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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현 Mar 14. 2021

그만, 만족

헤르만 헤세 - <크눌프>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떤 아름다운 것이 그 모습대로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것도 기쁜 일이겠지. 하지만 그럴 경우 난 그것을 좀더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할걸. 이것은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꼭 오늘 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야. 반대로 연약해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난 그것을 바라보게 되지. 그러면서 난 기쁨만 느끼는 게 아니라 동정심도 함께 느낀다네.” 
“그래서 난 밤에 어디선가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을 제일 좋아해. 파란색과 녹색의 조명탄들이 어둠 속으로 높이 올라가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작은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버리지.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이 금세 다시 사라져버릴 거라는 두려움도 느끼게 돼. 이 두 감정은 서로에게 연결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지.”
- 68p-69p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 나를 망친 원인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았을 때 착각할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건들이 존재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폐인이 되어 갔다.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으로, 앞에 펼쳐진 수많은 길을 모두 걷고자 발을 뻗었다. 끝까지 가본 길은 없었다. 돌아보니 다 같은 길 같았다. 그래서 난 제자리다. 부끄러움이 나를 감쌌다. 이를 감추기 위해 더 큰 가면을 뒤집어썼다. 포기에 핑계들을 달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바란 길 끝은 무엇이었을까. 바라는게 없다며 나를 속였으나, 바라는게 없다면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았어야 한다. 언제나 실망과 좌절을 짊어지고 처음으로 되돌아온 나에게 있어서 바라던 대상이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영원을 원했다. 영혼의 안식을 원했고, 스스로의 만족을 원했다. 수없이 떠돌다 보면 ‘아 이 정도면 되었다.’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가슴 설레는 운명적인 무언가를 손에 쥘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영원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영원함이 아름다울 순 없다고 크눌프는 말한다. 영원함이 아름다울 수 없다면, 아름다움이 영원할 수조차 없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뜨겁게 불타올라 빠르게 식어간다. 내 마음의 안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나온 글귀 “그러다가 해안가에 도착하든 사막에 도착하든 그건 그때 가서 납득하겠죠.”를 보며 ‘아, 이 길 위에 떠돌다가 어느 지점에 다다르든 그곳에 만족하자.’라 다짐했다. 아름다운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지금의 일상에 깊은 의심을 가졌다. 의심 속에서 되돌아본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었다. 여전히 나는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다.

그 때마다 나를 고독으로 밀어 넣었다. 나에게 쾌락은 사치라며 인간관계를 축소시켰고 더욱 냉소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누가 다가오든 선을 그었고 혼자가 편하다며 자신을 속였다. 고독 속에서 홀로 투쟁하는 내 모습만큼은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으므로. 


“크눌프는 모든 사람이 고독 속에서 살고 있다고 얘기했었지만, 나는 내 자신이 그것을 맛볼 거라고는 전혀 믿고 싶지 않았었다. 고독은 쓰라린 것이었다.”
- 90p


‘고독은 쓰라린 것’이다. 나는 길을 잃을 때면 늘 처음으로 되돌아 갔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시작했던 처음으로 돌아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처음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다. 다만 고독 속으로 계속해서 내려갔을 뿐이다. 이제 난 처음으로 돌아가야한다.


크눌프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평생을 떠돌이로 살았던 그는 사랑과 우정마저도 영원하지 않아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우정이 있다고 반문하듯 크눌프를 격하게 환영했다. 과연 영원함이란 정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모든 아름다움이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간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아름다운 대상을 보더라도 그 끝이 아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걸었던 그 길들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하여 그 걸었던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내게 간직되어 크눌프가 여행 중 만난 누군가처럼 나도 모르는 새에 나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원함으로 내 안에 자리잡는다면, 나는 그 길을 포기하는 것이 아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그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그 누구보다 그 길을 치열하게 걷지 않았다 하더라도.


“젊은 시절 그가 느꼈던 기쁨이 마치 먼 산 위에서 타오르는 불길처럼 흐릿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하고, 꿀과 포도주처럼 진하고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그러고는 이른 봄 밤의 따스한 바람과도 같이 나지막한 소리를 울리는 것이었다. 아, 정말이지 그때는 아름다웠다. 기쁨도 아름답고 슬픔도 아름다웠다. 어느 하루라도 빠뜨리기가 무척 아쉬울 만큼!”
- 131p
“전 왜 그것들로부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또 훌륭한 인간도 못 되었을까요?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 말입니다.”
- 133p


만족. 과연 나는 내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당신은 진심으로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만족하며 지낼 수 있는가? 우리는 어찌하여 과거의 영원한 아름다운 날들로부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또 훌륭한 인간도 못 되었을까’?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 말이다. 헤르만 헤세는 <크눌프>를 빌려 이러한 우리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 만족하거라”
- 1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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