을 학습하기 위한 교재다. 나는 올해 5, 6학년 10, 3, 4학년 10명의 학생들과 '학습도구' 수업을 하게 되었다.


1,2교시에 5, 6학년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뿌듯했다. '올 한 해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겠구나.' '이 정도 수준이면 프로젝트 수업을 해도 되겠는걸?'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3,4교시에 있는 3, 4학년 수업을 시작했는데, 이런! 몹시 당황하여 허둥거리고 말았다. 

이렇게 주사위도 직접 만들었건만...

일단, 1,2교시에 성공적으로 운영한 주사위 게임을 사용한 자기소개 활동을 시작도 못했다.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등의 간단한 질문인데, 3, 4학년 아이들은 이 질문을 이해를 못 했다. 심지어 읽기도 잘 안 되는 학생도 있어서 이 게임은 재빨리 포기하고 임기응변으로 자기소개 질문 중에 몇 가지를 골랐다. 


첫 번째 질문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이었다. 아이들이 질문을 이해하기는 했으나 대답이 문제였다. 빨간색, 노란색, 검은색과 같은 색깔을 한국어로 알지 못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색깔 스티커! '빨간색' 스티커를 칠판에 붙이고 '빨간색' 단어를 가르치고 자신의 몸에서 빨간색을 찾는 활동을 했다. 이렇게 노란색, 검은색, 초록색을 찾았다. 역시 활동을 하니 흥미를 보였다. 재미있는 수업이 되겠다 싶었지만 이 기대는 다음 질문에서 여지없이 깨졌다.


다음으로는 "무슨 음식을 좋아해요?"라는 질문을 했다. 하지만 잘못된 질문이었다. 경험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한국음식 이름을 몰랐다. 좋아하는 음식은 전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음식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이름을 나는 따라 하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아 나에게 보여줬다. 한국어 수업이 될 리 없었다. 


서둘러 좋아하는 음식 말하기 수업을 끝냈다. 이쯤 되니 아이들이 얼마나 아는지 테스트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몇 시에 자요?"를 물었다. "10시 30분에 자요"라고 말을 하려면 하나, 둘, 셋, 넷의 숫자와, 십, 이십, 삼십의 한자어 숫자를 모두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말을 하는 아이가 없었다.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수업을 마쳤다.


이제라도 한국어 수준을 파악했으니 그게 맞게 수업을 준비하면 된다. 그런데 개선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요소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여섯 명의 개구쟁이 남학생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짓궂은 두 명! 나는 여자 아이만 키워봐서 개구쟁이 남자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데 어쩌나 싶다. (두 번째 수업 시간에 대장 개구쟁이 녀석에게 "글씨를 아주 잘 쓰는구나!"라고 통역 역할을 하는 아이를 시켜 칭찬을 했더니 수업 시간 끝날 때까지 따라 쓰기를 열심히 하는 기적적인 모습을 보여 주어 깜짝 놀랐다. 역시 칭찬의 힘은 대단하다.)


두 번째는 대답을 할 때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에서 한국어 실력이 조금 나은 친구에게 러시아어로 대답을 하면 그 친구가 한국어로 나아에 대신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통역의 역할을 하는 친구는 대단히 적극적인 성격으로 이리저리 다니며 통역에 열심이다. 통역가 친구는 시간이 흐르면 실력이 쑥쑥 늘 테지만 다른 친구들의 한국어 실력 향상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꽤 오래된 습관인 듯하여 고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5, 6학년 학생들에게는 좀 더 타이트한 수업으로 한국어 수준을 끌어올려야겠다. '학습 도구' 교재의 목적에 충실하게 수업을 한다면 교실 수업에서도 발전이 있겠지. 그들이 이룰 성취에 기대가 크다. 3, 4학년은 어쩌나... 일단 내일은 교재에 나오는 실 전화기를 만들어야겠다. 실전화기를 만드는 방법에 나오는 어휘와 문장으로 수업을 해야겠다. 그렇게 만든 실전화기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발표하기까지. 계획한 대로 수업이 잘 되려나 걱정이다. 

러시아어에 도전!!!!

(두 번째 수업을 마쳤다. 5, 6학년은 첫 시간보다 훨씬 수업이 잘 되었다. 90분을 꽉 채워서 알차게 수업해서 지금도 뿌듯하다. 3, 4학년은 실전화기 만들기를 하고 동영상을 통해 '소리를 눈으로 관찰한다.'는 개념 이해에 접근을 조금은 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초등 3, 4학년을 지도하려면 약간의 러시아어가 필요할 것 같다. 러시아어를 공부하려고 교재를 구입한 후 5만 원 결제하고 강의 1강을 들었다. 러시아어 알파벳을 익혔다. 올해 안에 수업에 도움이 될만큼 익힐 수 있을까 싶지만 일단 시작은 하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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