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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뼈는 차가웠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by 도냥이

지난주 금요일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평택으로 향했다. 인천에서 가깝지 않은 평택까지 간 이유는 외할아버지 산소를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산소는 십 년도 넘게 그곳에 있었지만 재개발지역 안에 산소가 포함되면서 무덤을 다른 곳으로 이장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나는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것도 봐야 한다는 어머니의 지론에 못 이긴 척 차 앞 조수석에 타 가고 있었다.


산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큰외삼촌과 이장업체에서 나온 두 분이 와 계셨다. 두 분은 우리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할아버지의 무덤을 파고 계셨다. 한 시간 반 가량 묘비 앞을 깊숙이 팠는데 관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앞쪽이 아닌 대각선 쪽에서 관이 발견됐다. 결국 한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관은 모습을 드러냈다.


관의 덮개가 곡괭이에 찍혔다. 드러낸 관 안에는 할아버지가 묻혔던 모습 그대로 뼈들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그분들은 뼈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골라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하얀 빛깔이 도는 나무 함에 차례차례 뼈를 담았다. 그런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보던 찰나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할아버지 뼈를 만져보고 싶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가끔씩 발현되는 나만의 직감이었다.


혹여나 예의에 어긋날까 아버지와 두 분께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맡았다. 뼈를 만지기 위해 파내어 수북이 쌓여있는 흙들을 밟고 뼈가 담겨있는 함으로 다가갔다. 함안에 들어있는 뼈는 검은색이었고 내가 보아 온 다른 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뼈를 만지자 가볍다는 생각과 동시에 예상치 못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단순히 겉으로 느껴지는 차가움이 아닌 속으로 스며드는 차가움이었다. 아마 "시리다"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모시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었고 곧 나는 그 기억을 잊어버렸다. 아마 기억에서 꺼낼 일은 좀처럼 없었을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다음 구절을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KakaoTalk_20190626_000142412.jpg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_18p

그때 내가 본 무덤 안 뼈들은 객체가 아니었다. 그 뼈들은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어머니의 아버지였으며 나의 할아버지였다. 절대로 평범한 객체가 아니었다. 그 묵색 뼈는 분명 할아버지의 것임이 명백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 진실을 맹렬히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언젠간 나 또한 저렇게 되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KakaoTalk_20190626_000142678.jpg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_57p


그동안은 이런 진실을 성공적으로 회피해 왔다. 하지만 뼈를 만질 때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서늘함의 정체를. 그리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모든 것이 명백한 단 하나의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 역시 죽는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그동안 진지하게 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죽음은 사람들의 입과, 소설, 영화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었다. 분명 장례식에도 가고 수없이 많은 죽음을 접했고 지금도 접하고 있지만 그것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힘겹던 시기에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조차 사실은 “그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다”에 가까웠지 그것이 결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알게 된 느낌이다. 지금까지 나는 평생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리고 이런 행위에 저변에는 “나는 안 죽어”라는 마음이 강하게 깔려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전제는 틀렸다. 나는 죽는다. 죽음의 기간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은 분명히 찾아온다. 앞으로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고민을 할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죽음에 다가가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 말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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