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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어려움에 관하여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by 도냥이


그런 문장을 쓰는 건 즐겁지 않았어요. 그건 그 문체가 내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문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봤을 땐 무심코 지나친 문장이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힘들게 느껴지는 요즘 이 글귀는 나에게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싱큐 베이션이라는 독서모임에 소속되고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글을 처음으로 쓰게 됐다.

물론 들어가자마자 이렇게 쓰게 된 것은 아니었고 모임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팀장님과 팀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 결과 그나마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것을 쓸 수 있게 되었다.(물론 아직도 내 글쓰기 실력은 바닥 살짝 위 그 어딘가에 있다.)


내가 처음으로 쓴 글은 아니 낙서는 사실상 암호문에 더 가까웠다. 나만이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읽는 사람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초창기 내 글을 읽은 모임의 K님은 지금 글과 비교해보면 예전 글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고 말하실 정도였다.


KakaoTalk_20190623_200353905.jpg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지만 동전에는 양면이 있는 것처럼 모든 일에는 명암이 존재했다. 나는 하나의 글은 쓰게 되었지만 정작 글쓰기의 자유로움은 잃어버린 것 같다. 글쓰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처음 글을 썼을 땐 나는 속에 있는 감정의 응어리들을 마구잡이로 써재꼈다. 아마 글이라기 보단 그림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내 글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든 순간부터 난 은연중에 글 쓸 때의 자유로움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내 성격 때문었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압박감은 점점 더 커졌고 자연히 내 글에도 영향을 미쳤다.


글은 길어졌지만 그 안에 나는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하지 않았다. 표현은 추상적이었고 글은 피상적 이어 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서서 일하는 노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어떤 것을 만들지만 온전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벨트 위 물건이 그렇듯 말이다.


물론 나는 글을 제대로 써본지도 불과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애송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글을 쓰다 보면 으레 오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이 자꾸 경고신호를 보낸다. 다음 하루키 선생님의 말처럼 말이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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