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누적거리만큼 깊어가는 의리애
우리 부부는 자전거 라이딩을 좋아한다. 처음 하이브리드자전거로 시작한 것이 이제 5년이 다되어간다. 요즘은 추워서 자전거를 쉬고 있는데 대신 테니스를 1년내내 한다. 아무튼 운동을 쉬지 않고 하는데 자전거는 테니스보다도 더 정이 많이 가는 운동이다. 자전거를 테니스보다 먼저 시작했기 때문일까.
따듯한 봄날 2인용 자전거를 타는 커플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봄이 되어 나도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바구니가 달린 하얗고 예쁜 자전거말이다. 남편은 그런 자전거를 타기 싫었는지 어느날 집에 있다던 MTB를 가져왔고 난 그 자전거를 타며 거칠게 달렸다. 헬멧과 장갑까지 착용하고 달리는 내모습이 영 어색하고 별로였다. 나답지 못한 모습이어서 그랬던 걸까. '난 예쁜 원피스입고 2인용 자전거를 타고싶었는데…' 나의 로망은 실현되지 못하였고 남편의 로망은 실현되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로드바이크를 사고, 클릿슈즈를 사고, 자전거옷(일명 쫄쫄이)까지 입게 되었다. 고글도 좋은것, 헬멧도 비싼것, 슈즈도 괜찮은 놈, 속도계도 기왕이면 가민(제품이름), 자전거 양말도 좋은놈으로 사다보니 자전거 장비에 들인돈만 헉소리가 난다. 이쯤되어 남편의 명언이 나온다. '운동은 장비빨이다'라는... 그렇게 점점 나의 로망은 멀어져갔고 이제는 꽤 빠른 속도로 로드자전거를 즐기는 아줌마가 되었다.
"국토종주 해서 메달받는게 내 소원이야"그렇다. 남편이 메달을 받고싶어했다. 한마디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싶어했다. 사실 나는 욕심이 없었다. 그깟 메달이 뭐라고 시간쓰고 돈써가며 이길 저길 고생하며 달려야하나 싶었다. 국토종주길을 보니 그 거리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최소 100KM 최대 360KM 거리의 종주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강, 남한강, 금강, 낙동강을 종주해야 국토종주메달을 받을 수 있었는데 우선 거리가 적당한 남한강 종주를 하자며 남편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난 무서웠다. 100KM이상 타본 적도 없었고 새로산 로드자전거에 적응하지도 못했던 때였다. 새로운 길, 새로운 풍경이 무서웠지만 도전했다. 사실 말이 좋아 '도전'이지 남편 손에 끌려갔다. 갈길이 구만리인데 15km타고 쉬고, 또 20km타고 쉬고를 반복했다. 1박2일 일정이었기때문에 빠듯하진 않았지만 오전11시가 넘어 출발했던 탓에 해가 지기 전까지 부지런히 타야했다. 고행길이었다. 너무 덥고 힘들었다. 풍경을 감상하며 달릴 여유는 없었다. 어깨, 허리, 엉덩이 안아픈곳이 없었는데 빨간 인증센터앞에서 도장을 찍고 남긴 사진에는 힘든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몸은 만신창이지만 사무실 책상에서 벗어나 낯선 지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게 좋았다. 남편은 내 뒤에서 노래도 불러주고 힘내라며 수다를 떨어주었다. 그렇게 첫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 시작이 어렵지 나머지 자전거종주길도 술술 완주해나갔고 결국 종주인증메달을 우리집책장에 모셔둘 수 있었다.
