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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Apr 04. 2022

딸아이가 밤마다 운다, 집에 가고 싶다고.

열세 살 딸과의 대만 한 달 여행

<딸아이가 밤마다 운다, 집에 가고 싶다고. 그래서 비싼 양념갈비 먹였다.>


딸아이가 대만 여행 3일째부터 울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그것도 엉엉, 눈이 퉁퉁 부어 다음 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울었다. 


중국 문화와 중국 음식에 익숙해지도록 그동안 홍콩, 마카오, 북경, 운남을 아이와 여행했다. 대만도 본 여행 전에 두 번 다녀왔었다. 온 가족(남편, 나, 딸)이 가오슝에 다녀왔었고, 1년 전에는 타이베이를 7일 여행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집에 가고 싶다고 운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다르다. 왜 그럴까? 숙소 근처에 순두부찌개를 파는 한식당이 있어, 일단 먹였다. 여행 3일 만에 한국 음식을 먹은 적은 처음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대만에 도착한 첫날에 딸아이는 이렇게 일기를 썼었다.

 입국심사 받고, 짐 찾고 나가서 택시를 탔다. 기사분이랑 엄마랑 중국어로 이야기하는데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하지만 못 알아듣는 중국어 비중이 더 높아서..ㅎㅎ 중국어 학구열이 뿜뿜! 했다. 내일이 너무너무 기대된다. 즐거운 대만 여행을 위하여 이만 자야겠다.  


이랬던 아이가 3일 만에 이런 일기를 쓴다.

오늘은 대만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어제저녁에 펑펑 울었다. 왜냐하면 향수병? 이런 종류가 온 거 같다. 막 그냥 너무 다 슬프고 화나고 눈물이 엄청 나온다. 엄청 슬프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진짜 밤만 되면 너무 서럽고 슬프다. 대만에 와서는 밤이 너무 싫다. 한식이나 친구들은 별로 안 그리운데 아빠랑 집이 너무 그립다. 우리 집 ㅠㅠ 아빠가 혼자 외로이 있는 걸 생각하면 눈물이 막 난다.


타이베이에서의 3일 여행을 마치고, ‘타이중’이라는 도시로 돌아왔다. ‘돌아왔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곳이 20년 전 어학연수를 하면서 약 1년 반 정도 머물렀던 내 젊은 날의 가장 중요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살았던 집에서 불과 3,4미터 떨어진 곳에 숙소를 구하고, 앞으로 남은 25일을 준비하고 있는데, 또 밤마다 운다, 딸아이가. 


그런데, 나는 아이가 저렇게 우는 그 마음이 뭔지 안다. 딸아이는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 이 감정의 정체를 모르지만 나는 안다. 20년 전에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다. 물론 나는 성인이었고, 감정을 풀어낼 사람도 옆에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울지는 않았지만 그 감정이 맞다. 심리적으로 불안하여 지금 돌이켜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행동도 많이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한국 자랑을 많이 하고 다녔는지. 이 순간 또 부끄러워진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찾아갔던(쳐들어 간 쪽에 더 가깝다.) 대만친구 쯔치 기숙사 방. 쯔치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대만 남자아이였는데, 학교 전산실 컴퓨터 보다 쯔치의 컴퓨터 속도가 빨랐다. 매일 찾아가서 한국 신문 기사를 읽곤 했다. 쯔치의 룸메이트들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도와주었던 묵직한 쯔치, 남편과 가오슝 갔을 때 만나서 오랜 얘기를 하며 웃으며 그때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딸아이는 여행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할 것이다. 문밖에서 나는 소리에 예민해지고 머리가 아프다, 어지럽다고 한다. 그 모습이 안쓰럽지만 20년 전 엄마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이번 한 달 대만 여행의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모녀의 다른 시간, 같은 공간 여행. 


딸아이가 언젠가는 이겨낼 것이지만, 극복에 도움을 주고자 한식을 먹기로 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삼원가든’이라는 한식당이 있다. 조금 비싸다는 것만 알고, 얼마인지 정확히 모른 채 양념갈비 2인분과 밥 두 그릇을 주문하고 계산서를 받아드는 순간, 헉 2,101위엔. 한국 화폐로 약 8만 5천 원! 


순간 당황하였으나 김치에 싸서 고기를 허겁지겁, 우걱우걱, 꾸역꾸역 먹는 아이의 모습에 돈 걱정은 싹 사라졌다. "그래, 먹여가면서 데리고 다녀야지!" "돈이 중요한가, 아이 건강이 중요하지!"라고 마음을 다잡고 나도 같이 열심히 먹었다. 

이리 볼이 터져라 잘 먹는데, 어찌 안 사줄수가 있단 말인가.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는 어젯밤의 슬픔은 다 잊은 듯 보였다. 그러나 포만감에서 오는 즐거움은 잠시뿐, 낯에는 무척 즐겁고, 해만 지면 슬퍼지는 현상은 여행의 절반이 지났을 무렵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여행의 끝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비싼 양념갈비를 두 번 더 먹었다. 그리고,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래스. 마침 방영을 시작한 불후의 명작 사랑의 불시착은 내가 쯔치방에서 본 한국 기사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 다시는 외국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올겨울에 대만에 가자고 한다. 여행이 원래 이렇다. 좋은 기억, 힘들었던 기억, 실패의 기억 모두 다 추억이다. 아니, 더 기억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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