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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허투루 Nov 13. 2020

내가 죽던 날: …….(말줄임표)

영화호박씨

 # 내가 죽던 날 



 내가 죽던 날은 과거의 자신이 죽은 시점을 현제의 시점에서 거슬러 인지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을 은유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결말을 위해 그 과정을 달려온 영화. 바로 『내가 죽던 날』이다.     


 요 며칠 극장을 찾지 않았다. 딱히 끌리는 영화가 없었다. 집에서 맥주 한 캔의 영화와는 다른 매력적 요소가 없다면 굳이, 극장을 찾는 수고를 자초하지 않는다.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과 『도굴』을 미루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도……. 

 어쨌든 『내가 죽던 날』은 정말 죽었나 살았나 그것이 문제로다~ 같은 원초적 물음을 던지고 응답을 참지 못한 결과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봐야 할 의무를 앞세운 매력, 피곤함으로 밀려드는 조급함을 달래줄 끌림. 허둥지둥하다 어느새 양손에 팝콘과 콜라를 쥐고 객선 맨 끝에 털썩 주저앉아버린…….  

(그래서 사족이 길었군. 괜찮아! 내용은 짧거든.ㅋㅋㅋ)


『내가 죽던 날』『삼진그룹영어토익반』『도둘』포스터  출처 네이버

 현수(김혜수)는 오랜 공백 후 형사로 복귀하기 위해 범죄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세진의 실종을 자살로 종결하라는 임무를 맡는다. 세진의 보호를 담당하던 전직 형사, 연락이 두절된 가족, 세진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마을 주민 ‘순천댁’을 만나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던 '현수'는 세진이 홀로 감내했을 고통과 자신의 트라우마와 겹쳐 보인다. 


 트라우마는 과거를 현제로 불러와 고통스럽게 하는 병리적 현상이다. 현수는 잘 나가던 형사였고, 복귀는 그녀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현제다. 자신의 일상을 지배하는 고통은 자꾸 과거로 돌려보내며 내가 죽던 그 날을 반복하고 있다. 그 현제라는 시점으로 자신의 고통과 닮은 세진이 들어온다. 자신과 같은 고통. 자살이라는 죽음의 형태를 자신에게도 몰아붙이는 것 같은, 아무것도 몰랐던 지난 시간이 자신의 잘못 같은…….  

자책은 매일 밤 악몽이 된다. 
『내가 죽던 날』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는 내가 죽던 과거를 회귀하여 달라진 미래를 암시한다. 그렇다 보니, 세진의 생존 여부를 추측하게 되고, 영화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으로 바뀐다. 세진이 순천댁을 향한 경계와 그 경계를 스스로 넘은 순간. 미스터리란 껍질을 벗고 현수의 휴먼 성장드라마로 향해 내딛는다. 그때부터 나는 관객으로서 현수와 트라우마에 대한 의리! 세진을 향한 연민!. 순천댁의 결정에 관한 공감력을 엔딩 크레디트 앞으로 배웅한다. 

연기, 몰입, 공감은 Good! 그런데 재미는 있었나!?_스포 주의

『내가 죽던 날』스틸컷 출처 네이버

 내가 죽던 날은 그니까 다시 사는 날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그니까 공감이자 결말이다. 다만, 이상하게……,  영화가 되기 전, 시나리오, 텍스트 단계에서 지니고 있던 힘과 호흡이 궁금하다.  

 그니까 오늘은 관객으로는 내가 죽고 독자로 태어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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