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끄기의 기술>
내 지난 삶은 추노꾼을 피해 달아나는 노비의 생활과 같았다. 나는 줄곧 내 앞에 놓인 문제들로부터 도망쳤다.(시험, 취업, 인간관계 등등) 운이 좋아 대학에 들어와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의 본질은 변한 게 없었다. 내 가치관 아니 당장 졸업 후 어떤 직장에 들어갈 것인지조차 불명확했다.
취업준비를 위해 대학교에서 집으로 오자 이런 내 성향은 더욱 심해졌다. 취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위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뚜렷한 목표는 없었고 두리뭉실한 욕심만 있었다. 욕심은 있고 행동은 따라주지 않으니 이 격차만큼 괴로웠다. 이를 잊기 위해 게임을 했다. 나에게 게임은 취업을 해야 한다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였다.
불행 중 다행히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게임은 끊고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 하지만 종목만 달라졌을 뿐 내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이런 나에게 <신경 끄기의 기술>은 나의 무책임함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비친 것 중 가장 뼈아팠던 부분은 회피하는 행위도 나의 선택이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것을 유보해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택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선택들의 유불리를 따진 것이 아니다. 빈곤한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자면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점은 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일종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선택을 한다면 문제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악화되어 결국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의 급행열차 궤도 안에서 영영 헤맬 것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어떤 일을 하려는 동기가 그저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거의 모든 것에 중독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문제로 인해 고통을 가라앉힐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있고, 적절히 사용하기만 하면 나쁠 게 전혀 없다. 하지만 문제를 피하고 고통을 가라앉히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마침내 문제를 직면했을 때 받게 될 고통은 더 커질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단박에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단박에 행동을 개선했다. 라면 좋겠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면 이런 글조차 쓰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진절머리 나는 이 녀석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다음과 같은 수많은 생각에 마음이 짓눌려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지?”, “뭐부터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까?”, “이 상황을 한 번에 타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 등의 쓰레기 같은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쳐 “그래서 나한테 어떻게 하란 거야?” 라며 저자 탓을 하는 이 우둔함은 정말. 이런 머저리 같은 친구에게도 과분하게 저자는 등까지 떠밀어준다.
당신이 실존적 똥 폭풍의 한가운데 있어서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그러니까 이제껏 자신을 평가해 온 방법이 모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해 더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또는 여태 거짓 꿈을 좇느라 자신을 괴롭혀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아니면 자신을 평가할 더 나은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답은 같다. 뭐라도 하라. 다른 행동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라도 좋다.
이렇게 까지 들은 이상 이런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뭐라도 했다. 강박감에 보던 책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취업 관련 자격증 책을 폈다. 하루 한 시간씩 꾸준히 한 결과 운 좋게도 기사 자격증을 땄다.(물론 커트라인이었다. 아무튼 땄으니) 심지어 이제는 강의를 듣고 기업에 지원서까지 낸다. 여기서 꿀팁을 드리자면 게임 중독보다는 책 중독이 낫다는 점이다. 게임하다가 다른 것을 하기는 어려운데 책을 읽다가 다른 것을 하는 건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하다. 그러니 이왕 중독될 거면 게임보다는 책을 권한다.
이렇게 오래도록 미뤄놓았던 목표를 치우면서 두 가지 느끼는 점이 있다. 첫 번 째는 해야 할 것을 안 할 때 보다 할 때 마음이 덜 괴롭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부분의 실제 문제들은 내 머릿속에 있는 문제들보다 훨씬 작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마시라. 게임 시작부터 보스를 어떻게 사냥해할지 구상할 필요는 없다. 일단 목표 근처에 작은 몹부터 잡자. 아니 튜토리얼부터 하자. 나와 같이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고 분이 있다면 얼른 벗어나시길 바란다. 그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