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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Mar 31. 2024

미룸주의보 발령 후.

바로 전에 '미룸주의보 발령!'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업로드한 바 있다. (미룸주의보 발령! (brunch.co.kr)) 


내용은 간단하다. 아내와 저녁에 방에서 이야기하다가 시간이 내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내가 더 이상 미루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는 글이다.


이번 글은 이런 삶을 선택한 후에 느낀 점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일종의 후기다. 쿠팡에도 구매한 지 일주일 한 달 되는 정도에 후기를 올리는데 그런 글 비슷하다. 구매한 물건이나 먹은 음식에만 후기를 남기기는 아쉬우니깐.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히 만족스럽다. 그동안 미뤄왔던 것들이 대부분 해결됐다. 보험가입이나 병원 예약 등 지난 이 년 동안 해야지 하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짧으면 하루 길면 일주일 사이에 해결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한 소재를 붙잡고 일주일 동안 싸매고 있었던 적이 많았는데 지금은 빠르면 이틀이나 늦어도 삼사일 안에 글 하나는 발행한다.

   

심리적으로도 좋다. 그동안 뭔가에 안주하고 멈춰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다 보니 몸은 좀 피곤해도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고양감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장점만 있는 물건은 없듯이 이런 삶도 마찬가지다. 우선 몸이 힘들다. 전에 했던 것에 비해서 두세 배가 넘는 일들을 처리해야 돼서 그렇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자꾸만 는다. 


이건 미뤄뒀던 게 많은 초창기여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처리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많은 해야 할 것들을 나를 맞이하는 상황은 당혹스럽긴 하다. 하지만 이런 점은 체계나 우선순위를 정하는 걸 어려워하는 내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계발 서적에서 항상 나오는 말 중에 하나인 우선순위대로 처리하라의 반대 모습이 나다. 아마 우선순위를 정해서 처리하면 이 효과가 더욱 커질 것 같다. 그럼에도 전과 비교해 볼 때 이런 삶을 사는 게 나에겐 더 만족스럽다. 뭔가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내게 주는 효능감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론 내가 이런 삶을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건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는 점이 크다. 미루지 않는 것을 결심하고 가장 크게 느낀 점 중 하나는 우리나라 정말 빠르다는 점이다. 


물건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후엔 쿠팡 새벽배송으로 구매하면 다음날 현관문에 그 물건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북박스라는 시스템을 이용하려고 도서관에 가면 사서선생님이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해준다.     

 

글쓰기 맞춤법은 브런치가 고쳐주고 홍보도 브런치 플랫폼에서 알아서 해준다. 내가 할 것은 최대한 빠르게 해내는 것 밖에 없다. 보험도 설계사분한테 연락한 후에 삼일 안에 견적을 짜서 보내주겠다며 연락이 온다. 대학병원 예약도 늦어도 이주 안에 무리 없이 가능하다.    

 

어메이징 코리아다. 이런 발달된 인프라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있어 새삼 못 느꼈는데 이번 기회에 정말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서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데 해외에 가지 않고도 마음을 바꿔먹은 것만으로도 이런 느낌을 받았으니 개이득이다.      


만약 내가 이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다른 나라에 살았다면 이런 변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 한 번 사면 한 달 넘게 물건이 오는 나라 행정처리가 일주일 이상 걸리는 나라에서 나는 이렇게 미루지 않기란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싶다. 


오히려 거꾸로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과 죽음은 최대한 미루면 좋다는 말처럼 최대한 미루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그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난 지금은 미루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어떤 환경에서 최대한으로 잘 적응한 동물이 번성한다는 다윈의 말처럼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우리가 어떤 것을 하느냐 보다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 있는지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집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나라에서는 내 집 마련이 재테크의 최고의 화두가 된다. 학벌과 직업이 중요한 나라에서는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을 크게 결정한다. 


이런 걸 보고 편견이라고 다른 길을 걸어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방송에서 비춰주긴 하지만 이런 방송에 나온다는 자체가 특이한 일이라는 반증이다. 우리가 모두 이런 삶을 살고 있다면 이런 게 뉴스를 타겠는가.      


이래서 윌슨 아저씨가 도시를 떠나 호수로 가서 살았나 보다. 똑똑하다. 도시에서는 본인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환경을 바꾸기로 결심한 거다.     


가볍게 적으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고민이 깊어진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했는데 나는 어떤 곳에 살고 싶은가라는 고민까지 이어지게 된다.


 나는 어떤 곳에 살고 싶을까? 당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건 이웃들과 정감 있게 교류하고 가끔은 저녁식사도 같이 할 수 있는 곳. 녹지가 많은 곳. 산책코스가 있는 곳 중간중간 아담한 자기만의 색을 가진 카페가 있는 곳. 각자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고 존중받는 곳. 난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요약해 보면 다양성이 폭넓게 존중받는 곳에 살고 싶다 정도가 되겠다.


Image by Keila Mari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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