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훨 - 뭍으로
글을 끄적이기 시작한 지는 꽤 몇 해가 지났다. 처음엔 그저 학교 월간지에 나의 글이 실리는 것이 좋았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의외라 말했고, 그것이 나는 매력인 냥 생각했다.
절대 수려한 글들은 아니지만, 난 속임수에 능했던 것 같다. 그 시절 그들은 내가 민들레를 죽음으로 옮겨 적어도 퍽 어떤 신념과 철학에서 나오는 줄 착각했다. 사실은 그저, 우울, 어지러운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들킬까 봐 , 두려움에 하루도 밤을 깊게 맞이한 적이 없었다. 사실 글은 그렇다. 누구든 소설가를 거짓말쟁이로 보지만, 그렇다면 난 그 누구의 삶도 진실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겨우 한철 보내는 매미의 삶이 여타 사람보다 더 숭고하고 맑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사람인 것에서 싫증을 느끼며 곤충과 벌레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걸음을 할까. 어떤 박자, 속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걸으며 묘한 바람에 자신을 던져 사랑하는지, 꽃이 세상을 덮으면 그 위에 흘러내리는 것이 진정 행복한지. 아니 정작 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지 않았다. 골 싸매지 않고 행동한다. 난 그들의 행동력이 부러웠다. 그때 깨달았다. 아 죽어야 하는구나. 사람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죽는다. 그들이 삶을 말하지만, 모두는 심장이 멈추고, 공연히 자신을 발가 벗기며, 하염없이 죽어가야 한다. 난 그릇된 욕심으로. 죽음을 나의 권리로 만들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급격히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그들보다 빠른 템포와 리듬으로 심장은 부서질 듯 뛰어갔다. 밤의 노래처럼. 새벽녘 햇빛이 깃든 공기가 찌릿한 향기를 뿜으며 주변을 휘감는 것처럼.
심장을 내 손으로 뺄 수 없지 않은가. 마무리는 날카롭다고 하지만 결국 둥근 게 뻗어가는 것은 삶이 아닌가. 초라한 광대의 웃음이 우리에게 아침을 보내게 하는 듯, 나는 마음껏 웃지도 못하며 나의 삶에 침을 뱉고 조각내며 여래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하늘 높이 바람은 떠 있다는 걸 왜 몰라. 내가 저기에 휘말릴 수도 있음을. 저 바람이 민들레 씨를 몰고 와 퍽 불행한 씨앗을 뿌릴 수 있음을 왜 몰라. 가라. 행동은 씨앗이 되어 나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글이라는 꽃으로 피어났다.
나는 나의 끄적임이 세상에서 제일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