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힘>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늘 그렇듯 우리는 축구 아니면 농구를 했다.(우리 학교는 두 개 밖에 할 게 없었다.) 농구를 하고 싶지 않은 날엔 축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축구를 하게 되면 나는 공을 썩 잘 차지는 못해서 주로 미드필더, 수비수, 골키퍼 등 중앙선 아래쪽 포지션에 섰다. 그래도 제법 열심히는 뛰어서 스스로에게 나름 자부심 비슷한 게 있었다.
“그래도 내가 제일 열심히 뛰어” 같은 것 말이다.
그날도 헉헉대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상대팀이던 한 학년 위의 선배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뭔가 잘못했나 싶어 잔뜩 긴장해있었다. 어느새 선배는 축구공 두 개만큼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그러곤 나에게 “나는 너네 팀에서 네가 제일 무서워”라고 웃으며 말했다. 누구에게 무섭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경험이 없는지라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3초쯤 지나자 내가 칭찬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내 플레이에 대해 인정해준 건 처음이었다. 맨유의 박지성이 된 기분이었다. 당황해 그 말에 제대로 답하진 못했지만 내가 느꼈던 가슴 벅찬 순간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왜 나는 수많은 플레이했던 축구경기 중 그 한 기억만을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까? 물론 선배에게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지만 이런 결정적 순간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혹은 이런 결정적인 순간을 우리가 창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칩 히스, 댄 히스 형제는 자신의 저작 <순간의 힘>을 통해 YES라 말한다.(저자가 외국인 이므로)
이 책에서 결정적 순간은 “오래 기억되고 깊은 의미를 지닌 짧은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적 순간은 고양, 통찰, 긍지, 교감 등 4가지 요소에서 비롯된다. (4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할 필요는 없다.) 만약 이러한 요소로 위의 에피소드를 분해한다면 다음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
각본 깨트리기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축구할 때는 “패스”,“여기”,“차” 등등 같은 말과 욕설 외에는 개인적인 대화는 거의 할 일이 없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선후배 간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 선배는 경기 중 용기 내어 나에게 다가왔고 칭찬의 말을 건넴으로써 예상 밖에 상황을 연출했다.
위험 보상 높이기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같은 학년과의 경기는 많았지만 다른 학년과의 경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후배 경기는 오랜만에 만나는 국가 대항전 같은 느낌이 있었고 은근 자존심을 걸고 경기를 했었다.
타인을 인정하라
그 선배는 내가 끈질기게 다른 사람을 쫓아다니는 걸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 점을 콕 집어 칭찬해줬다. 책에서 나온 “자네가 한 일 봤네. 아주 잘했어” 같이 말이다.
이러한 고양, 긍지라는 두 가지 요소만으로도 그때의 일은 나의 기억 속에 즐거운 감정으로 남았다. 그런데 만약 YES 예비학교의 졸업생 서명 같은 네 가지 요소들을 모두 활용한 일을 계획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효과가 더 클까? 그리고 그때 내가 느낄 즐거움은 얼마나 더 클까? 내가 앞으로 만들 결정적인 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삶이라는 산문에 구두점이 필요한 곳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순간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