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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터 양 <After Yang>

※진지함 입덕주의 영화뒷담화

by 지음 허투루



AI를 통한 인간다움에 관한 SF이야기를 언제까지 소비해야 할까? 그런 물음이 든다면 당장에 관련된 모든 콘텐츠에서 손을 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코고나다" 감독의 <에프터 양>은 어쩌면 그런 상투적인 면에서 조금 더 다른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는 특이한 가족구성으로부터 시작한다. 흑인인 엄마 "키라"(조디 터너스미스) 백인인 아빠"제이크"(콜린 패럴) 중국인 입양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 중국인이었지만 테크노 AI 아들이자 미카의 오빠이자 보모이자 가정교사 같은 '양'(저스틴 H. 민) 이 가족구성원만 봐도 어딘가 심상치 않은 역사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건 분명 "제이크"(콜린 패럴)이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양"(저스틴 H. 민)과 깊이 연결된다. 단순히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 뿌리와 정체성 그리고 다문화적인 환경을 지켜주고자 처음엔 구입이라는 상품적 가치로 함께 지내게 된 것이지만 어느새 가정에 녹아드며 가족이라는 끈끈한 유대를 깨닫는다. 계기 되는 것은 "양"(저스틴 H. 민)의 고장 즉, 부재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다. 솔직히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만이 "양"(저스틴 H. 민)을 진짜 가족이라 여기고 있었다. 포기하지 못하는 감정이 엄마 "키라"(조디 터너스미스) 아빠 "제이크"(콜린 패럴)로 번지고 물들인다.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는 이 영화에서 강력한 빌런이 아닐 수 없다. 애초에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가 고집을 부리고 그리워하고 집착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가족이 되고 싶었던 엄마 아빠는 딸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플롯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사랑스러웠기에 차마 저버릴 수 없게 하는 치명적 매력이 이 빌런의 초필살기인 셈이다.

특히 AI는 인간을 동경하거나 인간 되고 싶은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즉, 이들의 가족이 되려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없으나, 지극히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양"(저스틴 H. 민)은 그저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역활을 충실할 뿐인데, 이미 그들의 삶 속에 녹아들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족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톨 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다. 나는 왜 이 문장이 떠올랐을까?

서로 각자 삶 속에서 고민을 떠안고 있지만, 결국 그것이 불행이 아니라 서로 공통점인 것을 분명히 한다. 가족이란 유기체, 기억을 공유하고, 경험을 나누며, 개인이라 특수성을 이해하는 깨달음. 그것이 '우리' 라는 소속됨을 역설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어본다. 굳이 품지 않아도 될 의문이 아닌가 싶다가도, 결국 갈등은 결속으로 이어지고 결속은 다시 갈등을 반복하며 성장한다는 드라마 요소에 놀아난 즐거운 관전 아니었나!

영화의 끝에선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가 "양"(저스틴 H. 민) 보내줄 것 같은 한 단계 성장한 캐리터임을 암시한다. 엄마 "키라"(조디 터너스미스) 아빠 "제이크"(콜린 패럴)은 오히려 처음과 달리 "양"(저스틴 H. 민)을 그리워하는, 처음 딸의 모습과 뒤바뀌어버린 위치. 그 또한 성장임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존재만으로 설명이 가능한 가족과 구성원. 중요한 건 색이나 종족이나 뿌리에 대한 근원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보여주는 듯 따뜻한 온도의 영화.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을 것 같지만, 때론 진지함 따위가 재미가 될 수 있다는 매우 낮은 확률의 가능성에 관한 애착, 소중함에 따로 분리하여 저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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