때는 뜨거운 햇빛이 작열하던 7월이었다. 우리는 충주 탄금대~문경새재~상주상풍교까지 이어지는 새재자전거길을 달리러 갔다. 이 코스의 가장 유명한 길은 '이화령'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하게 길고 높은 업힐코스인데 걸어올라가는것도 힘든 길을 자전거를 타서 올라가려니 집에서부터 겁이 났던 곳이다. 남편은 절대 '끌바(바이크를 끌고올라감의 줄임말)'를 허용할 수 없다면서 중간중간 쉬어도 되니 무조건 타고 올라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화령은 5km정도의 긴 업힐이다. 나는 그 긴 업힐을 오르며 한가지 생각만 했다. 바로 '시원한 콜라'다. 숨이 턱까지 차는 길을 두 바퀴를 올라가며 구를 때 난 대단한 생각을 할 줄 알았다. 앞으로의 삶을 생각한다던가, 부모님 생각이 난다던가, 내 지난날의 잘못을 후회한다던가 할 줄 알았다. 다 틀렸다. 오로지 하나 생각나는건 콜라였다. 시원한 콜라. 1차원적 욕구를 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콜라를 한 잔 마시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상쾌했다. 이 맛에 올라오는구나 싶었다.
단 1m도 빼놓지 않고 허벅지에 힘줘가며 페달을 밟아 올라왔다. 이 오르막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달려온 모든 길을 요령부리지않고 땅에 나의 바퀴자국을 새겼다. 끌바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성취감이 몰려왔다. 무언가 성취해낸다는 감정에 목말라있던 때였다. 몸의 고통은 행복감과 성취감에 가려졌고 그 날은 꿈 한 번 꾸지않고 깊은 숙면을 취했다.
2017년 8월, 우연히 '다큐3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타이밍이 기가막혔다. 남편이 올해에 꼭 제주도를 자전거로 돌고싶다고 얘기하던 때였다. 이 폭염에 자전거로 제주도를 타고오자니? 단박에 거절했다. 길바닥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런데 마침 '다큐3일'에서는 제주환상자전거길을 자전거로 돌며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왔다. 가장 충격적인 건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뜨거운 6월 햇볕아래 제주의 자전거길을 타고 계시던 모습이었다. 이 모습은 나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충격이었다. 그 방송을 보고 바로 제주도를 가자고 했다. 비행기티켓을 사고 일정을 짰다. 짐을 싸고 9월 2일에 떠났다. 나는 자전거를 타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실감나게 느낀다. 보통은 젊은사람들, 40~50대 아저씨들이 종주길에 많이 보인다. 여자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한번은 70이 넘은 할아버지가 혼자 자전거 종주를 하고 계신걸 보았다. 간단한 격려의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길을 떠났지만 그여운은 길게 남았다. 나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가장 힘들었던 곳만 생각나는 이유'우리의 뇌는 순간순간 발생하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어서 무의미한 기억은 보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별 사건사고없이 달렸던 길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낙동강 완주를 앞두고 당했던 펑크, 구급차까지 달려와 급히 치료받았던 그 길, 무시무시한 언덕길, 가로등하나없이 깜깜했던 칠곡보 근처, 과연 이 길을 기획했던 공무원은 자전거로 한번 타보기나 했을까 싶을 정도로 어이없던 계단길이 생각난다. (자전거종주길에 계단이 왠말인지..) 힘들었던 순간을 이겨냈던 기억으로 오늘 하루하루를 살아내라는 뇌의 똑똑한 가르침인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자전거를 탈 생각이다. 내 다리가 허락하는 한 아흔이 넘은 할머니처럼 열심히 탈 생각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며 건강해졌고 활기차졌다. 남편과 추억도 많이 만들었고 그 추억들 덕분에 울적한 날들에 힘을 얻는다. 결혼하고 전업주부가 되어 몸과 마음이 축 쳐졌던 때가 있었다. 난 남편에게 남한강길을 다시 가고싶다고 했고 남편은 언제든지 가도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그 길을 하루만에 완주했고 전철을 타고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내게 자전거란 탈출구는 정말 소중하다. 나의 팔다리와 얼굴이 까맣게 탄다 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 어차피 피부야 추워지면 다시 돌아오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과 기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라이딩은 우리 부부의 사랑과 의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취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라이딩이건 다른 운동이건 당장 내년 3월부터 시작해보자. 나이, 그건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