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은 없다.
지금 회사에서 일한 지도 벌써 사 년이 다 돼 간다. 지금은 시들시들하지만 입사 초기에는 일에 관련된 책을 집중적으로 본 시기가 있었다. 모든 신입이 그렇듯이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이런 생각은 내게 불안함을 가져왔다. 그래서 책을 보고 일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하면 이런 불안감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천시청에 있는 교보문고와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일에 관련된 책을 열 권도 넘게 샀다. 일에 대한 태도를 알려주는 거시적인 책부터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는 시간까지 알려주는 미시적인 책까지 다양했다. 이렇게 산 책을 한 권 한 권 독파해 나갈 때마다 일을 잘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 같아선 머지않아 회사 내 에이스는 내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이렇게 책을 읽을 때마다 기분은 좋았지만 정작 업무 능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평가해 보면... 글쎄 잘 모르겠다. 책보단 훌륭한 선배들을 직접 보면서 따라 해 보고 나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일했던 게 개인적으로는 더 도움이 됐다.
아무리 책을 보고 일에 대한 거창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따라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미시적인 스킬을 알려주는 책들도 회사마다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이런 책을 읽어서 일을 잘하게 된다는 건 고등학교 때 특정 인강이나 강사에게 수업만 받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품는 거랑 비슷하다. 결국 공부나 일이나 잘하기 위해선 개인이 얼마나 자기를 잘 파악하고 실제로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다. 책이나 강의는 부수적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은 구절은 있다. 이런 류의 책들을 보다 보면 꼭 나오는 내용 중 하나가 상사에게 질문만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무실 냉장고가 고장 났다고 치자. 그러면 상사에게 “냉장고가 고장 났습니다”라고만 보고할 게 아니라 “뒤에 냉각수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A/S를 불러서 조치를 취할까요?”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지는 문제만이 아닌 해결책을 같이 가져가라는 것이다.
상사도 사람인데 문제만 가져오는 사람이랑 문제와 답을 같이 가져오는 사람 둘이 있다면 나라도 후자에게 마음이 더 갈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공감을 하며 책을 덮었었다. 그런데 최근에 아는 후배가 자기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며 화낸 일을 겪게 됐다. (나에게 무능하다고 말하는 후배에게 (brunch.co.kr))
이런 일을 겪으면서 책 내용이 업무뿐만 아니라 삶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매일 실수하고 했던 실수도 또 반복한다. 나도 방 불을 안 끄거나 설거지를 했는데도 찌꺼기가 그릇에 묻어있을 때가 종종 있다. 어떻게 아냐고? 집에 왔는데 배우자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 알게 됐다.
어렸을 땐 신같이 느껴졌던 부모도 선생도 매일 실수를 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됐다.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됐다. 이런 불완전함을 어떤 사람은 담담히 받아들이며 산다. 으레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성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반면 이런 점을 약점이라고 생각해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후자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서점만 가봐도 이런 약점을 극복하는 내용들을 담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책을 쓴 작가도 약점이 없진 않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사지선다나 오답노트를 통해 이런 사고방식을 습득했다.
그래서 이런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들 정답을 열심히 찾아 헤맨다. 내 현 상태를 완전하게 안정된 상태로 만들어줄 수 있는 만능열쇠를 찾는 것이다. 혹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나이가 적고 많음을 떠나 이런 고민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곤 이런 질문을 애써 모른척하거나 타인에게 구하러 다닌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답을 구할 순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해답을 갈구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책도 보고 했지만 내게 정답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우리를 잘 알고 있는 배우자나 부모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같은 공간 안에 산다고 해도 타인은 기본적으로 우리를 알 수가 없고 크게 관심도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본인 생각을 주로 하며 산다.
만약 이 답을 알려준다는 사람이 있다면 조심해라. 그 사람은 필시 사기꾼이거나 사이비 종교 교주일 확률이 높다. 최근에 읽고 있는 <컬트>라는 사이비 교주들을 다룬 책에도 이렇게 간절히 답을 구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요 타깃이다.
인생이란 딱 떨어지는 게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나오는 내용은 그 당시에 어떤 한 맥락에 대한 내용일 뿐이지 그게 완벽한 진실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맥락에 처해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이게 메타인지다.
그래서 우리는 남에게 답을 물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한다. 현재 자기가 하는 생각을 점검하고 사색하면서 나만의 답을 내릴 필요가 있다.
시시콜콜한 물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에 몇 시인지 무엇을 먹을 건지에 대한 그런 거 말고 우리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평소 나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저 사람 되게 말 조리 있게 한다”라는 평가는 이런 보이지 않는 숙고의 결과물인 것이다. 또한 어떤 의견을 들었을 때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답에 그 의견을 덧붙일 수도 있다.
거듭 말하지만 남에게 답을 구하지 말자.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깐.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주장일 뿐이고 그 정답을 통해서 무언가를 그 사람이 얻어내는 지를 유심히 파악하자. 그래야 짧은 인생을 살면서 허황된 꿈을 품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도 답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림 출처 : Ai Co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