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월 Jan 12. 2018

야근하던 날

스물 넷의 치열했던 광고대행사

나의 첫 광고대행사 출근은 어느 비오는 여름의 금요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첫 출근을 하던날 광고대행사 직원이라면 밥먹듯 한다는 야근을 하게 되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분은 누구고 저분은 누구인지 알기 전에 야근의 참맛부터 보게 되었다.

4학년 2학기를 마치고 여름 졸업을 앞두고 있던 샛병아리같은 대학생이었던 나는 참 순수하게도 그 야근을 즐겼던 것 같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나는 광고대행사에 가는것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수능을 보고나서 대학원서를 넣으려면 학과를 정해야했다. 수능점수를 위한 공부만 해왔던 나는 어떤 학과가 있는지, 취업을 잘하려면 어떤 것을 전공으로 해야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막연했다. 아버지는 기술대학을 가라고 조심스레 권유하셨지만 내키지않았다. 그렇게 전공을 고민하며 TV를 보던 어느날, 화려하고 세려된 광고를 보고 저런걸 만드는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4년제 인문학부를 포기하고 광고홍보학과가 있는 경기권의 학교를 선택한 것이 내 19살 인생 가장 중대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4년을 다니며 보고 배우고 할줄 아는건 광고밖에 없었다. 무조건 전공을 살리고 싶었다. 이 일을 하면서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 나중에는 광고주앞에서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해내는 신여성이 되고 싶었다. 광고가 나의 꿈이자 희망이자 나의 삶을 꾸려주는 밥벌이가 되어주길 바랐다. 광고대행사를 합격하고 나의 페이스북에 학교 선배들과 동기들이 축하댓글을 남겨주었다. 뿌듯하고 행복하고 두근거렸다. 첫날부터 시작된 지독한 야근덕분에 그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컴퓨터에 메신저를 설치해 이사람 저사람과 세상살이의 서글픔을 나누었다. 생각보다 많은 동기와 선배들이 메신저에 저녁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메신저에 노란 얼굴이 로그온되어있어 외롭지 않았다. 직장생활의 애환을 겨우 1주일 출근한 새내기가 느꼈다니 지금 생각해도 귀엽기 그지없다.


야근길에 첫눈정도는 봐줘야 프로야근러지 훗



  내가 입사하던 그 회사는 직원이 10명정도 되는 작은 광고대행사였다. 기획팀과 디자인팀이 나뉘어있었고 경리를 봐주시는 분이 한분 계셨다. 마침 회사가 맡고있던 대형 클라이언트의 경쟁PT가 얼마남지않았던 때였고일을 해줄 인턴이 시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금요일에 출근을 시킨건가...다음주 월요일부터 시켜도 될것을...)후에 알게 되었는데 나는 10:1정도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되었다고 했다. 나의 어떤점이 대표님과 부사장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끝끝내 알지는 못했지만 생각보다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계속된 야근, 주말출근에 신입의 패기는 사라지고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날이 7일중 5일에 다다르며 나는 이 직업이 나에게 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생각은 비관적으로 흘러갔다. '이렇게 맨날 회사에만 박혀있으면 언제 연애하고, 언제 결혼하지? 회사사람들 휴가도 못가던데 이렇게 몇년을 어떻게살지? 몇달도 못살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금방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는 비록 인턴이라할지라도 10: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회사에 보답하고 싶었다. 돈보다는 나의 이력서에 한칸을 채워줄 광고대행사에서 일을 했던 경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6개월이라는 인턴기간을 악물고 버텼다.



밤11시에 회사 화장실에서 미생의 장그래가 되어보았다...껄껄.....


입사한지 2주만에 칼퇴라는걸 하던 날에는 친구들과 만나 거하게 술을 마셨다. 매일 늦게 들어가고 새벽같이 나오느라 부모님얼굴도 잘 못보던 때에 친구들과 한잔하고 늦게 들어가는걸 택하는 철없는 딸이라고 생각했지만 친구들과의 만남은 내게 무조건 필요했다. 그렇게 직장인이 된 친구들과 한잔씩 하면서 세상에 대해 한탄도 하고 푸념도 했다. 최근 광고시장의 동향에 대한 토론도 했다. 다들 신입들이라 쥐뿔도 모르던 때인데 참 열심히도 토론을 나누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알코올을 만땅으로 충전하면 사는게 재미없다, 매일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재미없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한탄에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계속 그렇게 굴러간다... 거기서 재미를 찾는게 능력이야' 라고.



경쟁PT에서 탈락하고 난 후 몰려오는 패배감이 사무실의 공기를 짓누르던 날 처음으로 느꼈던 불안감과 좌절감, 광고주에게 시안을 보여준 후 쓴소리를 듣고 오는 그 길에 차장님의 뒷모습에서 나는 무언가 묵직한 인생의 무게를 느꼈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것에 대한 책임감이 보였다. 일을 따지 못함으로 인해 느끼는 가장의 불안함같은 것. 아마 아주 작은 광고대행사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나는 6개월이 지난 12월 말에 그 회사에서 퇴사했다. 필요없는 야근과 목적없는 회의에 질렸던 것 같다. 회사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고 나는 더 튼튼하고 체계적인 회사를 찾고 싶어 미련없이 나왔다. 그 후 그 회사의 사정은 어떤 경로로도 듣지 못했다.



우린 무언가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글쓰기가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일도 그렇다.
때로는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발 뒤로 물러나, 조금은 다른 각도로. 소중한 것일수록.(언어의 온도 中)




맥주 한 캔 하고 쓰러져 자고싶다고 쓰여있던 택시에서



이 직장을 다녔던 기억은 지금 내게 매우 소중한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아마도 지금은 광고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것 아닐까. 다시 그 곳을 갈 용기는 없다. 그렇지만 참 지겹던 그 회사풍경이 지금은 그립다. 회사건물 지하에있던 죽도록 지겨웠던 중국집도 그립고 새벽까지 치열하게 일하던 그 사람들과 내가 그립다. 단골로 부르던 그 콜택시에 타면 왠 아가씨가 이시간에 타냐며 걱정하시던 택시아저씨들과의 수다도 그립다. 먼저 주무시다가 딸내미가 아직 집에 안들어온걸 보고 잠긴 목소리로 어디냐며 물어보시던 할머니의 목소리도 듣고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니의 육아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