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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공은 왜 영국으로 갔을까?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by 도냥이

<돈의 역사>는 역사를 경제적인 관점으로 서술한 책이다. 이런 연유에서 인지 첫 1 회독했을 때는 영국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경제적 관점이 주로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2 회독을 하면서 정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역사적 관점이었다. 특히 책 본문에서 나온 이 이야기는 나를 미치도록 궁금하게 만들었다.


영국 의회는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을 새로운 국왕(윌리엄 3세)으로 앉힌 뒤, 그에게서 새로운 세금을 걷을 때 의회에 동의를 얻을 것과 국민의 재산을 자의적으로 강탈하지 않을 것을 약속받았다. …… 윌리엄 3세는 혼자 오지 않았다. 혹시 모를 반대파에 대항하기 위해 1만 4천 명의 군사를 대동하고, 수만 명의 기술자와 금융 인력을 데려왔다. /24p



처음 볼 때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 부분이다. 하지만 두 번째로 볼 때 불현듯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영국 의회는 타국 사람을 데려왔지 영국에는 인재가 없나?” “수많은 사람 중 어떤 까닭으로 오렌지 공을 데려왔을까?” “ 오렌지 공은 왜 이런 제안을 승낙했을까?” 등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음 질문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영국 의회는 왜 타국의 사람을 데려왔는가?

2. 수많은 사람 중 왜 오렌지 공이 선택되었을까?

3. 오렌지 공이 영국으로 간 이유는 뭘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당시 영국 사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영국 사회의 핵심 권력은 왕인 제임스 2세와 영국 의회가 가지고 있었다. 제임스 2세는 가톨릭교도였고 영국 의회는 개신교도가 대다수였다. 제임스 2세에게는 메리와 앤 이라는 두 명의 딸이 있었고 두 딸은 모두 개신교를 믿었다. 그래서 영국 의회는 제임스 2세의 후세로 장녀 메리를 지지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돌발 사건이 발생한다. 10년 만에 제임스 2세의 부인 모데나가 아들을 출산한 것이다(!). 모데나 부인과 제임스 2세는 가톨릭교도로 이들의 아들 역시 가톨릭교도가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영국 의회는 초긴장 상태가 된다. 왜냐하면 과거 메리 1세 때 종교적 차이 인해 피바람이 불었던 전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당시 성직자의 20퍼센트가 성직을 잃었고 대략 800명이 망명했으며 300명의 성직자가 순교했다.)


그런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 의회의 양당인 토리당과 휘그당은 당을 불문하고 힘을 모아 네덜란드의 오렌지공을 영국으로 부르게 된다.(사회계약론의 존 로크도 사절단 중 한 명이었다.) 오렌지 공은 찰스 1세(제임스 2세의 아버지)의 외손자이자 제임스 2세의 사위였으며 개신교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또 영국 의회의 요청 당시 그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운했다.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는 천연두로 사망하였고 그의 어머니 또한 그가 10살이 되던 해에 사망한다. 이런 불운에도 정적들의 방해를 이겨내고 네덜란드의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총독에 자리에 오른다.

네덜란드 오렌지 공

총독에 자리에 오른 그는 세력이 커져가는 프랑스와 싸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런데 당시 잉글랜드는 친 프랑스 정책을 펼치고 있어 잉글랜드를 자기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군이 건재한 상황에서 영국으로 만 명도 넘는 군대를 이동시킨다는 것은 어려웠다. 루이 14세가 라인 강 상류지역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로 인해 오렌지 공에게 얼마 동안의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생긴 여유로 그는 영국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여담으로 제임스 2세는 오렌지공을 훨씬 능가하는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렌지 공과 싸울 결연한 의지가 없었고 사기가 저하된 군사령관과 장교들이 오렌지 공 쪽에 가담하자 제임스 2세는 도망가는 길을 택한다. 채텀 근처에서 배를 탔으나 바다에서 어부들에게 붙잡혀 런던으로 끌려간다. 장인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오렌지공은 그가 프랑스로 도망가는 것을 방조한다. 도망가다 제임스 2세는 원통한 마음에 옥쇄를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소심보스)


이제 처음 질문에 답을 내려보자.


1. 영국 의회는 왜 타국의 사람을 데려왔는가?

① 찰스 1세의 외손자이자 제임스 2세의 사위라는 혈연관계


2. 수많은 사람 중 왜 오렌지 공이 선택되었을까?

① 개신교도

② 왕위의 정통성


3. 오렌지 공이 영국으로 간 이유는 뭘까?

① 프랑스의 견제를 위해



책의 서문에도 나오듯 경제 상황이나 전망을 특정 인물의 ‘의도’ 혹은 ‘개성’에 초점을 맞추는 건 많은 한계를 가진다. 이와 같은 관점은 역사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만약 오렌지 공이 영국으로 간 이유를 '개인'에서만 찾는다면 당시 각국의 특수한 문화와 관계등을 놓치기 쉽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단순하다 믿는다. 그러나 ‘현상’보다는 ‘원인’을 보라고 하셨던 홍춘욱 박사님의 말처럼 이 사회에 단순한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변인들을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이유는 이런 사회의 복잡함을 고려할 때 우리가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나종일·송규범, 『영국의 역사(하)』, 한울아카데미(2009), 475~476쪽

래리 고닉,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4』, 궁리(2007), 232~233쪽

조정현, 『16세기 잉글랜드의 정치와 종교의 상호 관계성 연구』,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06), 33-34p

다음 블로그, "잉글랜드의 여성왕위계승자들", 2011,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L2uz&articleno=8464727&categoryId=797526®dt=20110802060000

나무위키, "윌리엄 3세", 2019, https://namu.wiki/w/%EC%9C%8C%EB%A6%AC%EC%97%84%203%EC%84%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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