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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02. 2022

안성탕면의 파워, 대만 일상에 스민 한국

열세 살 딸과의 대만 한달 여행

  대만 사람들이 ‘안성’을 안다. 어찌 된 일일까?

  

나는 ‘안성’이라는 도시에 산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안성맞춤’이라는 단어는 알지만, 정작 안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안성에 산다고 하면, “안성이 어딨지?”라고 되묻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면 “평택 옆, 천안 위에 있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대만 사람들은 ‘안성’을 안다. 어찌 된 일일까? 가끔 한국 어디에 거주하는지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서울에 살아요?”라고 묻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서울에 살아요?”

  “아니요, ‘안성’이라는 소도시에 살아요. 서울에서 차로 약 1시간 걸리는 곳에 있어요.”

  “안성요? 나 안성 알아요.”

  “안성을 안다고요?


  서울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는 말을 할 때는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므로 시골은 아니다.’라는 말을 은연중에 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성’을 알고 있다니, 깜짝 놀랄 수밖에ㅈ없다. ‘안성맞춤’이라는 한국어를 알 턱이 없는 평범한 대만 사람이 ‘안성’을 안다니.


 이유는 라면에 있었다. 바로 ‘안성탕면’이다. 아래 사진은 타이중에 있는 한 마트의 라면 코너를 찍은 것이다. 사진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진열대 한 면이 한국 라면으로 꽉 차있다. 한국에서 직수입한 듯 제품명이 한글 그대로 쓰여 있는 라면도 있고, 중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도 있다. 한국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대만에서만 출시한 것인지 처음 보는 라면도 있다. 아래에서 두 번째 칸에 중국어로 쓰인 ‘안성탕면’이 보인다.              

타이중 한 마트 내 한국 라면 코너

 이 마트에서만 특별히 한국 라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대형마트부터 동네 편의점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쉽게 한국 라면을 찾을 수 있다. 백화점 지하에 위치한 마트에서 새로 출시된 한국 라면 제품을 잔뜩 쌓아 놓고 판촉행사 하는 장면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잘 살고 볼일이다. 어학연수를 하던 2000년도 무렵의 대만 사람들은 한국에 관심이 없거나 한국을 좋아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여자 기숙사 옆방에 있던 그 여자 아이는 퉁명한 목소리로 “한국? 한국이 어디에 있어?”라고 물었었다. 대학생씩이나 되어서 대만 바로 위에 있는 한국의 위치를 모를 리 없지만 내 빈정을 상하게 하는 데는 분명 성공했다. 그 의도가 아니라면 진짜 무관심이다.


반면, 그 당시 대만사람들은 일본은 정말 사랑했다. 한 학기를 마치고 기숙사를 떠나기 전 마지막 밤 룸메이트들이 간단히 방에서 야식을 먹으며 조촐한 파티를 하자고 하더니 그들과 일면식도 없는, 나와도 그다지 친하지 않은 아래층에 사는 일본 친구 두 명을 부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 학기 내내 나에게는 관심 한 번 보이지 않아서 내심 서운하던 차에 이러한 요구를 해서 더 서운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1992년 8월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원만하지 못한 방식으로 단교를 했다. 우리나라로서는 필요한 중국과의 수교였지만, 3일 전에야 대만에 단교를 통보 했고 대사관을 바로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한성화교소학교에서 눈물 속에 거행된 국기 하강식을 기억하는 대만인들은 지금도 한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 한다.   

    

이랬던 대만이었는데 한국 제품이 일상생활 속에 이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 현장을 보니 조금은 서럽기도 했던 옛 기억이 떠오르면서 평소 과도한 ‘국뽕’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목이 힘이 들어간다.   

마트에서 구입한 김치, 안성탕면, 비타민C

어느 날 오후 ‘오늘을 신선한 야채가 먹고 싶네. 슬슬 장보러 가볼까?’ 생각하고 마트에 가면 이정도 한국 제품 구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래 사진은 타이중 동해대학교 서쪽에 위치한 ‘똥하이 비에슈(東海别墅, 동해별장)’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대학촌에 있는 카레를 주로 판매하는 식당이다. 이곳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결코 아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은 규동인데, 김치 규동을 10위엔(약 450)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한글로 ‘김치’라고 표기하였는데, 이것을 보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김치를 곁들인 규동을 판매하고 있다.

라면, 음식뿐만이 아니다. 2008년이었나? 그 무렵부터 ‘한국 스타일 가방’, ‘한국스타일 옷’이라고 광고를 하고 있는 가게가 보이더니 지금은 '그런가보다' 할 정도로 아주 쉽게 눈에 띈다. 딸아이와 지하철 플랫폼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학생이 다가와 반갑게 말을 걸기도 한다.


비록 20년 전에는 서러웠지만 지금은 은근히 뿌듯하다. 하지만 지나친 우월감은 오히려 열등감의 반증이라는 생각에 ‘국뽕’을 애써 누른다. 그러면서도 “안성 탕면 만드는 농심 공장이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어요.”라는 말을 기어이 뱉고야 만다. 돌아서서 ‘농심이랑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이런 바보 같은 말을 했던가’ 후회하면서도 씨익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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