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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어떻게 책 중독이 되었나

<완벽한 공부법>

by 도냥이


한 남자가 27인치 모니터 너머로 자신의 캐릭터를 보고 있었다. “XXX님이 게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전장의 지배자. “펜타 킬.” 무수히 들려오는 기계음은 남자가 게임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게임 속 자신의 모습에 흠뻑 빠져있었다. 화면 속 캐릭터는 그 남자가 현실에서 바라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대한민국 대다수가 겪는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을 거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교에서도 그는 “고등학교 때처럼 하면 되겠지”라며 생각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탓일까 남자는 대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친구 관계도 좋지 않았다. 학교생활에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지루함을 참고 잘해보려 했으나 실패만 거듭했다. 남자는 무기력했다. 뭘 해도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야 롤 할 줄 아냐?” 그렇게 그는 롤이란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에는 재능이 있었는지 그 남자는 곧잘 이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랭크 게임에서 ‘골드’를 찍었고 게임 내에 사람들은 그를 인정해주었다. 그는 만족스러웠다. 현실보다 게임에서 존재감이 더 컸다. 그렇게 남자는 게임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한 후에 게임을 했다. 그다음에는 과제할 시간에 게임을 했고 나중엔 수업을 들어야 할 시간에 게임을 했다. 자연스레 과제를 안내는 날이 많아졌고 결석도 잦아졌다. 가끔 수업에 간 날도 맨 뒤에 앉아 출석만 하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시험 날짜도 알지 못해 친구가 알려주면 간신히 시험을 치르는 식이었다. 물론 시험 전날에도 게임을 했다. 게임 로그인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그에 반비례하여 오프라인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자는 시간보다 게임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나중엔 자는 시간만 빼고 게임을 했다.


처음엔 게임이 재밌었다. 남자는 자신도 잘하는 게 있다는 게 좋았고 남에게 인정받는 게 좋았다. 그래서 그는 게임을 하고 또 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게임이 그를 원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무너져가는 삶을 그가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긴급한 비상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의자에 장시간 앉아 있어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 다리가 저렸다. 교수님은 학점을 주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 그 남자는 자신의 인생을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만 했다. 현실을 마주 볼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게임을 했다. 완벽한 악순환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남자는 PC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XXX 님이 이용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라는 알림이 화면에 보였다. 충전을 위해 남자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때 그는 주머니 속에 400원밖에 만져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시방 기본요금은 1200원이었다. 남자는 텅 빈 주머니에 의문을 품으며 피시방에서 나왔다. 방금까지 앉아있던 그의 컴퓨터 화면에는 “이용 시간 18시간”이란 알림이 떠 있었다.


남자는 피시방에서 나와 집 근처 마트 주위를 술 취한 사람처럼 걸었다. 실제로 취한 것 같이 머리가 몽롱했다. 30분쯤 걸었을까 그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심해진 디스크로 아무리 허리가 아파도 수업에서 F를 맞아도 18시간 내내 모니터를 보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남자였다. 그 남자가 본 자신은 완벽한 폐인이었다.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집에 돌아와 그는 유튜브에 게임 중독을 검색했다. 그러자 유튜브 첫 번째 화면 위에 뜨는 한 사람이 보였다. 무언가에 홀리듯 그 영상을 클릭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화면 안에 사람은 말했다. “욕망은 끊으려 하면 더 커진다.” “욕망은 다른 욕망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 사람은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카페로 가 책을 읽었다고 했다. 등에 전율이 흘렀다. 전에도 그도 게임을 끊으려 수없이 시도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었다. 단순히 하고 싶은 욕망을 참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어렸을 때 판타지를 많이 보고 대학교에서도 돈이 없으면 책을 봤기 때문에 책에 대해서는 친숙했다. 희망이 보였다.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우선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밤샘 게임으로 인해 수면 패턴은 엉망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 아침밥을 무조건 같이 먹기로 약속했다. 일어나지 않으면 쉬지 않고 깨우시니 안 일어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항상 아버지와 아침을 같이 먹었다. 먹은 후에는 집 근처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었다. 도서관을 갈 수 없는 날은 카페로 가 책을 보았다.


변화는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서점으로 가서 『완벽한 공부법』란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의 책을 샀다. 책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선 내가 무슨 시간에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서 데일리 리포트 형식의『폴라리스』도 같이 샀다. 처음에는 매일매일 기록만 했다.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버거웠다. 그러다 불쑥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뼈 아대 유튜브를 보며 버텼다. 그것으로도 안 되면 거리에서 울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3주 지나니 어느 정도 몸에 적응이 되었다. 공부하기가 수월해지자 욕심이 났다. 그래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책 하루 50page 읽기, 서평 30분 쓰기, 기사 5문제 풀기 등 지킬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꾸준히 해 나갔다. 물론 못한 날도 있었다. 그러면 목표량을 줄여 다시 시도했다. 작은 성공이 늘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작은 성공은 나에게 버틸 힘을 주었다.


완벽한 선순환이었다. 이렇게 세 달이 지났다.


그 결과 나는 2019년 1월 15일부터 2019년 4월 9일 동안 85일간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다. 68일 동안 데일리 리포트를 작성했고 85일 동안 40권의 책을 읽고 37개의 서평을 남겼다. 그리고 대교와 체인지그라운드가 함께하는 독서클럽 싱큐베이션에 선정되었다. 현재는 「실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팀에서 내게는 과분한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독서클럽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세 달간 40권의 책을 보고 많은 지식을 얻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얻은 건 우리에 대한 믿음이었다. 나 스스로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 이런 나도 바뀌었으니 너도 바뀔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었다. 이렇게 그 남자는 자신을 믿음으로써 게임 중독을 책 중독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제 그 남자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가?”



포드사 창업주인 헨리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든, 믿는 대로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준 대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싱큐베이션은 없었을 것이고 이 글 또한 없었을 테니까.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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