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인 겉모습에 감춰둔 나의 모습

목차 13. 나라는 존재를 보듬어주다.

by 임 씨

이대로 가다간 진짜 자살할 것 같아서 상담소를 들렸다.


원래 상담시간은 2시간이었지만

내가 처음 상담을 받은 에는

상담선생님께서는 나의 얘기를 들어주시다 이야기가 끝나질 않아 거의 4시간이라는 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나는 선생님께서 지치지 않으실까 걱정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이런 하소연은 누구나 하는 얘기라고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내 인생 얘기를 들어주시고 이렇게 말해주셨다.


"세상은 사람들을 4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무얼 해도 다 받아주는 착한 사람 25%, 내가 무얼 해도 싫어하는 사람 25%, 뒷통수 치는 사람 25%, 처음에 날 싫어했다가 날 좋아하는 사람 25%"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날 배웅해 주시면서 보낼 때 하셨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현욱 씨는 분명 좋은 아빠가 될 거예요" 이뒤에 좋은 말을 더 해주셨는데 뭔가 내가 살아왔던 인생이 싹 감화 되듯 이때까지 부조리한 것들이 주마등 스치듯이 연결되어 들리지가 않았다.

대구에 있을 땐 사실 가족 간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그걸 잊으려고 일만 했던 거 같다.
하지만 5살 때부터 쭉 돌이켜 보니 나의 결핍이 나를 방치하며 키웠던 가족뿐만 아니란 걸 알았다.

뭐 아무도 안 믿겠지만 난 7살 때부터 반마다 괴롭히던 친구들이 있었다.

뭔가 이때부터 친구라는 개념이 좀 이상하게 박힌 거 같다.

' 날 괴롭혀도 얘네도 외로우니까 날 괴롭히는 거 아닐까' , '나 처럼 외톨이니까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거 아닐까' 싶었다.
놀랍게도 나는 기억력이 매우 매우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지입으로 기억력 좋다고 자부하는 친구들 덕에 내 기억력은 점점 잊혀갔었다.
그리고 이 멍청한 기억력은 나이 먹으니까 상처받은 것도 진짜 추억거리도 다 뒤섞여서 잊어버린 채 그냥 일만 하는 기계가 되도록 만들어졌다.
근데 상담을 받으니 놀랍게도 기억력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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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때부터 쌍둥이 남매로부터 은근히 괴롭힘 당하던 시절
8살 때 연필로 나의 목을 콕콕 찌르던 부잣집 아들내미
9살 때 힘세다며 과시하면서 은근 날 괴롭혔던 친구
10살 땐 뭐.. 맨날 치고받고 싸워서 기억이 안 날 리가 없고
11살 때 식판으로 머리 맞고 반찬 뒤집어 씌운 기억
12살 때 반장 했다가 정치질당해서 짤린기억
13살 때 가정불우한애 도왔다가 은따 당한기억
14살 15살 16살때도 뭐 허세 심한 친구들이 워낙 심했어서..
고1 때 학생이란 신분으로 학교 이름 안더럽힐려고 학교에 자부심 가지며 학교생활 했고
고2 때 뭔지 모를 오해로 부정적이다고 뒤에서 욕은 욕대로 다먹고 공부를 놓아버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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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는 늘 덤덤한척 집에서도 덤덤한척
엄마가 바쁘다는 핑계로 편의점 도시락으로 늘 끼니를 떼워줘도 덤덤한척, 아무렇지 않은척 했다.

집에서도 조차 날 지금도 존중안해주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날 존중안해준다는 느낌이 자연스레 몸에 베겼다.

저친구는 나보다 공부 잘하니까, 쟤는 나보다 축구 잘하니까, 쟤는 나보다 노래 잘하니까.

그저 존중 못받는 느낌이 있어도 배울점이 있으니 그냥 친구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도 인지부조화가 많이 온것 같다.

분명 인지부조화는 주변 친구들한테 배웠는데 말이다.
내친구들은 어릴때 몸과 정신이 불편한 친구들(지적 장애인)을 더럽다며 집단으로 놀려댔다.
그게 고등학교 가서도 이어지길래 인류애 뚝 떨어져서 이 학교는 답이 없는걸 일찍이 알았다.(그래도 나한테 자부심가지며 살았다.)
그저 몸 불편한 친구들은 내가 니보다 뛰어나다는걸 보여주기 위한 과시, 진심이 아니면서도 남들이 보니까 성숙한척 보여주기위함 이였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과장된 가면은 군대를 다녀오니까 그게 더 심해졌다.
본인들이 노력하는 모습은 그저 남들이 보니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였음을 알았다.
본인이 진심으로 그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다.

그러니까 '가짜' 라는거다. 그러니 나를 불쌍하다 대하는 태도도 '그저 남들이 보니까' 그저 자존감 채울려고 하던 짓이란걸 냉정하게 생각하니까 깨달았다.

친구 중 한명이 그랬다 '공부못하면 친구들 없다고'
지금와서 봐도 그게 뭔 개소린가 싶지만 그게 손절의 물증이란거에 감사하다 생각한다.

아마 잘난 머리들로 이런글을 또 분석하고 날 물어 뜯고 할것이다.
그럼 뭐해 내가 좋은 사람인건 변치 않은데.
내가 뭐 눈에 띄게 능력이 좋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예인급으로 잘생긴것도 아니고 명문대 갈만큼 머리가 명석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랑 놀아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오래갈 친구들은 아니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존귀한 존재인걸,
존중받아야될 사람들은 존중 받아야된다는걸


글도 이젠 막 쓰진 않을 것 같다.

타지생활을 거의 4년 가까이 하다보니


수치심 받아온 나라는 존재를 잘 케어 하지 못한것 같다..


지금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도 모습도 받아들이면서 개선하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지긴했다.

그러다 보니 글도 조금 더 잘 써졌다.


공백기간동안 시간을 보내면서 얻은것은

무엇보다 중요한건 하루를 열심히 살아도

하루를 꽉꽉채워 사는것이 마냥 좋은게 좋은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점이 뭔지 개선해야될 점이 뭔지 알아야된다는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걸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좋은 어른이 된어 간다는게 이런 이유여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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