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소소하게 챙긴 행복

by 임 씨

3월 16일 나의 생일이다.

생일 전에 형이 밥을 사줬다.

형이 전화 와서 만나자길래 문뜩 겁이 났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형은 만나서 나한테 10만 원 치 고기를 사줬다. 10만 원치라는 가격은 부담이 가진 않았다.

그저 형이 나한테 베풀어줬다는 것만으로 부담이 갔다.

하지만 내 생일이라 생각하니까 축하받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형에게 신난 말투로

'잘 먹었습니다.ㅋㅋ'이 한마디로 퉁쳤다.

우리는 2차로 술집에서 오랜만에 정든 대화를 나누며 옛 기억을 떠올다.


옛날부터 나는 형이랑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받았다.

어디에 영감을 받을 때면 가족끼리 꼭 그 장소를 놀러 갔어야만 했고 체험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건 서서히 잊혀졌다.

잊힌 기억은 다시 작은 술집 모퉁이에 박혀있는 탁자 위에서 다시 떠올라졌다.

'우리가 원래 이렇게 진지한 얘기를 나누었었나?' 나는 처음에 어색했지만 옛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을 되살렸다.

뭔가 편안했다.

예전처럼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었다.


형은 내일 출근을 해야 돼서 마중을 못 나갔지만 못 나가도 괜찮았다.

형이 생일에 같이 있어준 것만으로도 축하받는 느낌이 들었다.


형 자취방에 와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우리가 전에 살던 집이 부산에 있는 모라동이었는데 그곳에 바퀴벌레가 엄청 많았었다고 한다.

형은 어린나이였는데 그때 날아다니던 바퀴벌레가 기억이 난다고 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형 얘기를 듣고 문득 나의 옛날 유년시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유년의 시절을 잊기 싫어 집에 와서 나한테 편지를 썼다.


To. 나에게 쓰는 편지(하)

너도 이걸 보게 되면 왜 읽고 싶은지 알고 싶을 거야, 가끔 마음이 혼란할 때면 찾아서 읽어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생일 겸 처음 써보는 편지인데 뭔가 낯설게 느껴지네..

너도 궁금하지 않니, 우리의 옛날이야기

막상 쓸려고 하니까 많은 기억들이 떠올라.

나도 막상 방탄한 생활을 보낸 건 아니더라. 지금부터 내가 기억 짜내서 적어두고 갈게.

너는 일단 2000년도 3월 16일에 부산에 모라동에서 태어나.(살던 동네가 모라동인데 태어난 곳은 모르겠네) 아주 개구쟁이로 태어나지 얻어야 할 건 꼭 얻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어. 내가 지금도 기억나는 건 장난감

안 사줄 때마다 소리 지르며 때를 썼던 장면이 기억나.

걱정 마 그 성격은 나중에 철들 때 큰 역할을 하니까

가족들 말로는 네가 3살 때 러닝머신에 손을 껴서 크게 다친데. 난 근데 아직도 그게 이해가 안 가 부모님의 부주의라고 생각해.

내가 정확히 기억나기 시작하는 건 5살 때부터야 내가 아침에 눈 뜨고 어린이집을 처음 간 게 생각나.

그때 아마 하루 종일 울어서 선생님들이 애를 좀 먹었을 거야.

나의 우는소리는 꽤 오래갔던 것 같아. 한 달 정도 갔으려나. 정확한 건 1년은 안 갔어 그때 배웠던 동요도 어렴풋이 기억나긴 해 아빠한테 들려줬던 것 같아. 6살 때 나는 백합반으로 학년이 올라가. 나는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 받아 이유는 모르겠어 그때 선생님이 편지카드를 만들어주셨는데 '너는 보석 같은 존재야' 라며 문구를 적어주셨어 20년이 지난 지금도 난 가끔 가슴에 되새기며 살아가 그때 그 백합반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으면 진짜 좋을 텐데.. 그때 선생님이 나 엄청 잘 챙겨주셨거든 선생님이 나랑 친구들 2명 데리고 봤던 영화도 기억나 마다가스카를 재밌게 봤었어.

선생님은 그때 남자친구가 없어도 우리만 있어도 행복했었나 봐. 근데 마냥 행복한 건 아니었어 엄마가 그때부터 보험회사 다니기 시작해서 저녁 5시쯤 유치원에 데리러 오셨거든 엄마가 당시 데리러 올 때 날이 쌀쌀했고 어둡고 공기가 무거웠었어.

7살 때는 아빠가 크리스마스 때 장난감을 사주셨던 게 기억나 이모부도 장난감을 사주셨는데,

지금은 우리 가족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얘기 꺼내긴 싫어.

