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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여행에서 적는 여행으로

<여행의 이유>

by 도냥이

교보문고에서 <여행의 이유>를 주문했다. 책을 기다리는 내내 설렜다. 주문한 책이 집으로 배달되어 읽고 있을 때보다 설렜을 거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김영하 작가를 좋아한다. 물론 그의 총체적 모습은 내가 알 수 없지만 <알쓸신잡>에서 본 그의 위트에 나는 반해버렸다. 특히 왜 자기와 연인의 이름을 바위에 적는지 모르겠다며 툴툴대는 유희열 씨의 말에 “사랑도 불안하고 자아도 불안하니 안정돼 보이는 바위에 새기는 거죠”라는 답변은 내 최애(최고로 좋아하는) 장면이다.


책도 읽기도 전에 좋아하게 된 작가는 김영하뿐이다. 어디에 빠진 팬들이 그렇듯 나 또한 어느 순간 그의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빛의 제국>, <검은 꽃>, 최근작 <너의 이름은>까지 모든 작품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분명 나를 건드리는 부분은 작품마다 있었다. 특히 <너의 이름은>에서 어렸을 때 잃어버린 아이가 훌쩍 커서 돌아오는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그 상황과 분위기가 나를 압도했다. 마치 실제로 그런 상황과 주인공이 존재한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 느낌을 또 느끼고 싶어서 그의 차기작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장편소설이 아닌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김영하 작가의 책이 나왔다. 그의 특유의 유머 아니랄까 봐 책 띠에 적혀있는 문장은 엄청났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내 모든 여행이 필요했다.” 크... 이 작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책을 먼저 읽고 유튜브에서 이 책을 작가가 직접 소개하는 영상을 봤다. 김영하 작가가 설명하길 이 책을 읽으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기보다는 여행을 적고 싶어 질 거라고 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 말을 들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하.. 정말 여행기를 쓰고 싶게 만든다. 이 문장을 읽고 처음으로 내가 그동안 한 여행을 적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만간에 여행 관련 책을 읽으면 나의 여행기를 적어보리라. 내가 여행한 것과 여행한 것을 적은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다. 여행을 적었을 때 내 경험이 더 명료해질까? 아니면 운명의 계시를 받게 될까? 위의 질문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여행을 쓸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잘 까먹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적어서 기록해두는 것이 사진을 찍는 것보다 나중에 봤을 때 회상하기 유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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