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뒷담화
영화 『소리도 없이』는 범죄 조직의 하청으로 시체 처리하는 일을 하는 창복(유재명) 태인(유아인)의 이야기다. 시체를 묻는 것이 묘를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리도 없이』 제목의 첫 뉘앙스는 ‘은닉’ '은폐'의 냄새를 은은하게 풍기고 있다.
특히 태인은 말을 할 줄 모르는 건지, 하고 싶은데 안 하는 건지,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건지, 그의 배경! 플롯 밖 숨은 이야기를 유추하고 추측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그건 창복도 마찬가지다. 창복 또한 다리를 저는데, 그의 전사前史 또한 드러난 게 없다 보니,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고~ 평범한 결핍으로 우리 주변 그럴 법한 누군가로 미장센 해버린다.(피동적 느낌이 쏴~)
두 인물이 위태로운 방식으로 생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침묵이 궁금해질 무렵, 그들은 업종은 어느새 유괴범으로 바껴있다.
침묵 또한 언어이다. 단순이 소리가 없어서 침묵이 되지 않으며, 소란이 침묵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언어란 전달이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침묵의 의미가 전달되었다면, 어쩌면 이 영화의 성공을 점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내용을 더 채워 줄 영화적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테지만, ‘소리도 없이’ 말의 의미를 녹여낸, 『소리도 없이』는 한 그루 나무보다 숲 자체를 보존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러닝 타임으로 함축의 미를 유추로써 독려한다.
태인과 창복은 공동점범으로 서로에게 속하고 있다. 그들의 이중적 태도는 서로에게 속한 소속감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창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오늘의 땀방울이 내일의 희망이 된다.’처럼 범죄를 마저 모범적인 모습에 비해 태인은 어딘가 조금 심드렁하다. 해야 하는 건 일단은 해야 하는, 책임의 울타리를 나름의 방식으로 견고하게 쳐놓은. 특히, 동생의 존재로 책임을 시각화한다.
그들의 작업장(범죄현장) 벽에 적힌 ‘오늘의 땀방울이 내일의 희망이 된다.’의 저 땀에 소속된 소소한 일상. 희망은 내일이 아닌 것마냥 여태 뜨지 않고 있으나, 영화의 한낮은 너무나 밝고 뜨거워 보인다. (여름에 개봉하지 않아 왠지 다행!)
그들에게 던져진 유괴 아동은 일상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처치곤란의 아동 또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태인과 창복의 일상으로 들어가 점점 경계를 허문다. 하지만 위태롭기만 한 그 상황을 영화는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으니, 영화는 소리도 없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보여준 태인과 유괴 아동의 태도가 교집합처럼 맞물려 있던 일상의 경계를 또렷하게 구분한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을 떠나서 착한 일과 나쁜 일을 콕, 구분함으로써 생존기술을 내려놓고 아이는 아이로 돌아가고, 그들은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얼마나 멀리 떠내려 왔는지, 실감한 체 되돌아가는 길은 힘겹기만 하다.
영화의 여백에 깨알 낙서 같은 험난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다. 영화는 영화다.라고 사실과 거리를 두고 있을 터인데, 내 세상과 다른 차원의 세계라 단정하고 구분하고 경계할수록 자꾸 밀접해지는~~ 어딘가에는 실제 하며, 언젠가 우리의 일상과 대면할지도 모르는 기시감 따위의 불편~~
그렇게 잘 만들어놓은 영화를 보면, 쓸데없이 왜 또 몰입하고 난리여, 그런 씁쓸함이 남곤 한다.
소리도 없이 그런 감정이 다녀가곤 한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처음에는 다소 소란하였으나, 결말에는 침묵이 되었음을~ (스포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