저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나 봐. 어른들의 거짓된 행동들이.

7살 때는 네가 무궁화 반으로 올라갔다가 다른 유치원으로 이동을 가 좀 비극적이지만 원장이 그쪽 유치원에 우리를 넘겼다고 한 것 같아.

그래도 나름 거기서도 잘 보냈어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지만 말이야. 왕따보단 쌍둥이 남매 두 명한테 괴롭힘을 당했던 거 같아.

근데 가족들한텐 얘기하기 싫었어 그만 찡찡거리고 싶었거든. 그렇게 1년을 보내다가 학예회를 무사히 마치고 초등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 뭔가 벌써부터 어른이 된 느낌이 들었어. 당시 가방이란 존재가 나한테는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졌거든. 지금도 그렇지만 1학년때도 난 은근히 왕따를 당해 괴롭히는 부잣집 도련님도 있었고 당시 담임 선생님이 그걸 발견하고 혼내셨는데 엄마한테도 말했는데 엄마가 별 얘기 안 했던 거 같아. 2학년때도 맞지도 않는 친구들이랑 놀면서 시달리고 살았어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러고 놀았는지 모르겠어. 그러고 나서 초등학교 3,4 학년 때까지 괴롭힘을 받다가 5학년때 이젠 친구들이랑 어울려 지내기 시작해. 친구들이랑 잘 어울려 지낸 탓인지 너는 선생님에게 반장 제의를 받고 반장을 하다가 한 사람 한 사람 얘기 들어주던 너는 아마 반장을 포기하거나 그랬을 거야.

그때 또 엄마한테 한 소리 들어.

그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 많이 사귀고 초등학교 6학년 때도 두루두루 친했던 것 같아 근데 그때도 왕따가 있었어 나한테는 아니지만 다른 친구가 당했었어.

나는 같은 반이면 같은 반 친구끼리 친하게 지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얘네들은 벌써부터 눈이 높아져서 고쳐야 될 점을 말을 안 해주더라.

그래서 나는 그 친구랑 친해지기 시작했지 애가 욱하고 윽박지르는 게 나랑 비슷했지만 때와 장소를 못 가렸어 화나면 무작정 소리 지르고 욕하는 성격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직접 듣고 혼내기까지 했었어.

근데 나도 그 마음이 이해 가긴 가드라 걔도 집 가면 혼자였거든 부모님이 바쁘셔서 부모님이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이 없었어.

나도 아버지가 당시에 금형 쪽으로 자영업을 하시던 때라 집에 2번 올까 말까 하셨거든 엄마는 보험회사를 핑계로 밤마다 술 먹고 외도를 하셨고.

그래서 그 친구의 유머코드와 짜증을 좀 받아주니까 의외로 우리처럼 순수한 구석이 있다는 걸 느꼈어.

근데 우리 반 애들은 같이 노는 나를 이상하게 보드라. 얄미웠나 봐

초등학교 6학년 학예회도 마무리 잘 짓고, 중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 이때는 내가 공부하던 친구들이랑 놀기도 해서 공부에 눈을 뜨나 싶었지만 하필이면 '리그 오브 레전드'가 그때 유행을 해서 눈을 뜨다 말아.

엄마의 외도도 그때 더 심해지고 나는 엄마의 신뢰를 더 잃고 말지.. 엄마에 대한 스트레스는 극에 다하고 말아.

엄마는 새벽에 늦게 들어올 때면 술냄새를 풍기며 나한테 화를 냈어 '안 자고 뭐 해!' 엄마는 외도하는 사람이랑 새벽까지 놀다 집에 들어오고 도시락도 정성스레 싸주고 데이트도 즐겨했거든.

그래도 우리한테 가끔 거짓처럼 밥을 차려주는거 보면 그게 죄책감처럼 느껴지긴 했나봐.

근데 더 막장인건 외도 했던 사람이 내가 보는 앞에서 엄마를 가정폭력범 마냥 때리고,

아빠가 안 계시는 날만 골라서 문 앞에 와서는 맨날 문을 두드리고 했었어. 근데 엄마는 중학교 1학년때도 자주 만나더라 물론 그 사람의 집착과 행패는 더 심해졌었고.

파트 앞에서 맨날 소리 지르고 경찰이나 소방관까지 와서 행패부리던 기억이 나네.

나도 아마 저런 스트레스를 풀려고 학교에선 최대한 익살 부리며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아.

편지를 수정하고 다시 쓰니 글이 길어졌네 다음에 이어서 또 써야 할 것 같아.

다음주에 또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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