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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환 Jun 03. 2021

비가 오면 생각 나는

Ennio Morricone - The Crisis

시가 있습니다. 제 가슴속 깊숙이 별똥별처럼 박혀서,

밤이 되고, 별 대신 비가 내리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삶에서 놓지 못할 사랑스러운 시가 있습니다.


투신 천국           -정끝별-


재벌 3세가 뛰어내렸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출근한 아침

그날 하루 부산에서만 십 대 세 명이 뛰어내렸다는 인터넷 오후 뉴스를 보다가

이런, 한강에 뛰어내렸다는 제자의 부음 전화를 받고

저녁 강변북로를 타고 순천향병원에 문상 간다


동작대교 난간에 안경과 휴대폰을 놓고 뛰어내린 지

나흘이 지나서야 양화대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며

세 달 전 뛰어내린 애인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겼다며

내 손을 놓지 못한 채 잘못 키웠다며 면목없다며

그을린 채 상경한 고흥 어미의 흥건했던 손아귀


학비 벌랴 군대 마치랴 십 년 동안 대학을 서성였던

동아리방에서 맨발로 먹고 자는 날이 다반사였던

졸업 전날 찹쌀 콩떡을 사들고 책거리 인사를 왔던

임시 취업비자로 일본 호주 등지를 떠돌다 귀국해

뭐든 해보겠다며 활짝 웃으며 예비 신고식을 했던


악 소리도 없이 별똥별처럼 뛰어내린 너는

그날그날을 투신하며 살았던 거지?

발끝에 절벽을 매단 채 살았던 너는

투신할 데가 투신한 애인밖에 없었던 거지?


불은 손목을 놓아주지 않던 물먹은 시곗줄과

어둔 강물 어디쯤에서 발을 잃어버린 신발과

새벽 난간 위에 마지막 한숨을 남겼던 너는


뛰어내리는 삶이

뛰어내리는 사랑만이 유일했던 거지?


저는 오늘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습니다.


-여긴 천국-


뛰어내리는 사랑만이 유일했다


채 붙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별똥별 마냥 고꾸라지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속에서

가장자리로 가게 되어있다


아무리 빠르게 떨어져도

탈진하지 않아

쓰러지지 않아


난 그 우주의 원리에 힘입어

너에게로 가는

운석이 되었다


난간이여 여긴 천국

역시 사랑은 삶에서 유일했다


 저는 저 시가 난간이 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난간들, 우리를 붙잡으면서도 놓쳐버리는 그들의 생애에 저는, 떨어지는 빗물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어, 종이 한 장을 들고 어렴풋이 그 위에 얹어 놓았습니다. 그때 빗물의 최선을 다하여 곤두박질치는 삶을 목격하였고, 저는 그것이 사랑으로 보였습니다. 부디 오늘을 사는 난간들 역시 한숨 돌리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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